왼쪽에서부터 나단 밀스타인, 에리카 모리니, 아이작 스턴. 밀스타인과 스턴은 러시아 출신의 유태인으로 미쿡에서 대성공을 하여 일세를 풍미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N. Milstein)

아주 오랜만에, 너무 오랜만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겠다. 내가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가 4년 반 전의 일인데 그 당시에 올린 이후 처음으로 올리는 곡이다.

이 곡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다. 내 블로그에 오랫동안 방문하신 분들은 내가 어찌하여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아시겠지만 하나의 기억을 말소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이라는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꽉꽉 처 집어넣을 당시 처음으로 내게 신천지가 있음을 알려준 곡이 바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그만큼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늘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 곡을 아주 특별한 음반으로 감상하겠다. 세계 최초의 LP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음반이다.

LP의 탄생

나단 밀스타인과 브루노 발터의 뉴욕 필이 함께 1945년에 녹음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은 세계 최초의 LP라는 깨질 수 없는 기록을 갖고 있다. 세계 최초의 CD도 아닌 LP라는, 마치 선사시대의 화석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겠으나 직접 들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음질도 괜찮고 연주도 매우 훌륭하여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손꼽히는 명반 중의 하나이다.


우선 세계 최초의 LP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이 음반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LP가 무엇인지, 최초의 LP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안동림의 명저 ‘이 한 장의 명반’에서 그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LP란 'Long Playing Record'의 약자인데 LP가 등장하기 전 녹음매체는 SP 음반으로 78회전에 쉘레크(shellac) 소재로 되어 있어서 두껍고 무거우며 깨지기 쉬웠다. 하지만 콜롬비아사가 33회전의 LP를 처음 개발하면서 음반산업에 돌풍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LP는 가볍고 안전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었고 용량도 훨씬 컸다. SP는 30센티 반이 한 면에 약 4분 30초, 25센티 반이 3분 20초 정도를 담을 수 있을 뿐이었으나 소리골이 훨씬 가늘어진 LP에서는 훨씬 많은 양을 담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담으려면 SP에선 8장에 담아야 했던 것이다.

뭐, 요즘 세대들은(나도 그렇지만) 전혀 실감하지 못할 이야기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MP3 플레이어에 베토벤 교향곡 1번에서 9번까지 전곡을 다 담아도 용량이 반의 반도 못 채울 정도니까. 난 그래도 LP를 경험한 세대여서 턴테이블의 바늘관리법, LP판의 청소법, 스크래치라는 것을 알긴 하지만. 아! LP하니까 떠오른 이야긴데 옛날 어떤 시골다방에서 하루 종일 노사연의 ‘만남’이란 노래를 틀었는데 이게 바늘이 물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돌아보지 마라~’에서 보지~만 자꾸 랩하듯이 반복하니까 다방 손님들이 대놓고는 못 웃고 고개 숙인 채 키득거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LP판을 돌리는 DJ girl. 요즘 mp3 세대들은 모르겠지만 옛날 LP시대엔 이런 낭만도 있었다.

어쨌든 이 LP가 처음 생기면서 30센티 반에서 30분 이상의 음악도 척척 한 장에 담을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음악사의 혁명이라 부를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1948년 6월 21일에 콜롬비아사의 에드워드 월라스타인 사장을 비롯한 회사 간부들이 뉴욕의 호텔에서 성대한 기자회견을 가지며 혁명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콜롬비아사는 LP를 처음 발매한 후 약 1년 3개월간 438 타이틀의 엄청난 양의 LP를 출반하였다. 콜롬비아사의 LP 번호는 ML(master-works LP)로 표기했고 30센티 반은 4001, 25센티 반은 2001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나단 밀스타인-브루노 발터-뉴욕 필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1945년에 녹음되어 ML4001의 영광스런 호칭을 갖게 된 음반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도 있다. 콜롬비아사가 초기에 발매한 LP 리스트를 보면 ML 일련번호를 작곡가 이름의 알파벳순으로 배열하고 있고 클래식 음악의 기본 곡목을 갖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어찌하여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예외적으로 영광의 4001번을 차지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에선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에 대한 뚜렷한 증거도 없으니 당시 제작에 참여한 콜롬비아사의 제작진에 특별한 사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막연한 짐작만 하고 있다.

초기의 LP들은 옛날에 해두었던 녹음을 복각한 것들이고 오늘 소개하는 이 음반도 물론 1945년에 녹음한 것이니 복각판이다. 하지만 복각판이라고 해도 매우 좋은 음질과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여기에서 옛~날 것들 좋아해서 짜장도 옛날 짜장을 좋아하고 음반도 옛날 복각판을 어렵게 찾아 듣는 것 좋아하는 분들에게 내가 아는 짤막한 상식에서 조언을 하고 싶다. 우선 복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은 모두 마이너 레이블이다. DG, DECCA 등의 쟁쟁한 메이저 레이블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매우 독특한, 개성 있는 음반을 발굴해서 틈새시장을 노려야 하는데 그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옛날 녹음의 복각이다. 복각전문으로 유명한 레이블이 펄(PEARL), 타라(THARA), 낙소스(NAXOS)와 도레미(DOREMI) 등이 있다.

펄은 워낙 복각전문의 강자라고 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슈나벨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복각한 회사였으니. 그리고 타라가 있는데 이 회사는 옛날에 남긴 아주 유명한 음원을 복각하여 판매하는 것을 전문으로 한다. 대표적으로 푸르트벵글러가 남긴 베토벤 교향곡 같은 것들이다. 근데 다른 메이저 레이블과도 겹치는 레퍼토리가 많아 경쟁력은 좀 떨어진다. 그 다음이 낙소스와 도레미인데 이들은 염가에 희귀반을 많이 내놓아서 특이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는다. 이 중에서 낙소스는 그래도, 그래도 좀 들을만하다. 워낙 복각으로 오랫동안 기술을 축적해와서 아무리 지랄 같은 음질이라도 좀 들을만하다. 하지만 도레미는 그렇지 않다. 음반 사재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레미는 반땅 레이블이라는 별칭이 있다. 이 레이블의 음반을 사면 딱 반만큼만 만족한다는 것이다. 장점은 희귀한 옛날 녹음을 싼 가격에(낙소스보다 확실히 가격 경쟁력은 있다) 들을 수 있다는 점,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너무 지랄 맞은 음질이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가치. 바로 이 음반도 가치를 잃지 않는 명반 중의 하나이다. 요제프 시게티가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커플링되어 있다.

우선 구시대의 음반으로는 오늘 소개하는 밀스타인-브루노 발터-뉴욕 필의 음반을 명반으로 손꼽을 수 있다. 밀스타인 특유의 깨끗하고 단정한 연주와 이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또 하나의 대가 브루노 발터의 반주는 아주 시원스러우면서 이 곡의 부드러운 감성을 아주 잘 살리고 있다.


구시대의 음반 중 아이작 스턴, 에후디 메뉴인의 음반도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약간은 여유로운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스턴의 것을, 웅장한 스케일과 빠른 연주를 듣고 싶다면 메뉴인-푸르트벵글러-베를린 필의 음반도 괜찮다.

* 다른 연주자들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감상

오이스트라흐-콘드라쉰-소비에트 국립 교향악단

하이페츠-토스카니니-NBC 오케스트라

무터-카라얀-베를린 필

이 곡은 다른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들-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과는 달리 여성 연주자의 음반도 매우 많고 여성 연주자의 음반이 명반으로 평가 받는다. 가장 유명한 음반으로는 정경화 여사의 것을 들 수 있는데 뒤트와와 함께 한 음반이 유명하다. 썩 재밌지는 않지만 가장 스탠다드한, 이 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가장 무난한 음반이 될 것이다. 정경화 여사보다는 좀 더 화려한 연주를 듣고 싶다면 무터-카라얀-베를린 필의 음반도 괜찮다. 무터-카라얀의 조합으로 꽤 많은 음반들이 있는데 내 개인적으로 모두 범작이라고 평가하는 것들 중 그래도 수작이라고 꼽는 것이 바로 이 곡이다. 좀 뻑뻑하지만 힘찬 보잉을 경험하고 싶다면 러시아의 얼음공주, 아니 아줌마인 빅토리아 뮬로바의 음반도 추천한다.

컬트풍으로 머리털이 뻣뻣하게 서는, 롤러코스터의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단연 하이페츠-뮌쉬-BSO의 음반을 추천한다. 하이페츠와 뮌쉬. 두 사람 모두 불꽃 튀는 사람들인데 제대로 만났다. 이들이 함께 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내가 꼽는 동곡 최고의 명인이다. 내 블로그엔 토스카니니-NBC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을 올렸는데 이것도 들어보면 심장박동수가 마구 뛰어대는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곡이든 그렇겠지만 이 곡에서도 아주 푸~짐한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가 적격이다. 풍성하고 푸짐한 연주가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Nathan Milstein (violin)
Bruno Walter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녹음: 1945/05/16 Mono
장소: Carnegie Hall, New York City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Allegro molto appassionato

2악장-Andante

3악장-Allegretto non troppo - Allegro molto vivace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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