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꼬마아이와 거대아기. 뒤 프레는 baby face에 큰 키의 소유자였다. 요즘으로 치면 거대아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f(x)의 설리 정도? 모든 것을 다 갖춘 뒤 프레에게 두 가지가 결여됐으니 하나는 건강이었고 또 하나는 남자 보는 눈이었다. 이딴 놈이 뭐가 좋아서 그렇게 방정을 떨었는지.

DVORAK: Cello Concerto in B minor op. 104(Du Pre, 1967)

내 오랜 이웃이신 현성님의 블로그에 가보니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유학 중인 지인 분의 딸이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을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주하는 파일을 올려 놓으셨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곡, 연주하기 엄청 어렵기로 소문난 곡이다. 원래 첼로라는 악기 자체가 연주하기 어렵지만 특히 이 곡은 첼리스트에겐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과 더불어 피할 수 없는 운명임과 동시에 솔리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는 관문 같은 곡이다. 이 곡을 연주하지 않고서 솔리스트로 인정받는 다는 것은 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나 역시 이 곡을 무척 좋아해서 이미 여러 연주자의 버전으로 올렸다. 가장 유명한 연주로는 로스트로포비치-카라얀-BPO를 들 수 있겠는데 내가 취향이 독특해서인지 별로였다. 카라얀 특유의 끈적거리는 관현악이 제대로 거슬릴 때가 있는데 바로 이 음반에서 그랬다.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방정스러움, 그걸 또 달콤하게 당의정(糖衣錠)처럼 우라까이한 느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는 피에르 푸르니에-조지 셀-BPO의 연주이다. 완전히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최대한의 상승작용을 이끌어내는 연주는 정말 듣는 사람 환장하게 한다. 그 외에도 오늘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재클린 뒤 프레-다니엘 바렌보임-CSO의 연주로도 올렸다. 이 당시의 뒤 프레는 다중경화증의 조짐이 보였던 상태였던지라 그녀의 최전성기의 연주 때와는 많이 다르다.

뒤 프레의 최전성기로 볼 수 있는 시기의 연주는 바로 오늘 소개하는 첼리비다케-SRSO의 연주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연주는 내가 앞서 언급한 푸르니에-셀의 연주에 이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명연 중의 명연으로 꼽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명연을 꼽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이 두 가지 조합을 제외하는 경향이 있던데 글쎄? 음악을 듣고 이게 좋네, 저게 좋네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따른 것 아닐까? 그런데 그 취향을 꼭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골라잡아 부정하면서 자기 의견만 줄창나게 떠드는 사람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데 있잖아? 세인들의 평판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잘난 척하고 나대는 것도 너무 같잖지만 자신의 무지를 타인의 속물근성쯤으로 폄하하는 짓은 더더욱 모양 빠지는 짓이다. 행여라도 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그런 짓은 하지 마시길. 무슨 곡을 겨우 몇 개의 음반으로 들어봤다고 그냥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면서 자랑질하지 말란 말이다. 하고 싶으면 자신만의 공간에다 맘껏 배설하던가.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샜는데 20세기를 살았던 최고의 여류 첼리스트였던 뒤 프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과 함께 이 곡을 여러 차례에 걸쳐 녹음했다. 사실 이 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뒤 프레를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 음반만큼은 뒤 프레가 남겼던 많은 연주 중 최고의 연주 중 하나라도 극찬하고 싶다. 또한 지휘자 첼리비다케의 반주 역시 압권이다. 첼리비다케는 원래 협주곡을 싫어했고 협주곡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지휘자이다. 또한 내 취향에도 첼리비다케는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첼리비다케의 음악은 오토 클렘페러의 것과 더불어 느려터진 음악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이 느려터진 음악이 오늘의 연주에서는 무거운 비장함으로 들리며 뒤 프레의 힘찬 첼로와 함께 활활 타오르는 느낌을 준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이 곡의 괜찮은 음반을 소개해 본다. 우선 1세대 첼리스트이자 첼로의 神, 카잘스 할아버지와 조지 셀의 음반이 있다. 워낙 옛날 녹음이지만 음반을 구하긴 어렵지 않다. 오늘 감상하는 뒤 프레-첼리비다케의 연주와는 대척점에 있는, 무척 빠른 연주를 구사한다. 그리고 2세대 첼리스트 트리오 (푸르니에, 피아티고르스키, 포이어만) 중 피아티고르스키-샤를 뮌쉬의 연주가 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피아티고르스키는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 얌전하게 곡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데 샤를 뮌쉬라는 엄청난 지휘자의 엄청난 반주를 유유히 맞받아치면서 정말 기품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3세대 첼리스트 트리오 (슈타커, 샤프란, 로스트로포비치)의 음반 중 또 걸작을 찾는다면 슈타커-도라티-LSO의 것을 들 수 있다. 슈타커 특유의 직관적인 첼로 연주가 바로 이 곡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고 할까? 특히 3악장이 압권이다.

그 외에도 좋은 연주는 숱하게 많이 있다. 폴 토틀리에의 기품있는 연주도 좋고 현대 연주자 중 마이스키, 요요마의 연주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는데 좋은 느낌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써놓고 보니 과거인물들에 대해서만 잔뜩 써놨다. 원래 클래식 음악이란 것 자체가 과거지향적이라 불가피하게 과거 인물들만을 거론하기 쉽다. 옛날의 어떤 사람의 연주가 좋았다더라, 옛날의 거장들에 비하면 요즘은 너무 형편없다는 등등의 많은 평론들. 하지만 자꾸 뒤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옆과 앞엔 또 어떤 미래의 재목들이 있는지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현성님의 그 지인 분의 따님이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되어 세상을 놀라게 할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이 훌륭한 연주를 남긴 재클린 뒤 프레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전설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Jacqueline Du Pre (Cello)
Sergiu Celibidache (conductor)
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
녹음: 1967/11/26 Stereo, Analog
장소: Concert Hall, Stockholm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Allegro

2악장-Adagio, ma non troppo

3악장-Finale, Allegro moderato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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