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op. 33
바이올린, 첼로 협주곡 2010. 9. 24. 02:57 |세기를 주름잡았던 첼리스트가 한 자리에 모였다. 맨 왼쪽의 거인은 그레고리 피아티고르스키, 한 사람 건너 키작은 영감님은 스페인의 첼리스트 가스파 카사도, 그 옆의 지팡이 든 영감님은 피에르 푸르니에, 그리고 그 옆의 두 사람은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다닐 샤프란과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이다.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op. 33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등 협주곡이란 분야에서 큰 히트작을 남긴 차이코프스키는 아쉽게도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진 않았지만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변주곡을 남겨 후세에 이르기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수많은 협주곡, 관현악곡, 또는 교향곡을 웬만큼 줄줄 꿰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약간은 생소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차이코프스키의 많은 곡 중에서 아주 아름다운 선율과 전통적인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명곡 중 하나로 사랑 받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차르트를 비롯한 빈 고전음악의 작곡가를 무척 동경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러시아는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온 서양 고전음악이 러시아에 뿌리내리고 독특한 러시아풍의 음악을 요구하던 시기였기에 차이코프스키의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에 대한 동경은 줏대 없는 무조건적인 동경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차이코프스키가 서양의 음악가들과 많은 교류를 하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공고히 다질 수 있었고 그의 가슴 속엔 러시아인이 작곡한 러시아만의 음악세계를 펼치려 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차이코프스키는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하게 된 것이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모차르트에 의해 고안된 변주곡 형식을 빌려와 작곡한 것이다. 로코코 양식은 바로크와 신고전주의의 중간에 위치한 고전양식이니 차이코프스키가 고전양식을 좋아했고 모차르트의 오마쥬로 이 곡을 작곡했음을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원래 독일의 첼리스트이며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였던 빌헬름 피첸하겐(Wilhelm Fitzenhagen)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단계에서부터 피첸하겐이 많은 조언을 하였고 차이코프스키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심지어 초연 이후 정식 출판이 되기 전까지 피첸하겐이 더 많은 수정을 하여 차이코프스키가 크게 역정을 낸 일도 있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더 이상 수정을 하지 않아 피첸하겐이 여러 곳을 손댄 개정판이 이 곡의 기준이 되었다. 이후 소련에서 1956년 차이코프스키 작품집 기념 출판을 통해 처음으로 원본이 빛을 보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얼핏 들어보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처럼 들리는 이 곡이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했다는 점에서 꽤 이질감이 느껴진다. 1개의 주제, 그리고 7개의 변주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석연휴가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날씨도 쌀쌀해지고 가을의 정취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절이기에 이 곡을 골라봤다. 물론 물난리가 나서 이 혹독한 계절에 여유 따위는 없겠지만…그래도 가을은 가을이니까 이 곡을 한 번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수많은 유명 연주자들이 녹음했지만 내 블로그에서는 다닐 샤프란(Daniil Shafran)의 연주로 소개하겠다. 그리고 샤프란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도 곁들이겠다. 샤프란 특유의 섬세하고 매혹적인 첼로 연주와 함께 가을의 초입을 느껴보시길.
다닐 샤프란-첼로와 조국은 나의 운명
어린 시절의 샤프란. 10세 때의 모습이다. 그의 스승이자 아버지의 스승이며 러시아 첼리스트의 한 유파를 형성하기도 했던 알렉산더 쉬트리머(Alexander Shtrimer)와 함께 했다.
클래식 음악을 쬐끔, 혹은 그 이상 듣는다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 슬쩍 떠볼 수 있는 몇 가지 테스트용 이야기거리들이 있다. 누구 작곡가의 어떤 곡, 혹은 누구 연주자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의 여부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의 척도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폭식니즘에 빠져 살았던 막스 레거(Max Reger)라는 작곡가가 있다. 이 사람의 대표작 몇 곡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라면 꽤 고수급이라고 봐도 된다. 또한 바흐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작곡가 중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이라는 사람이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곡을 작곡하여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그의 작품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비운의 작곡가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텔레만이란 작곡가에 대해 알고 있고 그의 작품 중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역시 꽤 고수라고 봐도 된다.
피아니스트 중에선 마리아 유디나를 알고 있거나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선 정경화의 스승이었던 요제프 시게티, 지휘자 중에선 루돌프 켐페, 그리고첼리스트 중 오늘 이야기하는 다닐 샤프란이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오호~! 하며 그 사람을 다시 봐도 된다. 너무 막연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상당히 타당할 수 있는 이야기다. 레거, 텔레만, 혹은 유디나, 시게티, 켐페, 샤프란 등의 인물은 생전에 쌓아놓은 엄청난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남긴 업적, 작품을 알고 있다면 클래식 음악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봐도 된다는 것이다.
샤프란이 이룬 업적에 그토록 낮은 인지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 폐쇄된 사회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만 살았고 서방세계에 진출하여 많은 연주회를 가지긴 했으나 큰 명예욕이 없는 은둔자와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더욱 낮은 인지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구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한국사회의 특수성 때문에라도 샤프란은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루트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 샤프란이 1997년 2월에 사망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996년에 내한공연을 갖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은 더더욱 이 빛나는 거장의 진면목을 모른 채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샤프란은 1923년 상뜨 페테르부르끄 출생이다. 레닌그라드 필의 수석 첼리스트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당연히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 났기에 어린 시절부터 음악, 특히 첼로에서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첼리스트였던 아버지에게서 맨 처음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첼리스트로서의 준비를 마친 샤프란은 10세에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신설된 영재아를 위한 특수 음악학교에 입학, 아버지의 스승이기도 했던 알렉산더 쉬트리머(Alexander Shtrimer)를 사사하였다. 그리고 11세의 나이에 레닌그라드 필과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초연하며 데뷔하였고 14세엔 전 소련 음악콩쿨에서 우승하며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1630년 제작된 명기 안토니오 아마티를 상으로 수여받았고 아마티는 평생동안 샤프란의 분신이 된다.
로스트로포비치에게 감동을? 그렇다면 샤프란을 기다리시오
다닐 샤프란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교되는 인물이 있다. 첼리스트로서 한 평생을 살며 온갖 영광을 다 누리고 간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이다. 우선 두 사람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고시기도 비슷하며 콩쿨에서 두 번씩이나 공동우승을 했을 정도로 실력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르다.
샤프란이 1923년생이고 로스트로포비치는 그보다 4년 아래이다. 이른바 3세대 첼리스트의 기수이자 소련을 대표하는 최고의 첼리스트로 두 사람을 서슴없이 꼽는다. 참고로 1세대 첼리스트는 파블로 카잘스, 2세대는그레고리 피아티고르스키, 피에르 푸르니에, 엠마뉴엘 포이어만, 3세대는 바로 샤프란, 로스트로포비치, 그리고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야노스 슈타커를 꼽는다. 샤프란이 1943년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하는 해에 로스트로포비치가 입학하였고 졸업 후 모스크바 필 하모닉의 솔리스트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1949년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부다페스트 평화우호 축제 콩쿨과 1950년 체코 프라하의 봄 콩쿨에 나란히 출전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고 두 콩쿨에서 모두 공동1위 수상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1950년의 프라하에서의 콩쿨 결승에서 샤프란이 연주한 곡은 다름아닌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두 사람의 데뷔곡 또한 같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샤프란이 11세에 처음 레닌그라드 필과 협연하며 데뷔한 곡, 그리고 1960년에 카네기 홀에서 데뷔한 곡이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는데 로스트로포비치 역시 모스크바 필에서의 데뷔 곡이 이 곡이었을 정도로 둘은 라이벌이면서 끈질기게 비슷했다.
위의 사례에서 열거했을 정도로 샤프란과 로스트로포비치는 매우 닮은 듯한 행보를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부분에서 비교되며 다른 행보를 보였다. 우선 두 사람의 성격과 연주 스타일이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성격 자체가 대단히 외향적이고 명예욕도 강했다. 1974년에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미국에 망명한 후 엄청난 부와 명성을 누렸고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 앞에서 홀로 첼로 연주를 했을 정도로 쇼맨십도 강한 인물이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리스트임을 맨 처음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지휘자, 피아니스트, 사회운동가로서 다방면에 활동한 경력도 있다. 반면 샤프란은 대단히 사색적이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체제에 순응하였고 오로지 첼로 연주에만 평생을 바친 우직한 인물이었다. 훗날 여러 직위들이 주어지며 그의 명예를 드높였으나 연습하는 시간도 모자란다며 음악원의 교수직도 사임했던 일화도 있고 대단히 내성적이고 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전해진다.
연주스타일 또한 무척 판이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굵고 강한 선율로 압도하는 연주를 했다면 샤프란은 지극히 섬세하고 낭만적이며 완벽한 연주를 추구했다.
1949년부터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서방세계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샤프란은 1959년 로마 국제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971년에 소련의 인민예술가상을 수여받으며 소련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았다. 또한 1974년엔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의 첼로심사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소련과 동구권 내에선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바로 샤프란이 있었기에 소련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라는 거장이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도 크게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샤프란과 로스트로포비치의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듣고 감동했다면 아직은 샤프란을 기다리시오’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가 세상을 향해 밝고 뜨겁게 빛을 내는 강렬한 태양이라면 샤프란은 온 세상을 구석구석 부드럽게 감싸주며 때론 따스하게, 때론 시원하게 해주는 미풍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첼로라는 악기를 가지고 크고 웅장한 감동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샤프란은 구석구석 세심하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샤프란이 남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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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샤프란이 연주하는 바흐의 아리아. 아~! 무릎팍의 힘이 스르르 풀리며 주저앉게 만드는 마력의 연주임을 느낀다.
내게 샤프란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려준 곡은 너무도 유명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다. 샤프란의 연주를 듣기 전에는 이 곡의 절대명반인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만을 알고 있었던 내게 가느다란 선율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샤프란의 아름다운 연주는 넋을 놓게 만들었다. 그만큼 샤프란의 연주는 첼로의 굵고 강한 선율의 아름다움을 잘 살림과 동시에 섬세하고 부드러움이 공존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많이 듣는연주의 첼리스트는 프랑스의 첼리스트 피에르 푸르니에다. 푸르니에의 연주가 우아하고 세련된 연주라면 그 전 세대의 카잘스는 깊이 있고 굵직한 저음의 매력을 잘 살린 연주라고 할 수 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화려하고 힘차며 슈타커의 연주는 감정의 굴곡이 심하고 직선적이다. 또한 아직 내 블로그에서 소개하진 못했지만 프랑스에서 배출한 또 하나의 거장 모리스 장드롱이 있다. 장드롱의 연주는 화려하면서 매끈하며 직관적이다. 그래서 처음 첼로 연주곡을 듣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음반이 바로 장드롱의 음반이다. 샤프란의 연주는 이들 대가에게서 찾기 힘든 2%의 매력을 더 가지고 있다. 사색적이고 깊이 있는, 그리고 부드러움을 갖춘 연주라는 것이다.
샤프란은 많은 음반을 남겼으나 상당수는 구하기 쉽지 않다. 서방세계의 메이저 레이블과 녹음한 음반은 없고 대부분이 소련의 국영 레이블인 멜로디야(MELODIYA)에서 녹음한 것이거나 브릴리언트(BRILLIANT)에서 옛날 음원들을 수집해 만든 기획음반, 혹은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아니한 마이너 레이블에서 녹음한 음반들이기 때문이다.
작곡가별로는 레퍼토리가 다양한 편이다. 너무도 당연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전곡 녹음하였는데 카잘스, 푸르니에, 장드롱, 혹은 로스트로포비치처럼 널리 이름이 알려진 유명 연주자들의 연주만 들었다면 샤프란의 섬세한 연주도 꼭 한 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녹음 음반 역시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필청 권유음반이다.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고전파 음악가들의 곡 외에 샤프란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연주한 곡들은 러시아의 현대작곡가가 작곡한 곡이다. 특히 카발레프스키의 첼로 협주곡 1번을 완벽하게 연주한 나머지 작곡가 자신이 첼로 협주곡 2번을 샤프란에게 헌정했다는 일화도 있고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등 빨갱이 3대 음악가의 곡을 열심히 연주 녹음했다.
그 옛날 살벌한 냉전시대엔 소련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 명성이 유럽을 넘어 일본에까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다닐 샤프란이란 위대한 첼리스트의 이름조차 생소하며 연주를 들을 기회조차 봉쇄된 시절이 있었다. 더구나 반공이 국시였던 그 옛날의 한국사회라면야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다닐 샤프란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로스트로포비치에 비해 많은 면에서 가려졌던, 어찌보면 불운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로스트로포비치에 비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더 많은 부를 축적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체제에 순응했고 그저 구도자와 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첼로에 천착하며 항상 연구하고 매진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그늘에 가려 많은 빛을 보지 못했던 샤프란은 로스트로포비치보다 10년 먼저 세상을 뜨며 결국 그의 명성을 넘어서진 못했다. 그러나 이 대단한 거장이 세상을 뜨기 전 1년 전에서야 한국무대를 처음 밟았고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애호가들이 있었다. 그들의 입소문을 통해 결국 한국에서도 다닐 샤프란이란 연주자에 대해 재조명되었고 그의 빛나는 연주가 빛을 보게 되었다.
진정한 마에스트로란 이처럼 큰 명예욕을 갖지 않아도,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제 위치에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숨겨진 명인의 대명사인 샤프란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의 명반
브릴리언트가 내놓은착한 시리즈. Historic Russian Archives 시리즈는구 소련의 전설적인 명인들의 옛 음원들을 모아 좋은 음질에 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일찍이 네이버 캐스트라는 곳에서도 이 곡을 언급한 적이 있고 여기에선 네 장의 음반을 추천했다. 그 중 가장 추천한 음반이 로스트로포비치-카라얀-BPO의 조합이었다. 사실 이 음반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때문에 더더욱 유명한 음반이긴 한데 내 취향엔 드보르작 첼로협주곡만큼은 영 맞지 않았다. 끈적거리는 느낌하며 1악장에서 들리는 어긋나는 느낌이 별로였다. 대신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그런대로 들을만 했던 것 같다. 그외에 슈타커, 장드롱, 페레니의 음반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또 하나의 명인이며 데뷔, 콩쿨 결승을 비롯한 역사적인 순간마다 이 곡을 연주했던 샤프란의 명연주는 소개하지 않았다. 내 블로그에서는 숨겨진 명인 다닐 샤프란의 인생을 재조명하고 그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해보기 위해 그의 옛날 연주를 소개하였다.
Daniil Shafran, cello
Kirill Kondrashin (conductor)
Academic Symphony Orchestra of Moscow Phiharmonics
녹음: 1949 Mono
장소: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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