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빛낸 절정의 기교파 연주자이자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되는 헨릭 비에니아프스키(Henryk Wieniawski). 그의 이름은 21세기를 넘은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작품과콩쿨을 통해 빛나고 있다.

WIENIAWSKI: Legend in g minor op.17

19세기 초, 바이올린의 대마신(大魔神) 니콜로 파가니니 이후 유럽에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군웅할거 중이었다. 벨기에의 앙리 비외탕-오이겐 이자이, 브람스의 친구로 더 유명했고 헝가리 출신이자 독일에서 활동한 요제프 요아힘, 그리고 폴란드의 헨릭 비에니아프스키, 스페인의 파블로 사라사테, 헝가리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활약한 레오폴드 아우어 등이 그들이다. 이들 중 비외탕, 사라사테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은 이미 내 블로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했으니 관심있는 분들이 직접 찾아보시기 바라며 오늘은 이제껏 소개하지 않았던 헨릭 비에니아프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전설이란 작품을 소개한다. 즐거운 감상 되시길.

사후에 더 빛난 바이올린의 전설

비에니아프스키라는 작곡가의 이름은 사후 그의 이름을 딴 콩쿨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폴란드에서는 쇼팽의 뒤를 이은 국민적인 예술가로 콩쿨도 개최했고 그의 초상화가 삽입된 우표도 발행하였지만 사실 그는(대다수의 음악가가 그러하지만) 생전보다 사후에 더 많은 영광을 누린 작곡가로 기억된다.

비에니아프스키는 1835년 폴란드의 루블린 태생이다. 어릴적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이 남달라 8세에 파리 콘서바토리에 입학하였고 많은 순회공연을 다녔다. 12세에 첫 작품을 출판할 정도였다. 훗날 당대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안톤 루빈스타인의 초청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그와 함께 활동하였고 다시 루빈스타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순회공연을 하였다. 1875년에는 벨기에 바이올리니즘의 시조격인 앙리 비외탕(Henri Vieuxtemps)의 뒤를 이어 브뤼셀의 콘서바토리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1860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음악가들에 비해 많이 튀거나 화려한 삶을 살진 않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의 그의 업적을 기리며 우표, 주화에 그의 이름과 초상화를 삽입하였고 폴란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도 있다. 당대 최고의 기교를 지닌, 바이올린 주법의 혁신을 가져온 바이올리니스트로 기억되나 많지 않은 24편의 작품을 출판했고 그의 작품 중 많이 연주되는 곡은 고작해야 오늘 소개하는 전설(Légende), 바이올린 협주곡 2번, 화려한 폴로네이즈 1번, 스케르초 타란텔레 정도이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에겐 꿈과도 같은 이름이 바로 비에니아프스키이고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할 수 있는 최고의 등용문이 바로 그의 고향 루블린에서 개최되는 콩쿨이다. 사후 재조명되어 이름이 만세에 빛나는 것. 이 또한 나쁜 일은 아니겠지? 적어도 후손들은 잘 살 수 있을테니까.

오늘 소개하는 전설이라는 작품은 그의 나이 25세에 작곡되었다. 런던에서 이사벨라 헴튼(Isabella Hampton)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했다. 실의에 빠진 비에니아프스키는 이 곡을 작곡하였는데 다음날 그는 이사벨라의 어머니에게 음악회 초대장을 보냈고 이사벨라의 아버지 역시 음악회에 참석, 이 곡을 듣고 난 후 감동하여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였다는 헤피엔딩 스토리가 전해진다. 남녀의 사랑이 이렇게 극적 반전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기 힘든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겠다. 그만한 작품 하나 쓸 능력도 없어서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던 남자들에겐 부러울 따름이다. 진짜...더러워서 하모니카 부는 법이라도 배우던가 해야지 원.


하긴 베를리오즈의 경우도 있긴 하다. 잠깐 여담으로 베를리오즈의 이야길 하자면 베를리오즈가 대작 환상교향곡을 썼던 동기는 짝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사랑, 분노, 증오 등 오만가지 감정의 분출이었다. 결국 모크라는 여자 피아니스트에게 마음을 돌려 약혼까지 하게 되는데 이 모크라는 년 또한 돈 많은 피아노 회사 사장과 덜컥 결혼을 해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꼭지가 돌아버린 베를리오즈는 모크라는 년의 남편과 모크의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고 피스톨까지 장전했다. 그뿐 아니라 년 놈들이 사는 집에 몰래 침입하려고 하녀 복장에 신경흥분제, 아편까지 준비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

베를리오즈 선생. 나로서는...상상할 수도 없는 짓을 했군요. 그대의 기백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야 할지 아님 미친놈이었다고 욕만 해야 할지.


혹시 짝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거나 사귀는 연인과 위험신호가 온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오늘 이 곡을 더더욱 유심히 들어보시길 권한다. 혹시 아나? 하모니카라도 잘 불면 맘 바꿔서 금지옥엽 딸내미 얼렁 내줄지.

많은 음반이 나와 있는 곡은 아니다. 무터와 음반과 그뤼미오의 음반이 있는데 무터보다는 훨씬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벨기에 바이올리니즘의 전설 그뤼미오의 연주로 감상하겠다.

보너스 컷. 우리 시대의 전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와 여러분은 전설이란 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그래서 살아 있는 전설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전설이라는 것. 다른 게 아니다. 내 주위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전해주는 무한감동, 그것이 바로 전설이 아닐까? 난 그런 의미에서 2011년 5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전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의 존재를 온몸으로 전율하며 다시 느끼게 되었다.


임재범. 사람 목소리 들어가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 내가 정말이지 얼마 만에 사람 목소리 들어가는 음악을 듣고 온몸으로 전율하며 눈물까지 흘렸는지. 아마 태어나서 처음일 것이다. 그가 부른 ‘여러분’을 수 십 번을 돌려보는 내내 또, 또, 또 다시 전율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설은 멀리 있지 않다. 그는 그냥 그 자체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Arthur Grumiaux, violin
Edo de Waart (conductor)
New Philharmonia Orchestra
녹음: 1970/10/12-14 Stereo, Analog
장소: Wembley Town Hall, London

Posted by snip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