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연기 자욱한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하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c)의 모습. 전쟁이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또한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ALBINONI, Tomaso: Adagio in G minor

전국에 많은 비도 내리고 게다가 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 61주년이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새겨 보는 곡 하나 골라봤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빛나는 예술혼을 표현한 것으로 더 유명해진 곡, 바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이다.

rediscovery and revaluation

바로크 시대 음악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고 인기를 끌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 2차 대전을 치르고 난 이후부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후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사람들은 마음의 양식이 되는 문화예술을 갈구했고 이 시대적 요구에 맞물려 클래식 음악, 그 중에서도 특히 바로크 시대의 차분하고 가슴에 울림을 주는 음악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바로크 시대 음악의 가치가 재조명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활약한 작곡가는 아주 많다. 독일에는 바흐, 헨델, 텔레만이 있었고 음악의 본고장 이태리에는 비발디, 코렐리,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알비노니도 있었다. 그런데 그 옛날을 살았던, 그래서 사진도 없고 초상화로만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들은 사실 20세기에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 20세기에 들어서야 어딘지 모르는 곳에 파묻혀 있던 그들의 악보가 줄줄이 발견되면서 연주, 녹음을 통해 생명력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비발디의 사계가 그렇다. 베네치아의 한 성당에서 작곡가 비발디가 남겼던 악보들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클래식 음악인 비발디의 사계는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클래식 음악 중 어떤 음악을 가장 좋아하냐는 물음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마땅히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소개하는 알비노니라는 작곡가 역시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작곡가로 바흐와 동시대를 살며 J.S 바흐 역시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고 알려져 있다. 50여 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특히 그가 남긴 많은 오보에 협주곡은 오보에 연주의 레퍼토리를 확장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현재에 이르러서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곡은 아다지오라는 곡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아다지오라는 곡 역시 그가 작곡한 작품이 아니다. 이 곡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다지오-전쟁의 포화 속에서 울려 퍼진 숭고한 인간애

스티븐 갤러웨이의 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참혹한 전장 속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예술혼, 인간애를 사실감있게 표현한 화제작이다. 나도 아직 이 책을 읽진 않았다.

1992년 5월 27일 사라예보. 보스니아 내전으로 온 천지가 공포에 휩싸인 그 날의 오후 4시. 굶주린 사람들은 빵을 배급 받기 위해 한 빵집 앞에 줄을 서있었고 그때 마침 포탄 하나가 떨어지며 현장에 있는 22명이 사망하였다. 전쟁 통에서 굶주린 22명의 민간인이 포탄에 숨진 것쯤이야 별다른 뉴스거리도 안될 일이겠지만 그 광경을 직접 목도한 사람들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 공포, 그리고 끝내 그 공포마저도 넘어서는 용기와 인간애를 생겨나게 하였다.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이 모습을 보고 22명의 가엾은 영혼을 위로하고자 크나큰 용기를 발휘하게 된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한 대의 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첼로 연주일 뿐. 그는 포탄이 떨어졌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한 대의 첼로를 들고 심금을 울리는 세기의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연주곡목은 바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일초, 일분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무려 22일간 22인의 가엾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생사를 초연한 자세로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온 세상을 뒤엎는 폭발음 속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구슬픈 멜로디.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스마일로비치가 연주하는 아다지오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첼로 연주에 아비규환의 시끄러운 소음들은 잠시나마 자취를 감추고 그가 연주하는 아다지오에 수렴될 수밖에 없는 신기한 광경이 벌어지게 된다. 피를 뒤집어 쓴 채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하는 지옥의 야차들마저 총을 놓고 그의 연주엔 귀를 쫑긋이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만은 세상 그 어떤 곳보다 평화롭고 고요했다. 그렇게 절대정적의 순간 속에서 그의 연주는 그렇게 빛을 발했다.

스마일로비치의 연주가 화제가 되어 시민군의 결집이 계속되자 사라예보 점령군은 스나이퍼를 파견, 스마일로비치를 사살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시민군은 여성 저격수 애로로 이에 맞서게 한다는이야기는 스티븐 갤러웨이의 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작품에서 각색한 내용이다. 그러나 스마일로비치라는 한 첼리스트가 전쟁 속에서 보여준 극한의 용기, 인간애, 예술혼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선사한 것만은 사실이다.

스마일로비치의 일화가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면서 영국의 작곡가 데이비드 와일드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The Cellist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고 훗날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그린 영화 웰컴 투 사라예보(Welcome To Sarajevo)에서 역시 이 곡을 연주하는 첼리스트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데이비드 와일드가 작곡한 곡은 1994년에 열린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 요요마가 연주하였고 연주가 끝난 후 객석에 앉아있던 스마일로비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자~! 이처럼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한 작곡가, 그것도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뻔한 작곡가가 남긴 이 곡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위대한 예술정신을 알려줄 수도 있다는 일화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곡을 실제 작곡한 인물이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겠다. 이 곡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레모 지아조토(Remo Giazotto)와 알비노니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악보. 위에 명시된 것처럼 알비노니-지아조토의 아다지오의 작품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이다.

이태리의 음악학자인 레모 지아조토라는 인물이 있다. 주로 바로크 시대 음악가들의 악보를 정리하고 그들의 전기를 집필한 사람인데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경에 독일의 드레스덴의 주립 도서관에서 알비노니가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악보 한 쪼가리를 발견한다. 악보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6마디의 주선율, 베이스 뿐. 이 악보를 발견한 즉시 영감이 떠오른 지아조토는 마치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의 혈액에서 공룡 DNA를 추출, 공룡을 복원하겠다는 심정으로 하나의 곡을 완성한다. 그리고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토마소 알비노니라는 이태리 작곡가의 전기를 완성하며 그의 대표곡으로 바로 이 곡을 세상에 내놓아 빛을 보게 한다.

지아조토는 악보의 서문에 제1바이올린의 6마디, 그리고 베이스 부분을 드레스덴 주립 도서관으로부터 받아 작곡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이 곡의 제목을 알비노니-지아조토의 아다지오로 명시해놓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있다. 지아조토가 밝힌 알비노니의 악보 쪼가리마저 진위여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2011년 2월 26일에 방송된 명작스캔들 제작진의 취재결과 이 악보를 누가 썼는지 알 수 없고 알비노니의 필체 또한 아님을 밝혔다. 즉, 이 곡은 지아조토라는 음악학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알비노니의 이름을 차용하여 작곡한 곡일 뿐이다. 하지만 지아조토는 이 곡을 자신이 완성했지만 알비노니라는 작곡가의 이름을 업고 가야 장사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야 알비노니를 연구했던 그의 업적, 알비노니에 대한 존경심이 정당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알비노니-지아조토의 아다지오라는 작품 외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벽초 홍명희 선생의 대표작인 소설 임꺽정이 그렇다. 조선시대에 임꺽정이란 도적이 살았다는 짤막한 사료만을 가지고 홍명희의 작가적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민초의 반란, 밑에서부터의 혁명이라는 모토를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에게 심어주며 임꺽정이란 인물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런 인물을 배출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역사적 자부심마저 불어넣어 주게 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국지 역시 마찬가지다. 후한 말기의 유비는 당시 중국사회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영토만을 차지하고 황제 노릇을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후세의 작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유비와 그를 따르는 인물들이 의협심의 대명사로 추앙되고 소설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은 유비를 마치 중국을 대표하는 군주의 이상형으로 착각하게 되는 효과마저 가져오게 된다. 임꺽정이란 인물은 홍명희에게, 유비와 그를 따르는 집단들은 그들의 후손인 나관중과 다른 나라 일본의 요시가와 에이지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토마소 알비노니. 그 역시 역사속에 묻혀버릴 뻔 했던 그의 이름을 발굴해주고 그의 작품을 재조명하게 해준 지아조토에게 감사하지 않았을까?

알비노니의 이름을 빌려 아다지오를 작곡한 지아조토는 이 곡이 대히트 함으로서 어마어마한 인세를 챙길 수 있었다. 또한 그때까지 거의 작품이 알려지지 않았던 옛날 작곡가 토마소 알비노니는 아다지오라는 곡을 통해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아다지오는 바로크 음악의 재조명,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중요한 곡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만일 지아조토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 곡을 세상에 내놓았다면 대히트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상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지아조토라는 인물이 알비노니의 이름을 빌려 일신의 성공을 꾀했다는 점, 그리고 예술혼을 가장한 그의 상술을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지아조토는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알비노니가 남겼던 작품들을 정리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전기를 집필했을 정도로 알비노니에 대한 존경심이 각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알비노니의 업적을 기리는 일환에서 지아조토는 알비노니의 대표작으로 자신이 작곡한 아다지오를 전면에 내세웠고 알비노니 음악에 대한 재평가를 가능하게 했다. 아다지오의 대히트와 이를 통해 지아조토가 맛보았던 부와 명예. 이는 어쩌면 까마득한 옛날의 역사 속의 인물로만 기억될 수도 있는 한 작곡가의 일생을 더듬으며 업적을 기리는 작업을 했던 지아조토에게 감사했던 알비노니가 내려준 작은 선물이 아니었을까?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 많은 음반이 있을 것 같지만 또 그렇지는 않다. 이무지치, 네빌 마리너, 존 윌리엄스 등등의 음반이 있는데 그래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카라얀-베를린 필의 음반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하나의 멜로디를 이쁘게 쭉쭉 뽑아내는 능력 하나는 발군이었던 카라얀-베를린 필의 연주로 감상하겠다. 몇 번을 들어봐도 느끼지만 참 이쁘게 잘 뽑아내긴 했다.


David Bell (organ), Leon Spierer (violin)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녹음: 1983/09 Stereo, Digital
장소: Philharmonie, Berlin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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