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를 빛낸 스페인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àzquez)의 문제작 시녀들(Las Meninas). 수많은 후세의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안겨준 작품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 역시 이 작품에서 크나큰 영감을 얻었다.

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모리스 라벨의 아버지는 스위스, 어머니는 스페인계였다. 그 이유로 라벨의 성격은 ‘스위스 시계공’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결벽증에 가까울만큼 정확하고 치밀했지만 또 한편으로 스페인의 열정에 대한 동경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라벨의 작품 중 볼레로(Bolero), 스페인 광시곡(Rapsodie espagnole),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한 것 역시 어머니 나라에 대한 동경과 무관하지 않다. 라벨은 또한 머릿속에 하나의 관념을 그려 넣고 그 관념을 음악으로 체화시키는 작업을 무척 즐겼다. 자신에게 하나의 숙제를 내고 끝내 그 숙제를 풀어냈을 때의 즐거움으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관념들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현상, 예술작품 등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작품은 라벨의 이러한 작품세계를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또 하나 알아둘 것은 파반느라는 음악장르이다. 파반느는 파사칼리아(pasacaglia), 샤콘(chaconne), 사라방드(sarabande), 미뉴에트(minuet), 폴로네즈(polonaise), 왈츠(Waltz), 폴카(polka), 볼레로(bolero), 타란텔라(tarantella), 하바네라(habanera), 탱고(tango), 론도(rondo) 등등 아주 다양한 무곡 중 하나의 형식이다. 이 파반느라는 말은 이태리의 파도바라는 도시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고 파도바풍의 무곡(Padovana)이란 뜻이다. 또는 스페인어로 파보(pavón, 공작)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공작의 우아한 동작을 흉내 낸 춤으로 전해진다. 이후 세월이 흐르며 여러 변형을 거쳐 관현악곡으로 발전하였다.

오늘 소개하는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외에 라벨의 스승이었던 가브리엘 포레가 작곡한 파반느가 무척 유명하다. 그렇다면 이 곡을 듣는 분들은 이 부분에서 의문점이 생길 것이다. 어떻게 이런 흐느적거리는 곡을 들으면서 춤을 출 수 있었단 말인가? 사실 서양 중세사회에서 신체간의 밀착을 통한 춤은 19세기에 유행한 왈츠부터였다. 이 당시 왈츠가 하도 유행하고 왈츠의 고장인 빈이라는 곳이 춤바람난 년놈들로 득시글거려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귀족사회의 몰락과 시민사회의 급성장으로 당시 왕실에서는 왈츠를 권장, 계급간 갈등의 골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노력을 하였고 결국 왈츠는 19세기 중, 후반에 가장 유행한 음악 장르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21세기의 춤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는 여신 제시카의 모습. 자고로 춤이란 이런 매력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옛날 유럽 사람들은 파반느같은 음악에 맞춰 느릿느릿 잘도 췄다.

스페인의 궁정화가이자 황제 펠리페 4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라벨에게 크나큰 음악적 영감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었다. 라벨의 작품을 제대로 즐기려면 ‘시녀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시녀들’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도상학(iconography)적 지식이 요구된다. 지금부터 벨라스케스가 남긴 최대 문제작 ‘시녀들’을 하나씩 알아본다. 이런저런 많은 지식이 요구되니 글이 좀 길다.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Las Meninas(시녀들)-끝없는 수수께끼를 쏟아내는 걸작

‘시녀들’의 원제목은 ‘펠리페 4세 가족도(家族圖)’ 였다. 1656년에 제작된 후 1800년대 초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지면서 ‘시녀들’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작품을 그린 벨라스케스는 황제 펠리페 4세의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을 정도로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시녀들’을 완성한 후 4년 뒤 세상을 떠났을 때 펠리페 4세가 무척 슬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미술평론가들에게 끝없이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을 아무 것도 모르고 보면 궁금증도 생길 수 없겠으나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법. 이 작품을 조금이라도 알고 보면 볼수록 그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자~! 그럼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일천한 지식으로 여러분들께 이 그림을 소개하고 세 가지 문제를 내보겠다. 문제를 맞출 마음의 준비가 되셨으면 눈 크게 뜨고 다시 스크롤 위로 올려서 하나씩 살펴보시길.

1. 이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2. 이 그림 속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과연 누구를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일까?
3. 이 그림 속에서 캔버스를 들고 있는 화가는 물론 벨라스케스 자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자신의 모습을 이토록 두드러지게 표현한 걸까?

그림 속의 중앙엔 당시 5세였던 마르가리타 황녀가 있다. 황녀의 좌우엔 시중을 드는 시녀들이 있지만(시녀라고 하지만 그녀들은 사실 귀족부인들이다) 황녀는 그녀들의 시중을 받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캔버스를 들고 있는 벨라스케스, 황녀, 그리고 황녀의 두 번째 왼쪽에 있는 난쟁이(독일에서 온 광대이다)의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앞엔 누가 있을까? 그 정답은 저 뒤에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있다. 그들은 바로 펠리페 4세 부부, 즉 황녀의 부모님이다.

그렇다면 황제 부부가 그들의 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걸까? 만일 그렇다면 이들이 황제폐하께서 등장하셨는데 인사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일만 할 수 있었을까? 이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황제 앞에서 공주의 시중을 드느라 바쁜 시녀, 그리고 맨 오른쪽의 꼬마는 개와 놀고 있다는 설정.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이 그림의 주인공 역시 아직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과연 누굴 그린 걸까? 거울 속에 비친 황제부부를 그린 걸까? 아니면 시중을 들고 있는 5세의 황녀를 그린 걸까? 아니면 캔버스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걸까?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다.


벨라스케스 자신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도 논란거리이다.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한들 그의 신분은 결코 귀족이 될 수 없는, 일개 화가일 뿐이었다. 황제 부부를 모델로 그린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그토록 크게 표현한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훗날 밝혀진 사실이지만 원래 그 자리의 주인공은 벨라스케스가 아니었다. 황제의 요절한 아들인 카를로스 왕자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었으나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모습을 나중에 끼워 넣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림 속에서 거울에 반사된 것으로만 살짝 비춰지는 황제 부부의 모습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황제는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나지 않아도 언제든 모두를 굽어 살펴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그림 속에 넣은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가장 공감이 가는 해설이다. 즉, 황제의 절대적 권력의 위엄을 이렇게 살짝 간접적으로 삽입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기법은 그림 속 주인공들과 그림을 보는 사람간의 일대일 대면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림 속의 주인공을 보는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 건지 헷갈리게 만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세 가지의 중요한 질문만을 던졌다. 하지만 이 그림은 보면 볼수록 표현기법과 작가적 상상력에 감탄을 거듭하게 하는 문제작이며 수수께끼가 계속 쏟아진다. 이 그림에 매료되어 더 많은 걸 알고 싶은 분들은 책이나 웹서핑을 통해 알아보시길.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자료들이 넘쳐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슬픈 운명의 주인공들

지금부터는 이 그림 속 주인공들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보겠다. 우선 거울 속 주인공인 펠리페 4세를 주목해서 보시기 바란다. 그의 얼굴은 하관이 무척 길다. 펠리페 4세는 너무 심한 주걱턱 때문에 항상 바보처럼 침을 흘렸고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그는 연한 음식만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르가리타 황녀 역시 아버지를 닮아 하관이 길다. 그림 속에서는 5세 밖에 안됐기 때문에 그래도 봐 줄만 하지만 크면 클수록 애가 점점 더 못난이가 되어 간다. 그 이유는 근친상혼에 의한 유전병 때문이다. 그리고 유전병 때문에 펠리페 가문의 사람들은 장수하지 못하고 요절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유럽 황실에선 권력을 유지하고자 근친끼리의 결혼이 유행했다. 그들은 절대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자신의 몸엔 치명적인 병을 가지고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펠리페 4세의 부인인 마리아나 황후는 펠리페 4세의 여동생의 딸, 즉 조카이다. 원래 펠리페 4세의 아들인 카를로스 황태자의 아내로 점지해둔 여인이었으나 황태자의 요절 후 시아버지가 될 황제의 아내가 되어(부부의 나이차이는 무려 30년) 마르가리타 황녀를 낳은 것이다. 어떤가?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보자면 졸라 복잡한, 무슨 이런 잡스런 쌍놈의 족보가 있나 하겠지만 절대제국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이렇게 근친상혼을 했던 것이다.


마르가리타 황녀는 이 그림 속에서 5세의 귀여운 꼬마아이였고 훗날 자신의 삼촌인 오스트리아 문중의 레오폴드 1세에게 시집을 가지만 결혼 6년만인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출산 중에 고통을 이기지 못해 사망한 것이다.

황제 펠리페 4세는 스페인 제국의 황금시대에 즉위하였으나 그가 즉위한 이후 쇠퇴기를 맞기 시작했다. 내치보다는 주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그의 재위기간 중 스페인의 문화예술은 정점을 찍었다. 그의 방대한 미술 컬렉션이 프라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이다.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을 완성한 이후 펠리페 4세는 이 작품을 너무도 사랑하여 그의 집무실에 걸어놓고 두고두고 감상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작품의 완성 후 10년을 더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소녀가 된 마르가리타 황녀의 모습. 꼬마땐 그래도 봐줄만 했지만 더 나이가 들면서 주걱턱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불운의 그림자도.

이 작품을 그린 벨라스케스는 얼마나 더 살았을까?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 4년 후인 1660년에 세상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황녀 주위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귀족 부인들과 난쟁이마저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세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요절했거나 오래 세상을 살지 못했다.

'시녀들'의 후예

이 작품은 훗날 수많은 예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피카소가 있다. 피카소는 프라도 미술관장 시절에 이 작품을 계속 연구하여 50여편이 넘는 패러디 작품을 쏟아냈다. 화가들뿐만이 아닌 문학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이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다수의 추리소설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모리스 라벨 역시 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마르가리타 황녀의 슬픈 운명을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피카소가 패러디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새삼 느끼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

이런 책도 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나도 모른다. 궁금한 분은 직접 읽어보시고 답글 달아주시길.

전체적으로 슬프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곡이다. 곡의 제목이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라고 하지만 라벨은 황녀가 궁정에서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파반느를 추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며 이 곡을 작곡했지 추모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슬픈 분위기의 곡이 되어 버렸다. 또한 처음부터 마르가리타 황녀의 가엾은 삶을 염두에 두고 작곡에 착수한 것은 아니고 라벨과 친분이 있던 에드몽 드 폴리냑(Edmondde Pollignac) 공작 부인의 요청으로 작곡하였다. 1899년에 피아노곡으로 먼저 작곡한 후 1902년에 초연되었다. 그 후 라벨은 1910년에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크리스마스에 초연하였다.

관현악곡으로 나온 여러 종류의 음반이 있다. 여러 음반이 있겠지만 라벨의 관현악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 프랑스의 앙선생님 앙드레 클뤼탕스의 1962년 음반은 시공을 초월한 명반으로 평가 받는다.


Andre Cluytens (conductor)
Orchestre de la Societe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녹음: 1962/09/26 & 10/02, 03 Stereo, Analog
장소: Salle Wagram, Paris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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