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비온디(Fabio Biondi)와 그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의 모습. 이들이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는 충격, 혁명이란 이름과 함께 기억된다.

VIVALDI: Le Quattro Stagioni op. 8 Nos. 1-4(spring)

내가 파란 블로그에 클래식 음악을 올려대기 시작한지 어언 3년이 다되어가는구나. 이 3년의 시간 동안 무슨 곡들을 올려댔는지 쭉 감찰을 돌아보니 어라? 이상하게도 꼭 올렸어야 한 곡을 안올렸네? 바로 비발디의 사계 중 젤 유명한 ‘봄’을 올리지 아니한 것이다. 어라?

때론 설명이 필요 없는 곡도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1위라고 줄창나게 떠들어대는 곡이니 설명이 필요한 분들은 이 곡을 그토록 좋아하는 한국인들 붙잡고 물어보시라. 그대신 오늘 소개하는 음반에 대해서만 좀 설명을 덧붙이는 편이 좋겠다.

비발디의 ‘사계’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혹은 단체(챔버 앙상블, Chamber Ensemble)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아마도 한국인이 70-80%는 이무지치(I Musici)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이무지치는 내한공연도 많이 했고(나도 2008년 요맘때 했던 내한공연에 갔었다. 명불허전이니 한 평생 살아가면서 이무지치 정도는 꼭 한 번 보시기 바란다. 후회없다. 절대로!) 사계하면 떠오르는 전설적인 챔버 앙상블이 되겠다. 그러나 20-30% 정도의, 적어도 비발디의 사계를 몇 가지 음반으로 비교분석해서 듣는 이들은 이무지치의 음반은 사계가 이런 곡이구나 함을 알려주는 첫걸음에 불과한 음반임을 강변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계,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사계, 혁명적인 사계는 오늘 소개하는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음반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파비오 비온디의 이 음반은 기존음반들의 사계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최고의 혁명작이었다.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가장 큰 특징은 원전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원전연주란 무엇이냐 하면 말 그대로 옛날 것 그대로, 그~대로 따라서 해보자는 것이다. 제대로 복고풍으로 말이지. 짜장도 옛날 짜장이 맛있고 과자도 옛날 과자 쫀드기와 아폴로가 맛있고 커피도 미니스커트 입은 미스김이 배달해주는 옛날 다방커피가 맛있는 것처럼 옛날 것 그대~로 하는 것이다. 악기도 옛날 바로크 시절의 악기 그대로, 연주법도 옛날 것 그대로. 뭐든지 옛날 것 그대로.
바로 이 원전연주를 추앙하는 아티스트가 몇몇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지휘자 중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존 엘리엇 가드너란 사람이 있고 연주자 중엔 바로 파비오 비온디란 사람이 있다. 그리고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이 원전연주를 통해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사계를 연주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사계를 두 번에 걸쳐 녹음했다. 한 번은 1991년, 또 한 번은 2000년이다. 편의상 구반, 신반으로 불리는데 두 음반의 연주법엔 큰 차이는 없지만 가격이 차이가 있다. 구반은 사계와 비발디의 협주곡 2곡, 이렇게 딱 세 가지 레퍼토리만 넣고 18트랙으로 간단하게 구성된 것에 비해 신반은 조화의 영감이라는 뭔 알아듣기 힘든 제목의 곡을 집어넣어 2장의 시디로 발매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신반보다는 구반을 선호하는 편이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디아파종 황금상, 레페르트와르 ‘최고의 연주’, ‘1991년 올해의 황금 디스크’ 등등의 상을 휩쓸었다고 하니 내 블로그에 방문하셔서 이 연주를 들었다면 한 번 질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음반 하나 사서 음반꽂이에 꽂아놓으면 때깔도 나고 돈아깝진 않다.

판껍데기에 보면 이렇게 써있다. 전 유럽 시장을 뜨겁게 달군 비욘디의 파격적인 연주-사계를 이렇게 연주해도 되는가! 이렇게 연주해도 되는가! ㅎㅎ

사계의 음반은 겁나게 많다. 알려지지 아니한 음반들까지 죄다 합쳐서 약 500 여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20세기 초, 중반까진 존재감 자체가 없는 곡이었는데. 그렇게 겁나게 많은 음반들, 이무지치, 아이작 스턴, 무터, 물로바…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계의 연주는 무엇이냐? 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몇이나 될까?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비발디가 다시 살아 돌아와서 이것이다! 고 말하기 전까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파격적인 사계의 연주는 무엇이냐? 는 물음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음반이 바로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음반이다. 그들은 그렇게 혁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ps. 나랑 친하게 지내는 놈이 있다. 나랑 성향이 많이 비슷하다. 꽂히면 파고드는 오타쿠 기질도 있고 엉뚱한 놈이란 소리 숱하게 듣고 다니고. 술 좋아하고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문외한이다.
한 번은 내가 그 놈에게 프리츠 분덜리히 알아? 하고 묻자 “아! 씨바 내가 그걸 어케 알아?”하고 화를 냈다. 화를 낼 것 까지야…-_-+


또 한 번은 비온디 알아?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놈이 하는 말이

“비온디? 비발디 동생이야?”

-_-;

그래도 같은 이태리 사람이니까 꽤 기발하게 대답했지 않은가? 비욘세 오빠야? 라고 말한 것 보다는 말이지.

Fabio Biondi (Violin)
Europa Galante
녹음: 1991 Stereo, Digital
장소: Graz, Austria

전악장 연속재생


01. Spring Allegro


02. Spring Largo e pianissimo


03. Spring Danza pastorale. Allegro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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