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 중 2막의 피날레인 세미라미데의 죽음. ‘세미라미데’는 로시니가 남긴 비극 오페라이며비극 오페라 작품들은 남긴 희극 오페라에 비해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ROSSINI: Semiramide - Overture

로시니가 남긴 40편의 오페라 중 현재까지 공연하고 있는 작품은 4~5개에 불과하다. 또한 그 적은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희극이란 점에 있다. 로시니라는 작곡가의 생애, 그의 타고난 성격, 그리고 로시니의 음악 스타일 등을 감안하면 도저히 비극적인 이야기의 오페라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크게 작용할만하다. 그러나 로시니는 비극적인 오페라도 작곡하였다. 그 수가 많지는 않고 공연이 되지 않아서 가려져 있을 뿐이지만 틀림없이 있긴 있다. 그렇다면 왜 로시니가 남긴 비극 오페라는 왜 가려져 있을까? 이는 로시니 음악의 스타일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데 로시니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단순하고 경쾌한 선율, 명랑한 분위기, 유머와 재치, 간단한 극의 구성 등 당시로서는 ‘easy listening’ 류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심각하고 신중한 음악의 대명사인 베토벤은 로시니를 경원시하였는데(베토벤의 성격 자체가 어느 누구든 깔보는 유아독존형이긴 했지만) 딴 생각하지 말고 희극이나 쓰라는 충고조의 무시를 했다고 전해진다.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극의 줄거리가 재미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상의 비극을 지어낼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에서 비극의 극까지 경험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서편제에서도 그와 같은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창(唱)을 하는 수양딸이 너무 목소리가 곱기만 하자 恨을 심어주기 위해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먹여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장면도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좀 달리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나만의 해석으로 이 장면을 풀이하자면 이는 恨섞인 목소리를 내도록 하기 위한 순수한 예술혼의 발로라기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수양딸이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한 아버지가 언제까지나 자신의 곁에 한 여인을 묶어놓기 위한 애증이 뒤섞인 집착이었다.

뭐, 어쨌든 로시니가 남긴 비극 오페라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오페라의 서곡만큼은 자주 연주된다. 오늘 소개하는 세리라미데(Semiramide)란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 세미라미데라는 작품의 줄거리는 지난 5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을 보신 분들은 물론 알 것이다. 공연도중 꾸벅꾸벅 머리 처박고 잤으면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줄거리를 잘 모르는 분들, 그리고 5월에 초연된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머리 처박고 주무신 분들을 위해 이 오페라의 줄거리가 간략하게나마 설명된 세계일보 기사를 링크해놓겠다. 참고하시길.

로시니 숨겨진 걸작 오페라 ‘세미라미데’ 한국 관객과 첫 만남

여기에서 짤막한 동영상 하나 감상하겠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인 거장 토스카니니의 후계자였던 귀도 칸텔리의 살아생전의 모습이다. 세미라미데 서곡의 마지막 부분을 단원들과 리허설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 레너드 번스타인의 펄쩍펄쩍 푸닥거리 퍼포먼스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절도 있으면서 폭발적인 감정이 이입된 지휘동작을 보라. 칸텔리가 30년만 더 살았어도 카라얀, 번스타인은 2인자일 뿐이었을 거라는 세간의 평이 틀린 말은 아님을 이 짤막한 동영상을 통해서도 공감할 수 있다.
나처럼 오페라를 즐겨 듣지 않는 사람들은 오페라 서곡만을 따로 녹음한 음반을 구입해서 듣는 것도 괜찮은 선택인데 오늘 소개하는 음반도 그와 같은 음반 중 하나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올렸던 윌리엄 텔 서곡도 있고 그 외에 로시니의 오페라 작품 중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 ‘탄그레디’ 서곡, 그리고 로시니의 제자였던 베르디의 오페라 서곡도 몇 곡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가볍고 경쾌한, 그래서 친숙해지기 쉬운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꽤 괜찮은 선택인 음반이다.

Claudio Abbado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녹음: 1978 Stereo, Analog
장소: unknown
Posted by snip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