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에 함께 활약했던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한앙세르메. 한 사람은 독일을, 또 한 사람은 스위스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지향한 음악세계는 아주 많이 달랐다.

RACHMANINOV: The Isle of the Dead op. 29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내 블로그에서도 더위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주는 납량특집 음악을 올리려고 며칠 전부터 계속 생각했다. 과연 어떤 곡을 올려야 확실한 납량특집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전에 올렸던 곡 외에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이름부터 으시시한 작품인 '죽음의 섬'이란 곡도 납량특집으로 매우 부합한 곡이 아닐까 생각해서 이번에 올리게 되었다.잠깐이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죽음의 섬-수많은 모티브를 제공한 시대의 걸작

작곡가가 곡의 영감을 얻기 위해 문학작품에서 모티브를 얻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말러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는데 이들은 대단한 독서광이었고 여러 문학작품을 탐독하여 영감을 얻어 자신의 철학을 음악을 통해 체화시켰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다. 라벨과 오늘 소개하는 라흐마니노프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라벨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을 보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라는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19세기를 살았던 대표적인 낭만풍의 화가이자 염세주의자였던 아놀드 뵈클린(Arnold Böcklin)의 걸작인 ‘죽음의 섬(Die Toteninsel)’은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 결과 동명의 으시시한 분위기를 내는 곡을 만들게 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평소 염세주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1905년 파리에서 뵈클린의 이 그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면서 ‘이곳이야 말로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가 있다’라는 토마스 후드의 시를 생각하며 이 곡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1909년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우선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길 하자면 당근! 이 그림을 그린 작가와 문제작 죽음의 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겠지? 우선 아놀드 뵈클린이란 화가의 자화상부터 살펴본다.


미술, 고화에 대한 지식이라곤 거의 전무한,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그 숱한 명화들을 모두 둘러 보는데 10분의 시간도 채 소요되지 않은 문외한인 내가 명화에 대한 설명을 하자니 구차하기도 하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어쨌든 이 뵈클린이란 화가는 대단히 염세주의적인 사상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신의 자화상이랍시고 그린 이 그림자체가 대단히 충격적이고 이 사람이 대충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짐작은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렇다면 뵈클린의 대표작이며 라흐마니노프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었던 작품인 죽음의 섬은 어떻게 생겼을까?

뵈클린이 1880년에 처음으로 그린 죽음의 섬. 이후 4가지의 버전을 더 그렸고 세계 각각의 미술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내가 보기엔두 번째 버전이 가장음침한 공포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상학(iconography)의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나 역시 그쪽 분야라곤 전무하다. 갤러리 같은 곳에 가서 모르는 그림 앞에서 괜히 아는 척 폼잡고 있어본 적도 없고.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찌 되었든 이 작품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

우선 이 작품은 모두 5가지의 버전이 있다. 원작자인 뵈클린이 1880년부터 1886년까지 5번에 걸쳐 수정을 가하였는데 5개 중 4가지 버전이 전 세계 각각의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소장 중이다. 스위스 바젤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독일 베를린 국립 미술관,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흑백버전의 작품이 있고, 라이프치히 미술관에서 1886년에 그린 마지막 버전의 작품을 소장 중에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버전인 독일 베를린 국립 미술관에 있는 작품은 문화예술에 무척이나 조예가 깊었던 아돌프 히틀러가 소장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선 뵈클린은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해석은 감상하는 자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 이토록 기괴한 풍의 그림을 보고 내릴 수 있는 결론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림을 보면 어두운 하늘이 보이고 적막감이 느껴지는 작은 섬 하나가 보인다. 섬의 한가운데엔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올라있는 사이프러스 숲이 이 섬의 어둡고 적막한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작은 배 한 척이 보인다. 그리고 배를 타고 섬을 향해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한 사람은 하얀 옷을 입고 서있고 그 사람의 앞엔 관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뱃사공이 있다. 사람들의 얼굴이 아닌 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고 죽음의 섬이라 불리는 섬 안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에 보여지는 그대로를 묘사하자면 이처럼 할 수 있으나 여기엔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흰 옷을 입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다. 바로 관 속에 들어있는 시신의 영혼인 것이다. 또한 뱃사공은 죽은 이를 저승까지 인도하는 저승사자인 카론(Charon)이다. 즉, 이 죽음의 섬이란 죽은 이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공동묘지와 같은 곳이다. 이 곳은 현세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내세이며 절대침묵만이 필요한 죽은 영혼들의 안식처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또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그림을 그린 뵈클린의 이상향, 생사를 초월한 저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그리고 싶어했던 뵈클린이 이 그림을 통해 그 꿈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시끄럽고 골치 아픈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죽음의 공포마저도 초월하고 싶은 뵈클린의 욕망이 이 그림을 통해 표현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이 압도적인 공포와 침묵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통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다. 화가들 역시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미술작품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를테면 Val Lewton라는 영화감독인 1945년에 제작한 동명의 영화도 있다.
그 외에도 문학작품에서 이 그림을 통해 영감을 얻은 경우가 많다. 독일의 소설가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 그리고 미국의 SF작가 로저 젤라즈니(Roger Zelazny) 등이 영감을 얻어 문학작품을 창작했다. 일본의 만화작가인 토보소 야나의 인기작인 흑집사(黑執事)에서도 죽음의 섬에서 모티브를 딴 장면이 있다.



곡의 시작부터 조용한 적막을 깨고 음험하게 울려 퍼지는 하프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관현악의 하모니. 철썩거리는 파도를 헤치며 죽음의 섬으로 향하는 망자의 영혼, 그 영혼의 시신을 실은 작은 쪽배가 죽음의 섬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곡을 감상할 때 가급적 방안의 불은 모두 끄면 좋다.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어놓은 다음 스피커는 베이스로 맞춰놓고 감상하시길 권한다. 말복 더위 때마다 등장하는 납량특집의 영원한 친구 사다코의 눈빛과 정답게 대화하면서…


즐거운 감상 되시길 바란다.

음악은 수학, 수학은 음악-에르네스트 앙세르메

앙세르메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발행한 기념주화.그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지휘자로 50년동안 한 악단을 이끌었고 독일-오스트리아에 편중된고전음악계의 질서를 바꾸고자 노력한 선구자였다.

일전에 내 이웃이신 현성님은 바흐의 음악을 음악이 아닌 수학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 말씀에 수긍이 가는 것이 수학이나 음악이나 기호를 표시하고 기호에 나타난 것을 다른 성질의 세계로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수학의 천재이자 인류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인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의 광팬이었다. 또한 카라얀은 비엔나 공대에 입학한 공학도였고 첼리비다케 역시 음악과 함께 철학, 수학까지 함께 전공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오늘 소개하는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는 아예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수학자, 수학교수였고 어린 시절부터 수학의 신동이라 불렸던 독특한 이력을 가진 지휘자이다. 이처럼 음악을 하는 천재들에겐 수학이나 음악이나 여러 가지 기호가 일관된 질서를 통해 유기적인 결합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가지의 성질로 보이는 것 같다.

에르네스트 앙세르메는 1883년 스위스 브베에서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크나큰 업적을 남긴 지휘자이며 작곡가임과 동시에 수학자이며 자신이 창단한 악단에서 50년간이나 이끌며 걸음마부터 시작하여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끌어올린 학구파 지휘자, 스승과도 같은 지휘자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앙세르메의 아버지는 수학자, 그리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의 신동으로 소문난 수재임과 동시에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웠고 브라스 밴드를 지휘한 적도 있을 만큼 음악에 대한 사랑과 소질도 풍부했다. 로잔느 공업학교를 졸업하고 로잔느 대학에 진학한 후 다시 프랑스의 소르본느 대학에 입학,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앙세르메는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또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이때 심각하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전설의 명지휘자인 아르투르 니키쉬의 지휘를 보고 큰 감동을 느낀 앙세르메는 생계가 보장된 수학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위험부담이 많이 있지만 모험을 걸어 좋아하는 음악가의 삶을 살 것인가의 문제였다. 앙세르메는 수학을 가르치면서도 악기를 항상 가까이 했고 대학시절엔 학생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고 블로흐에게 작곡을 사사하기도 하는 등 양자를 병행하며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던 천재였다. 그리고 앙세르메는 결국 안정된 수학자의 삶보다는 음악가로서의 모험을 선택하였다.

데뷔는 1910년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으로 지휘자로 입문하게 된 앙세르메는 1914년까지 로잔느, 몽퇴르를 중심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앙세르메의 음악인생을 움직여 줄 운명의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발레계의 돈 킹, 최고의 흥행업자인 디아길레프였다. 앙세르메는 디아길레프를 만나면서 디아길레프가 창립한 발레 뤼쓰(Ballet Russe)의 지휘자로 8년간 활약하며 발레 음악을 주로 지휘하게 된다.

앙세르메는 동시대의 작곡가들과의 친분도 깊었다. 프랑스 여행 중 만나게 된 드뷔시, 라벨에게 음악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1차대전 중에 프랑스로 피신한 스트라빈스키와 특히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는데 동성애자로 유명한 디아길레프가 둘의 관계를 심하게 질투할 정도였다. 라벨,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쓰가 기획한 발레에 삽입될 곡을 작곡하였는데 디아길레프-라벨, 스트라빈스키-앙세르메로 이어지는 음악적, 사업적인 커넥션이 완성되며 앙세르메가 훗날 발레음악의 신이라 불리게 되는 토양이 바로 이 시기에 다져진 것이다.

1918년에 이르러 앙세르메는 또 하나의 모험을 시도하였다. 자신이 직접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게 된 것이다. 바로 앙세르메의 분신과도 같은 오케스트라인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이다. 이 악단을 조직한 앙세르메는 1967년 클레츠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무려 49년간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세계적인 관현악단으로 발돋움하게 하며 단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악단을 통해서 다룬 음악들도 앙세르메 특유의 고집과 도전정신이 함께 한다. 그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는데 악단이 다룬 주요 레퍼토리는 고전음악보다는 현대음악들이 주류였고 앙세르메의 고유한 해석을 곁들인 참신한 시도들이 많았다. 성격상으로 자신의 확고한 원칙하에 움직이면서도 도전정신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토록 사이 좋았던 스트라빈스키와 훗날 음악적 견해 때문에 완전히 틀어진 것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지휘자로서의 이력 외에 몇몇 피아노 곡을 작곡하기도 했고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앙세르메와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은 1946년 데카(DECCA)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발한 음반녹음을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 ‘녹턴’ 등을 녹음하였다. 이 활발한 음반활동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968년까지 이어졌다. 사망하기 전까지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항상 실험정신으로 충만했던 앙세르메. 그는 현대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신음악의 기수가 되고자 했다.

1967년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게 했던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물려주고 난 뒤 로잔느를 떠난 앙세르메는 1969년 2월 20일,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앙세르메가 남긴 음악-수학과 음악이 만나 이뤄낸 도전정신

앙세르메는 그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특한 색채감을 살린 지휘자로 평가 받는다. 음악가임과 동시에 수학자였던 그의 독특한 이력은 그의 음악에도 냉철하고 지적인 개성을 불어넣는다. 대단히 치밀한 성격에 수학적인 논리가 논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음악을 만났을 때 어떤 효과를 내는지 잘 보여준 지휘자가 바로 앙세르메이다. 그의 수학적인 치밀함은 음색을 표현하는 음향효과에서 크게 빛을 발했다.

그의 음악과 비슷한 스타일의 또 하나의 지휘자는 아마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있을 것이다. 감정에 함부로 휩싸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앙세르메의 지휘자로서의 철학 중 하나는 지휘자란 모름지기 악보를 완전히 외울 정도로 스코어에 통달해야 한다는 것인데 막상 지휘할 땐 언제나 악보를 펴놓고 할 정도로 늘 정확하고 원칙을 지키는 지휘자였다. 마르케비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천재작곡가로서의 길보다는 지휘자로서의 삶을 더 좋아했는데 지휘자는 결코 감정에 휘둘려 지휘대 위에서 땀을 흘려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앙세르메가 남긴 음악 중 가장 많이 다룬 레퍼토리는 그를 발레 음악의 신이라고 불리게 한 발레 음악이다.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페트르슈카, 봄의 제전으로 이어지는 3부작 발레 음악, 그리고 라벨의 발레 음악 등에 있어선 레코드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평가 받는다. 또 하나의 역사적인 명반을 찾는다면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이다. 앙세르메는 이 곡을 평생 1000번 이상 지휘한 것으로 도가 튼 인물이었다. 지금이야 이 곡의 음반이 워낙 여러가지가 나와서 앙세르메의 음반이 저평가 받는 경향이 있지만(네이버 캐스트에서도 이 곡을 소개할 때 앙세르메의 음반은 쏙 빼놓았다) 이 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 바로 앙세르메의 음반이다. 그 외에 러시아 국민악파 발레키레프,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등의 음악도 많이 다루며 명반을 남겼다. 프랑스 작곡가의 곡도 많이 다루었다. 베를리오즈, 비제, 프랑크, 드뷔시를 비롯하여 루셀의 현대 음악, 라벨의 발레 음악 등 여러 레퍼토리를 녹음하였다. 그 외에 스위스 출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작곡가의 곡을 녹음하여 널리 세상에 알린 업적 또한 대단했다. 그의 스승이었던 블로흐의 곡을 비롯하여 프랑크 마르탱, 오네게르의 곡을 녹음하였다. 이에 반해 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의 곡은 그다지 많이 다루지 않았다. 베토벤,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였고 하이든, 모차르트의 몇몇 곡들의 음반 녹음을 한 정도이다.

자신이 직접 조직한 오케스트라를 무려 50년간이나 이끌며 세계적인 관현악단으로 발돋움하게 한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하나의 악단에서 반세기의 시간 동안 이끈 것은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Concertgebouw Orchestra)의 멩겔베르크, 레닌그라드 필의 에브게니 므라빈스키 등과 함께 전설의 반열에 당연히 올라있는 기록이다. 이 기간동안 앙세르메는 자신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색채감을 살린 수많은 명연주와 명반을 남겼다. 어쩌면 수학자가 되어 안정된 수입을 벌며 수학교사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는 모험적인 선택을 했고 크나큰 성공을 거두며 스위스를 대표하는 지휘자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거장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다른 지휘자들이 흔히 다루는 레퍼토리보다는 현대음악에 더 많은 애착을 갖고 언제나 참신한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다. 앙세르메의 삶은 삶은 수학과 음악이 함께 이뤄낸 위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죽음의 섬을 녹음한 음반

앙세르메의 음악을이해할 수 있는 대표명반 중 하나. 그가 수도 없이 남겼던 대표적인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는 꼭 들어봐야 할 명연 중 하나이다.

죽음의 섬은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지휘한 음반부터 시작해서 많은 수의 음반이 있다. 러시아 작곡가의 관현악곡을 지휘하는데 정평이 난 스베틀라노프의 음반이 가장 눈에 띈다. 특유의 저돌적이고 힘찬 멜로디는 광풍에 휩싸인 죽음의 섬을 표현해내고 있다. 그 외에도 달리 설명이 필요없는 또 하나의 전설,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한 음반도 있다. 그 외에 러시아 작곡가의 곡을 잘 지휘하기로 소문난 마리스 얀손스의 음반과 죽음의 섬을 아예 판껍데기로 커다랗게 그려놓은 플레테뇨프의 음반도 있다. 앙세르메의 음반은 그가 처음 스테레오 녹음을 시작한 시점에 녹음한 것인 것 웅장하면서 음침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이어지는, 앙세르메 음악 특유의 색채감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는 명반이다.

Ernest Ansermet (conductor)
Orchestre de la Société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녹음: 1954/09 Stereo, Analog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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