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시대에 불꽃처럼 인생을 살다가 같은 시기에 영면한 두 거장 피아니스트의 만남.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손등 키스를 받는 아니 피셔.


차분한 모습으로 앉아서 연주하는 아니 피셔. 그러나...그녀의 연주에서 차분함만을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깜짝 놀랄만한 압도적인 힘과 스케일에 반하게 된다. 


20세기를 살았던 여류 피아니스트 중 마르타 아르헤리치보다 유명하진 않지만, 또한 릴리 크라우스만큼 특정 작곡가의 음반에서 대체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진 않지만, 마리아 유디나만큼 카리스마와 기행으로 유명하지도 않지만 음악성과 천재성만은 그들보다 결코 뒤지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피아니스트가 바로 아니 피셔이다. 


아니 피셔는 191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이며 1995년에 세상을 떠난,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음악 천재들의 산실-리스트, 바르톡, 코다이, 슈타커, 크라우스-헝가리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그녀는 리스트 음악원을 졸업하고 리스트 국제 콩쿨에서 입상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많은 활동을 하며 주옥같은 음반을 남긴 대 피아니스트였지만 그녀가 남긴 음반은 구하기 쉽지도 않을 뿐더러 많이 알려져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숨겨진 보물은 숨겨져 있기에 그 가치를 모르지만 보물이기에 반드시 꺼내서 그 찬란한 빛을 한 번은 보아야 한다. 바로 피셔가 남긴 필생의 역작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 숨겨진 보물이라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젠 그 어느 블로그에서도 음반을 리핑해서 음악파일을 올릴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내 블로그에서 더이상 음원을 들어볼 수 없으니...이 좋은 걸 뭐라고 표현하고 싶지만...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 파란 블로그 시절이 정말 좋았는데 말이다. 


길렐스, 박하우스, 켐프, 혹은 슈나벨 등의 옛날 거장의 음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특히 추천해주고 싶은 대단한 음반이다. 일단 여류 피아니스트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의 음반을 녹음했다는 것 자체부터 호기심을 끌만한 것이며 듣다보면 단순히 호기심, 그리고 여류 피아니스트에 대한 선입견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대단한 연주를 들려준다. 듣고 있으면 정말이지 썸찟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1977~1978년의 스테레오 녹음이며 음질도 훌륭하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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