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조우하는 리히터. 루빈스타인은 리히터에 비해 한참이나 선배이고 부와 명예까지 모두 갖춘 예술가였다. 솔직히 상대가 안되는 것 같았던 두 사람은 그러나...


가끔 설명이 필요없는 존재를 접할 때가 있다. 그 어떤 수식어, 관용어조차 매우 불필요하게 만드는 존재들이 있다. 이를테면


 

화장품 모델까지 하고 있는 이 여인, 김소연에게 아름답다, 우아하다 따위의 흔한 수식어는 너무 진부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다 알고, 알만한 사실임이 분명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던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남긴 너무도 많은 음반, 그 중에서도 공연실황 음반이라면 이렇듯 설명이 필요없는 음반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이 음반만큼은 그 중에서도 첫번째로 꼽고 싶다.




바로 리히터가 처음으로 소련을 벗어나 외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던 그 즈음에 녹음된, 그것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쿡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실황 음반이다.


이 음반에 대해 연주의 퀄리티 등등에 대해선 그냥 서로간에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 이 음반은 그냥 무조건 들어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최고의 공연실황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말이다.


물론 음질은 무척 좋지 않다. 그 유명한 도레미 레이블이다. 도레미 레이블의 장점은 값싸고 내용이 충실하다는 점이고 단점은 복각 레이블 중에선 그나마 음질이 좋지만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음반은 그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들어야 마땅하다.


부연설명은 필요없지만 이 음반에 대한 배경, 후폭풍은 언급하는 게 좋겠다.


1. 당대를 대표하는 소련 최고의 피아니스트는 리히터의 절친인 에밀 길렐스였다. 그 에밀 길렐스는 서방세계를 순회하며 온갖 찬사를 한몸에 받고 다녔는데 '나보다는 리히터를 기다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2. 리히터는 어린 시절 2차대전이 발발한 이후 아버지는 고문사로 사망하고 어머니는 서독으로 끌려가며 부모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어머니의 생사조차 몰랐던 리히터는 바로 이 공연을 통해 어머니와 재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3. 74세의 백전노장이자 미쿡을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였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리히터가 이 공연을 통해 최고의 스타로 거듭나자 크나큰 위기감을 느낀다. 그리고 리히터가 떠나고 간 바로 그 카네기홀에서 한달동안 무려 10회의 연주를 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위의 도레미 레이블의 음반 외에 또 다른 레이블의 음반도 있다. 수록곡은 서로 다르다.



이 음반에서는 특히 쇼팽의 연습곡 '혁명'을 강력추천한다. 뭐랄까? 앓던 이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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