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9세기 후반 낭만주의 음악의 선두주자였으며 독일 음악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았다. 표제음악, 교향시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돈환' '알프스 교향곡' 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지금도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STRAUSS, R.: Also sprach Zarathustra op. 30

K-1 시합. 팽팽한 전운이 감도는 경기장내에 일본의 '국민적 비스트' 인 밥샙이 등장한다. 어마어마한 근육질의 거구가 등장하여 걸치고 있는 가운을 힘차게 벗어던지며 그 위용을 뽐내고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열렬한 박수로 그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렇게 '국민적 짐승' 이 등장할 때 어김없이 나오는 음악이 있다.

각종 시상식등에서 처음에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를 잡을 때 둥둥둥~~~ 하며 울려 퍼지는 너무도 친숙한 음악이다. 바로 슈트라우스의 교향시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도 삽입된 이 유명한 노래는 19세기 후기 낭만주의의 거장인 슈트라우스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을 읽고 너무도 감명받아 작곡하였다. 당시 철학을 음악으로 만든 사상 유례가 없던 사건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통해 다시금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19세기 낭만파 음악의중심이며 독일 음악의 최고봉으로 꼽혔던 천재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생애를 더듬어보며 세기의 거장 프리츠 라이너의 대표명반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감상하겠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독일 음악의 마지막 자존심

1870년 무렵의 사진. 슈트라우스가 6세 경의 사진이다. 현존하는 그의 가장 최초의, 가장 오래된 사진이라고 한다.

멀리는 바흐, 헨델에서부터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귀로 듣는 음악이란 분야에 있어서 독일 민족이 끼쳤던 영향력이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의 음악사를 지배했던 찬란한 독일민족의 음악사는 19세기의 마지막과 20세기의 초까지 장식하였으나 아쉽게도 그 이후엔 음악과 영상을 비롯한 모든 엔터테이너의 맹주자리를 미국에게 빼앗긴 듯 하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의 초입인 지금까지도 문화예술에서의 미국의 전 세계적 지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아마도 그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전 세계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마지막 독일인이었을 것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생애

1888년 경의 사진. 천재 작곡가로, 명 지휘자로 그의 명성을 온 천하에 떨치고 있을 당시의 사진이다.

슈트라우스의 생애를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독일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대를 살았던 뛰어나지만 나약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슈트라우스는 독일 낭만파 작곡가의 마지막 세대이며 낭만파 음악을 가장 찬란하게 빛냈던 한 사람이다. 작곡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당대의 명 지휘자였고 교향곡, 협주곡, 관현악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종교음악을 제외한 전 장르에 걸쳐 왕성한 작곡활동을 하였고 그가 남겼던 주옥같은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널리 연주되고 많은 음반들이 발매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대신 시류에 휩쓸려 가는 나약함을 보여주었다. 바로 그의 천재적인 예술성이라는 강렬한 빛의 그림자로 항상 따라다니는 나치에의 부역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선동정책에 가장 충실하게 따랐고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의 올림픽찬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위대한 작곡가였고 지휘자인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지식인이었음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다.
나치의 선전부장 파울 요셉 괴벨스와 악수하고 있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하는 독일음악 최고의 작곡가였고 독일의 자랑이었으나 나치에 부역한 혐의는 그에게 씻을 수 없는멍에가 되어일생동안 그를 괴롭혔다.그가 뿜어냈던강렬한 빛만큼 어두운 그림자 역시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나치의 요구를 한 번도 뿌리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녔다는 점에서 훗날 법정에서 무죄판정을 받기도 하였으나 푸르트벵글러와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예술가의 행적으로 결코 옳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바로 그의 일족이 유대인의 혈통이 섞였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치의 비위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점이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부추겼다).

한가지 덧붙일 내용이 있다.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는 베를린에서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것은 이미 영상물로도 증거가 남아있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또 한가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안익태가 일본 찬양 작품 '대일본축전'을 일본에서 지휘한 적이 있는 것이다. 음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되는 이 엄청난 사건. 그런데 바로 '대일본축전'이라는 이 미친 우익꼴통조의엄청난 제목의 관현악곡은 바로 안익태의 스승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이다.

슈트라우스의 음악

말년의 슈트라우스. 바로 그가 사망한 해인 1949년에 찍은 사진이다. 슈트라우스는 85세의 나이에 바이에른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슈트라우스는 12세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여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프란츠. J. 스트라우스)역시 뮌헨궁정관현악단의 명 호른주자였는데 음악을 사랑하는 가풍과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음악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첫 시작은 악단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였다. 20세가 되어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맹활약하며 그의 교향곡이 뉴욕필에서 초연되기도 하였다. 음악가로서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며 전 세계에 그의 빛나는 명성을 알릴 수 있었다.

슈트라우스 음악의 특징은 독특한 실험정신에 입각한 파격적인 음악이라는 점과 여러 장르에 걸쳐 매우 다작을 했다는 점이다.
그의 음악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다분히 퇴폐적인 음악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사후에 다시금 후기작품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음악들은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교향곡, 협주곡, 관현악곡, 성악곡, 실내악과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방대한 양의 작곡을 하였다. 그가 남긴 관현악곡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갑빠잡는 분위기의 서주를 알릴 때 너무도 많이 쓰이는 레퍼토리이고 '돈환' 또한 수많은 교향악단이 많이 연주하고 있다. 또한 '엘렉트라'와 같은 오페라들도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슈트라우스는 다작의 작곡가로서, 당대의 명 지휘자로서 그의 명성을 널리 알렸으나 예술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환영이나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음악에는 많은 철학이 깔려있다. 한때 그는 쇼펜하우어에 심취했었고 그의 음악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작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바로 니체의 동명의 책을 읽고 너무도 감동하여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사상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음악은 밝고 화사한 느낌보다는 웅장하고 우울하며 격정적이다. 너무도 모순되어 있다. 인간 슈트라우스는 소극적인 성격에 일신의 안녕을 위해 나치에 협력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했으나 그의 음악들은 대단히 격렬한 인상을 풍긴다는 점이 너무도 모순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했던 예술과 인간으로서의 삶의 부조리에서 느껴지는 모순이 참 재미있기도 하다.

프리츠 라이너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이너 이 할배는 사진찍을 때 인상 팍팍 쓰면서 찍는 게 매우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모든 사진이 이렇게 뭔가불만이 가득 찬 얼굴들이다. 누가 이 할배에게 '김치'란 좋은 말을 알려주었더라면 이렇게 인상쓰진 않았을 것이다.

프리츠 라이너(Fritz Reiner)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 지휘자이다. 라이너-셀-오먼디-솔티 등으로 이어지는 헝가리 지휘자의 선두주자이며 시카고 교향악단의 전설적인 지휘자임과 동시에 그 이름도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스승이기도 하다. 20세기를 살았던 위대한지휘자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음악은 대단히 강렬하고 직선적이며 깔끔한 맛이 느껴진다. 절대에둘러 가는 법이 없고스트레이트로 주제를 향해 돌진한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강하고 빠른 비트를 원하는 이라면 라이너를 무척 좋아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부드럽고 매끈한 느낌을 원한다면 라이너의 음악이 그다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긴 힘들 것이다.

라이너는 그가 만드는 음악처럼그야말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독재적 카리스마의 표본과도 같은 사람이다. 이런 류의 지휘자로는 토스카니니, 라이너, 셀, 므라빈스키, 첼리비다케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불같은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이끌며 수많은 명반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가장유명한 음반 중의 하나가 바로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되겠다.

거장 라이너가 만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부를레스크가 함께 수록된 음반. RCA에서 제작한 이 음반은 동곡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이 음반을 처음 샀을 때의 그 기분...진짜 날아갈 것 같았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대표적인 명반으로는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것이 프리츠 라이너의 것과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등인데 카라얀 특유의 매끈함과 웅장함이 함께 하는 음반과 강인한 힘으로 직선적으로 돌진하는 라이너의 음반을 비교하면서 듣자면 대단히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라이너와 CSO의 음반에게 난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ny Orchestra
녹음: 1962/4.30, 5.1 Stereo, Analog
장소: Orchestra Hall, Chicago

전악장 연속재생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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