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e`(A. Toscanini)
교향곡/-베토벤 2010. 9. 7. 18:26 |귀여운 손녀 소냐 호로비츠와 함께 한 즐거운 시간. 토스카니니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딸이었던 소냐를 무척 사랑했고 지휘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할아버지에게도 손녀에 대한 사랑만큼은 각별했던 것이다.
BEETHOVEN: 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e"(A. Toscanini)
내게 2010년의 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엄청나게 무더운 날씨에 폭우, 그리고 태풍까지. 여름이 다 지나갔나 했는데 또 하나의 태풍이 9월초에, 그리고 또 하나의 태풍도 스탠바이 상태로 이 나라 국민들이 얼마만큼 자연재해에 버티는지 endurance test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앞서 4월엔 그렇게 춥고 눈까지 내리더니만.
전혀 가을의 초입 같지 않은 이런 날. 한여름에 들었어야 할 곡을 하나 올린다. 불후의 명곡 중 명곡, 베토벤 교향곡 6번이다.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뿐더러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 곡은 다 한 번 이상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게다가 내 블로그에서도 이미 브루노 발터와 칼 뵘이라는 거장들이 남긴 불후의 명반을 소개한 적도 있다. 그래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음반은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거장, 토스카니니의 음반이다. 일찍이 NBC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했던 이 음반은 구시대의 명반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으나 이젠 워낙 오래되어서인지 그 가치를 많이 잃은 듯 하다. 뿐만 아니라 앞서 소개했던 발터, 뵘의 명반들 또한 이젠 추천 음반의 대열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고나 할까? 네이버 캐스트라는 곳에서도 이들 세 영감님의 불후의 명반을 추천음반으로 소개하지 않고 있다.
어찌 되었든 오늘 소개하는 이 음반은 토스카니니가 남긴 불후의 명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특히 주의 깊게 들어야 할 곳은 4악장이다. Gewitter. Sturm(폭풍우)라고 불리는 이 악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장이며 이 4악장에서 얼마나 미친 듯이 광풍이 불어대는 느낌을 잘 살리느냐에 따라 잘된 음반과 그렇지 아니한 음반을 구분하기도 한다. 토스카니니와 NBC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4악장의 도입부에서는 천천히 힘을 끌어올리면서 비축해 놓은 다음 팀파니와 금관악기, 그리고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한꺼번에 쾅~!하고 내려치는 듯한 엄청난 굉음을 들려주고 있다. 이처럼 힘차고 일사불란한 사운드를 제대로 맛보려면 푸르트벵글러의 전시녹음 정도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삐익~삑 신경질적으로 울어대는 피콜로 소리를 더더욱 주의 깊게 들어보시기 바란다. 피콜로라는 악기는 목관악기 중 가장 작고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일사불란함 속에 파묻히는 경우가 많지만 워낙 고음을 내기 때문에 한 번 성질내서 울면 그 소리가 저~위의 관객석 2층 끝까지 고막이 터질 만큼 크게 들린다.
피콜로 소리는 음질이 좋은 음반에서 잘 들린다. 구시대의 음반 중 비교적 음질이 좋은 1958년 발터-콜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반은 4악장에서의 폭발력이야 토스카니니의 것과 비교가 되진 않지만 피콜로 소리는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1983년 라이브 음반은 이 곡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꽤 방정맞지만 4악장만 놓고 본다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고 피콜로 소리도 잘 들린다.
단정적으로 표현하자면 난 전원 교향곡을 들을 때 4악장의 이 피콜로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나를 먼저 듣고 전원교향곡 전체를 평가한다. 오늘 소개하는 이 토스카니니의 음반은 4악장에서의 미친 듯한 광풍,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울어대는 피콜로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명연이다. 금새라도 하늘이 뒤집어 질 듯이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9월초. 여름의 마지막 기분을 만끽해 보시길.
이미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소개할 때 짤막하게 언급했지만 세기의 대지휘자 토스카니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알아보겠다. 특히나 90세가 가까워질 때까지 쇠할 줄 몰랐던 그의 초인적인 암기력에 대한 일화, 그리고 카리스마에 대한 일화를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뿐
토스카니니하면 떠오르는 모습 중 하나. 바로 악보를 코앞에 바짝 대고 읽는 모습이다. 토스카니니는 젊은 시절부터 심한 근시였고 때문에 지휘할 때에도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어서 통째로 암기해버렸다. 그의 초인적인 기억력. 알고보면피나는 노력의 소산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를우러러보게 한다.
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이 노장(老將)이란 표현을 쓸 때 흔히들 사용하는 수식어는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뿐’이란 것이다. 난 얼마든지, 얼마든지 펄펄 날아다닐 수 있는데 주위에서 자꾸 나이가 들어 이젠 한 물 갔다라는 수근거림이 너무 싫어서 더욱 분발하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노장들이 쓰는 표현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반을 관통하는 세계 최고의 지휘자, 금세기 최고의 지휘자로 서슴없이 추앙 받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그에게는 진정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에게 노년이란 사전적 의미에 불과할 뿐이었고 초인적인 기억력, 꼿꼿한 자세, 넘쳐나는 정력은 모든 이의 기를 질리게 함에 충분했다. 심지어는 넘쳐나는 끝없는 정력, 기력을 토스카니니 스스로가 한탄할 정도였다.
이런 일화가 있다. 1956년, 이탈리아의 젊은 피아니스트 마리오 델리 폰티라는 사람이 미국 순회연주 기간 중 토스카니니를 방문하여 음악이야기를 나누었는데 1956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폰티는 토스카니니 앞에서 연주하기 위해 17세기의 작곡가 미켈란젤로 로시라는 작곡가의 소품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곡을 골랐다. 그때 토스카니니가 즉각 반응하였다.
‘그 작품은 두 가지 판이 있는데 둘 다 네 번째 마디에 틀린 부분이 있다’
이 말을 들은 폰티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작곡가의 알려지지 않은 곡에 두 가지 버전이 있고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작품들을 대충 보는 정도가 아니라 곡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고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 것을 다 알아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56년 크리스마스의 다음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토스카니니는 1957년 1월 16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1956년 크리스마스는 그의 89번째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였으며 그 후 채 한 달을 더 살지 못하고 사망하였던 것이다. 실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기억력임에 틀림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89번째 크리스마스엔 어떤 모습일까 각자 상상해보시기 바란다. 만일 내가 생애 89번째 크리스마스에 살아있다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치매예방을 위해 고스톱을 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데.
토스카니니의 초인적인 정력은 젊은이, 심지어 그의 아들까지도 탄식하게 하였다. 1950년인 83세의 나이에 NBC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미대륙을 횡단하는 6주간의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4월 14일에 뉴욕에서 막을 올린 후 8600마일의 여정을 마친 후 필라델피아에서 막을 내렸다. 20개 도시를 누비는 동안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 어떤 젊은이도 그의 체력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건강 때문에 남편과 함께 할 수 없었던 부인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인 월터가 토스카니니의 보디가드였던 알프레드 워커란 사람과 함께 수행하였는데 아버지의 에너지가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라는 탄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다. 월터의 아들인 월프레도, 즉 토스카니니의 손자 역시 이 연주여행에 동행했는데 할아버지에게 질려버렸다. 그가 한 일이라곤 연주회에 앉아있는 것, 그리고 관광을 한 것이 전부였지만 토스카니니는 관광, 리허설, 지휘까지 모두 해내며 전혀 지칠 줄을 몰랐다.
toscanini를 검색할 때마다항상함께 검색되는 고마운 그녀 예시카 토스카니니.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리켈메의 애인이라고.
불로장생의 대명사였던 이 위대한 마에스트로에게도 마지막은 찾아왔다. 1956년 12월 31일의 신년파티. 너무 기분이 좋았고 가족들과 즐겁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토스카니니는 더구나 증손자를 보게 될 생각에 더더욱 들떠있었다. 그렇게 신년 새벽 2시까지 잠을 즐거운 분위기에서 파티를 계속하고 떠나는 모든 손님들을 배웅한 다음에야 방에 올라가서 잠이 든 토스카니니. 그러나 아침 7시에 욕실에서 그는 뇌혈전증으로 갑작스레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으나 의식불명과 발작증세가 잇달았고 이후 보름 동안 가족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1957년 1월 16일 아침 8시 40분. 90세 생일을 두 달 남겨둔 그날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초인의 불꽃이 빛을 잃었다.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고 맨하튼의 프랭크 캠프벨 예배당에 그의 시신이 안치되었다. 수천의 인파가 몰려와 마지막 경의를 표하며 열린 관 앞에 한 사람씩 차례대로 지나갔다. 그리고 한 달 후 그의 시신은 다시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앞에 안치되었다. 그곳에는 베토벤 교향곡 3번의 2악장, 일명 장송행진곡이 라디오를 통해 장엄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토스카니니에 대한 일화를 살펴보면 숱하게 찾아볼 수 있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책, 영화 등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토스카니니가 20세기 클래식 음악에 끼친 영향력은 동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브루노 발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과 비교했을 때, 감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비교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했다. 직관적이고 즉물적인 해석은 후배 지휘자들에게 커다란 지침이 되었고 카라얀은 토스카니니를 열광적으로 좋아했고 그의 지휘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해 토스카라얀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한 편, 아니 수 편의 논문 이상의 분량이 될 그의 인생 전체를 나같은 사람이 블로그에 압축 요약하는 것 또한 쪽팔리기까지 하다.
21세기가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이 시대에 그 옛날 클래식 음악에 가장 큰 거성이었던 토스카니니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음악을 지직거리는 모노 음반으로만 접할 수 있기에 찬란한 빛을 잃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느 틈엔가 토스카니니가 남긴 수많은 구시대의 명반들이 이름 없는 그 옛날의 유물 중 하나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한 번쯤 그 옛날 천하를 호령했던 80대의 초인 토스카니니를 기억해야만 한다. 베토벤 교향곡을 들을 때에도,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들을 때에도.
Arturo Toscanini (conductor)
NBC Symphony Orchestra
녹음: 1952/01/14 Mono
장소: Carnegie Hall
전악장 연속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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