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L)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R). 20세기를 대표하는 진퉁 명인들끼리 제대로 만났다. 서로의 영역이 확고하고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이들이 만나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상생(相生)일까? 아니면 어느 한쪽의 희생(犧生)일까?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의 입장에선 두 사람이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일 수 밖에 없다.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minor(S. Richter)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너무도 유명한 곡이니만큼 많은 음반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명연주로 평가받는 음반들은 호로비츠, 길렐스, 리히터,아르헤리치의 것들인데 이 곡은 화음이 매우 복잡하고 엄청나게 어려운 기교를 요하는 난곡이라 내노라 하는 명 피아니스트들도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호로비츠의 음반은 일전에 이 곡을 소개하면서 올린 적이 있다. Click!

그리고 또 하나의 명반 중의 명반이 존재하니 바로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지휘자인 카라얀과 가장 위대한 삶을 살다간 피아니스트로 칭송받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장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함께 한 연주이다.

먼저 이 음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1. 적어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이야기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반 중의 명반이라는 점이다.

물론 호로비츠-토스카니니의 음반이 먼저 나와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 음반도 최고의 명연이라는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호로비츠의 연주는 너무도 개성이 강한 면이 이 곡의 보편타당한 연주로 보기엔 어렵다는 점도 있다.

2. 이 음반은 1962년에 레코딩되었는데 스테레오 사운드로 음질 또한 매우 훌륭하다. 호로비츠의 음반은 모노이다.

3. 당시 리히터는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중이었다.

당시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므라빈스키(지휘), 길렐스(피아노) 등의러시아 최고의 음악가들이 서방세계에 정책적 선전용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구소련 음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리히터는 길렐스보다 조금 뒤에 서방세계에 그의 이름을 날리고 있던 중에 그 이름도 유명한 카라얀과 함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게 된 것이다. 즉, 그의 연주세계의 정점에 있던 그 시절에 이 명연을 하게 되었다.

구소련에서 자국 예술의 우수성을 서방세계에 알리기 위해 자신있게 내놓았던 음악가들. 왼쪽의 뚱보 아저씨는야사 하이페츠와 함께 바이올린계를 양분했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가운데 안경쓴 아저씨는 너무도 유명한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오른쪽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4. 카라얀은 협주곡을 지휘할 때 자신의 영역을 최대한 확보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피아노, 바이올린 독주자에 대한 배려가 그다지 돋보이지 않고 때론 자신의 잘 다듬어진 베를린 필, 빈 필등의 악단들의 관현악 파트의 압도적인 연주로 독주자를 주눅들게 한다. 몇몇 음반을 들어보면 카라얀의 이같은 지휘 스타일을 알 수 있다(자신이 어릴때부터 키워 온 작품인 안네 소피 무터와의 협연에서는 예외적으로 최대한 배려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리히터. 드넓은 러시아 대륙에서 거칠게 살아온 그가 이런 카라얀에게 호락호락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진 않는다. 카라얀의 관현악이 세게 밀고 들어올수록 더욱 강하게 밀어 붙이며 팽팽한 기싸움을 계속 한다.

1악장에서는 카라얀의 우세승.

"내가 하라는 대로 넌 따라오면 돼. 괜히 피아노 소리 뚱땅거리면서 튀어 보이려고 하지마라! -_-+"

하지만 리히터 역시 물러나지 않고 팽팽하게 치고 올라간다.

2악장에서는 잠깐 휴식. 매우 평화롭고 조화로운 분위기로 6분이 넘는 시간동안 이끌어 나간다.

압권은 3악장. 3악장에 와서 리히터는 비로소 힘을 내서 카라얀을 압박한다.

"빨리 빨리 따라와.벌써 지쳤냐? -_-+"

리히터가 빨리 도망가면 카라얀이 어느새 쫓아오고 또 물고 물리며 최대한 서로의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접전이 끝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명연주가 끝나는 동시에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치게 된다.

말년의 리히터.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면 얼핏 존 말코비치와 닮은 모습인데 나이가 들어서는 말론 브랜도와 닮았다.

심지어 이 음반을 레코딩한 후 카라얀과 리히터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이 명연을 듣고 있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속이 다 후련한 최고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기분좋은 경험임이 분명하다.



차이코프스키 1번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 2번 협주곡이 함께 수록된 음반. 리히터의 대표적인 명반이며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의 가장 대표적이고 우수한 음반으로 손꼽힌다. 피아노 협주곡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고 리히터의 음악을 알고 싶은 이라면 반드시 필청, 소장해야 할 음반이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어떤 음반으로 들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한가지보다는 꼭 두가지 음반을 함께 들어야 한다고답하고 싶다. 바로 호로비츠와 리히터의두 종류이다. 그러나 굳이 꼭 한가지만을 꼽는다면? 라는 물음에는 리히터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Sviatoslav Richter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Wiener Symphoniker
녹음: 1962/09/24-26 Stereo, Analog
장소: Musikverein Saal, Wien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2악장 Andantino simplice

3악장 Allegro con fuoco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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