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생가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조카와 함께찍은 사진.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의 조카이다. 정말 많이 닮았다.그옆은 길렐스, 그리고 그 옆은 길렐스의 아내. 길렐스 앞에 있는 조그마한꼬마 아이가 엘레나 길렐스이다. 훗날 엘레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피아니스트가 되고 아버지와 함께 음반도 녹음하였다.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minor op. 23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하여

길렐스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소개한다. 이 곡은 피아노 협주곡이란 음악 장르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고 또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쿨이란 큰 대회가 있는 이유로 너무도 많은 연주자들이 자존심을 걸고 레코딩을 하지만 너무 개성이 뚜렷하고 어려운 복잡한 화음과 엄청난 기교를 요하는 난곡인지라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뚜렷한 격차가 드러나 보인다.
반대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그다지 어려운 난곡은 아니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음반들에선 그렇게 튀는 음반도 없고 모두 평균치 정도의 고만고만하게 들리는 연주가 대부분이다. 예외라면 제르킨의 음반 정도라고 할까? 그런 이유로 난 제르킨이 연주하는 '황제'를 가장 즐겨듣고 가장 잘된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루돌프 제르킨과 브루노 발터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우선 이 곡은 같은 피아노 음악이라고 해도 바흐, 모차르트, 쇼팽 등의 음악과는 차원이 틀리다. 바흐, 모차르트, 쇼팽의 음악은 피아노의 가볍고 영롱한 터치, 그 터치에서 나오는 울림의 소리를 극대화시켜 흥얼흥얼 노래를 하듯 리듬을 타는 연주를 해야한다. 하지만 러시아 피아니즘을 대표하는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의 피아노 음악은 대륙인 특유의 거칠고 강인한 러시아인의 힘찬 기상을 잘 표현해야 하기에 영롱한 터치보다는 큰손과 두껍고 강한 손가락, 강한 팔 근육의 힘으로 피아노를 부서져라 내리찍는 타건을 구사해야 한다. 또한 오랜 시간동안을 이 어렵고 힘든 곡을 격렬하게 연주해야 하므로 엄청난 지구력을 요한다.

이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동영상을 보면 그야말로 진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피아노 저음에서 고음까지의 건반을 빠르게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여성 연주자들은 이 곡을 연주하기가 매우 힘들어서 여성 연주자들의 음반은 별로 있지도 않고 잘 된 음반도 없다. 물론 여제(女帝) 아르헤리치는 예외이다. 아무튼 대단한 할매다.

이 곡은 일전에 가장 대표적인 명반이라고 할 수 있는 호로비츠-토스카니니, 리히터-카라얀의 음반으로 이미 소개했다. 관심 있으신 분은 꼭 들어보시길. 특히 호로비츠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게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연주인가 할 정도로 그 무시무시한 기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을 가장 잘 연주하는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사람은 그 옛날의 호로비츠와 리히터, 길렐스, 아르헤리치까지 네 명 정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보태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미국인으로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던 반 클라이번과 신세대 피아니스트인 보리스 베레초프스키 등을 들 수 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은 앞서 소개한 호로비츠, 리히터의 음반과 함께 오늘 소개하는 길렐스-마젤, 그리고 아르헤리치-콘드라신, 루빈스타인-미트로풀리스의 것까지 5종이다. 이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공통적인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엄청난 기교와 무시무시한 힘으로 피아노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힘차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들리기까지하는 관현악 파트와의 팽팽한 기싸움이 느껴진다.

이상의 이유를 살펴볼 때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잘 연주하는 연주자의 조건은 강한 힘과 무시무시한 기교를 자랑하는 러시아 출신의 남자 피아니스트라고 종합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피아니스트야말로 길렐스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다. 또한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곡인 만큼 러시아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길렐스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야말로 듣기도 전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 길렐스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1악장 카텐짜를 연주하는 길렐스. 엄청난 거구의 사나이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강한 힘으로 연주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 길렐스의 연주는 사실 꽤 많은 곡을 포스팅하며 수 차례 언급을 하였기에 더 이상 그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도 좀 구차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길렐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코드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자아도취적인 낭만과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이어지는 음악보다는 굉장히 강하고 직선적인 연주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 거침없이 밀어 부치는 힘있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렐스는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곡의 최고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작곡가별로 구분하면 바로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세 사람의 음악이다.

길렐스와 마젤이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의 음반. 1번뿐이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2번과 3번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 리히터가 연주하는 바르톡,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길렐스와 리히터의 팬이라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장가치 만빵의 필청(必聽)음반이다.

길렐스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최고의 스페셜리스트 중의 한 사람인데 1950년대 후반 서방세계에 진출하기 전부터 이 곡을 레코딩하였고 서방세계에 진출한 이후에도 라이너, 마젤, 주빈 메타 등의 훌륭한 지휘자들과 함께 협연하며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아마도 이 곡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남겼던 연주자였고유명한 1번 협주곡 외에도 2번, 3번까지 전곡을 녹음할 정도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에 큰 애착을 가졌다.

그의 연주의 특징은 처음부터 강한 힘과 기교로 거침없이 밀어 부치는 스타일이란 것이다. 또한 길렐스의 여느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드러나는 공통점인 너무 강하고 개성적인 피아노를 따라 잡지 못해서 기가 죽은 관현악 파트의 모습이다.

오늘 소개하는 마젤과의 협연에서도 그런 특징을 볼 수 있는데 마젤의 오케스트라 역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길렐스의 힘차고 묵직한 피아노에 대항하여 꽤나 신경질적이고 힘찬 연주를 들려주고 있고 이로 인해 한시도 팽팽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Emil Gilels (piano)
Lorin Maazel (conductor)
New Philharmonia Orchestra
녹음: 1972/10 Stereo, Analog
장소: Studio Abbey Road, London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Allegro con spirito

2악장-Andantino semplice-Prestissimo-Tempo I

3악장-Allegro con fuoco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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