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트벵글러가 작곡가 베토벤이 느꼈던 예술과 인생의 고뇌를 그려내고자 했다면 발터는 인간 베토벤이 보고 느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좀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했다.

  • 발터와 CBS

브루노 발터는 1956년에 건강상의 이유(심장)로 은퇴를 하고 모든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80세였다.
그러나 시대는 이 위대한 거장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니,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당시 처음으로 도입된 스테레오 녹음방식으로 레코딩 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에 CBS는 발터에게 다시금 지휘를 맡아 레코딩을 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게 된다.

이미 은퇴를 결심했지만 워낙 간곡히 부탁하는 통에 발터는 은퇴를 번복하고 81세의 나이에 다시금 지휘봉을 잡는다. 그리고 80이 넘어 다시금 정력적인 활동을 하게 되니 이 때의 오케스트라가 그 이름도 유명한, 발터하면 떠오르는 콜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이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말러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의 교향곡과 협주곡, 관현악곡을 남겼으며 이 당시의 음반들은 모두 전설적인 명반들로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80이 넘어 은퇴한 거장의 마음을 회유시킨 CBS와 다시금 지휘봉을 잡고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후세의 사람들에게 마음의 풍요를 선물해 준 발터에게 모두 고마운 일이다.

  • 콜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CBS는 전쟁의 포화를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뛰어난 예술인들이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고 예술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준 안식처이자 보금자리였다.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군사, 경제의 강대국인 반면에 문화에 있어선 불모지이자 드보르작의 표현대로 'New World'일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상당했던 터에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유입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이 당시에 미국으로 망명을 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을 딱 지금 떠오르는 이름만 대보자면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토스카니니, 발터, 호로비츠, 하이페츠...딱 여기까지만 쓰자. /악어/

이렇게 수많은 예술가들이 미국이란 신천지에 자발적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이는 예술뿐만이 아닌 과학, 경제, 인문학 등의 모든 학문분야에 있어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제일의 강국으로 도약할 준비가 되어 있던 미국은 세계 최고급의 인재들이 저절로 유입되면서 인적 인프라를 자연스럽게 구성할 수 있었으니 바로 이들로 인해 유럽은 몇 백년간 이어왔던 세계 중심의 자리를 신대륙 미국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참 부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나서 우리나라로 피난을 올 일이 있었던가? 우리가 도망다니기 바빴지. 또 설령 일본에서 내란, 혹은 대지진이 일어나서 우리나라로 온다한들 그들을 맞아줄 준비가 되었는가? 이런 점도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부끄러워/

유럽에서 망명을 통해 미국이란 신천지로 들어온 뛰어난 예술가들을 미국에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며 극진히 배려해주었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오케스트라가 토스카니니의 NBC, 그리고 발터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이다.


당시의 NBC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멤버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는데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독주자들이나 현악사중주의 멤버들이 '일개'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에선 이렇게도 뛰어난 음악가들을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도 배치할 수 있는 두 번 다시없을 뛰어난 인재풀의 인플레에 환호성을 질렀을 터이고 이토록 넘치는 인재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70세의 토스카니니와 81세의 발터에게 나이와 건강을 생각할 이유도 없을 정도로 너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올스타팀을 맡아 한 시즌을 꾸리게 된 프로야구 감독이 가질 수 있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만들어진 이 최고의 오케스트라는 역시 최고의 거장의 지휘를 통해 최고의 음악들을 만들었으니 음악예술의 본령이자 정점인 베를린 필, 빈 필의 명성에도 결코 뒤지지 않은 그들만의 전설을 써내려 갔다.

  • 발터가 만드는 베토벤

베토벤의 초상화를 보면 언제나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듯한 인상만을 풍긴다. 하지만 인간 베토벤이 언제나 그렇게 인상만 쓰면서 살았을까? 이 그림처럼 때론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며, 때로는 크게 웃으며 살진 않았을까?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일단 푸르트벵글러이다.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푸르트벵글러가 그려내고자 했던 베토벤은 다난한 인생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던 커다란 영웅의 모습이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처절하고 비극적인 영웅으로서의 고뇌하는 모습의 베토벤을 그려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발터는 조금 다르다. 그는 너무도 비극적으로 살았지만 결코 비극적이고 어두운 모습만을 보았던 것이 아닌, 좀 더 아름답고 밝은 세상을 향해 뜨겁게 갈구했던 인간 베토벤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푸르트벵글러는 인간 베토벤이 보고 느꼈던 고뇌를, 발터는 그 고뇌에 찬 베토벤이 보고 싶어했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다.


전설의 거장 브루노 발터가 81세의 나이에 은퇴를 번복하고 그를 위해 만들어진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이런 대작을 완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베토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발터는 성공한다. 그리고 바로 그 대표작은 베토벤이 보고 싶어했던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6번 교향곡 '전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번 교향곡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칼 뵘-빈 필의 71년 음반발터-빈 필의 36년 음반으로이미 소개한 적이 있다.

71년 빈 필의 음반과 함께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58년 발터-CBS의 음반을 또한 소개한다. 전원교향곡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반 중의 명반이며 발터가 1936년에 빈 필과 함께 했던 녹음에 비해 음질면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81세의 나이. 인생의 황혼기를 이미 넘어선 그 나이에 다시금 정력적인 활동을 재개하여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웠던 시대의 거장을 그리며 이 명곡을 감상한다.

Bruno Walter (conductor)
Columbia Symphony Orchestra
녹음: 1958/01/13,15,17 Stereo, Analog
장소: American Legion Hall, Hollywood, California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2악장 Andante molto moto

3악장 Allegro

4악장 Allegro

5악장 Allegretto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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