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비첨(Thomas Beecham)의 캐리커쳐. 대단히 품위있고 여유로운 신사, 귀족처럼 그렸다. 실제 그의 인생 자체가 엄청난 부와 명예가 끊임없이 샘솟는 화수분처럼행복한것이었다.

GRIEG: Peer Gynt - incidental music op. 23

노르웨이의 대 작곡가 에드바르트 그리그가 남긴 걸작 오페라 페르 귄트는 오페라 자체도 유명하지만 그 오페라에 삽입된 부수음악들이 훨씬 더 유명하다. 부수음악들만을 따로 떼어서 편곡하였는데 너무도 유려하고 아름다운 천상의 멜로디와 같은 매력에 고금을 통틀어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페르 귄트 모음곡은 관현악곡과 성악곡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 사람 목소리가 들어가는 음악을 그다지, 그~다지 즐겨듣지 않는 편이긴 한데 블로그의 한 이웃께서 이 아름다운 명곡을 블로그에 올렸기에 참으로 오랜만에 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회가 동하여 나 역시도 이 곡의 음반을 리핑하여 올리게 되었다.

언젠가 성악곡이란 카테고리도 만들어서 레퀴엠을 비롯한 성악곡들을 올리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오페라는 내가 별로 듣지 않는 분야라서 패스~) 이 곡을 성악곡 첫번째 주제로 올리게 될 줄은 또 몰랐네.

우선 오늘 소개하는 음반을 만든 영국의 대 지휘자인 토마스 비첨에 대한 설명과 페르 귄트 부수음악 모음곡에 대해서 또한 설명하겠다.

토마스 비첨-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금수저를 남기고 간 영국신사

멋있게 수염을 기른 노신사. 얼핏 캔터키 후라이드 할배처럼 생기기도 했다. 인자하면서 넉넉한 그의 품성이 외모를 통해서도 느껴지는 듯 하다.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보면 이들은 고독, 고난, 고집의 3고와 싸우며 처절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음악가들에게서도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 브람스 등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작곡가들이 그랬고 멘델스존 같은 이는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신의 음악인생을 펼칠 수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작곡가뿐만 아니라 지휘자,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푸르트벵글러는 독일 최고의 상류층에서 태어나 평생동안 고생 한 번 모르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역시 전시(戰時)의 그 어지러웠던 시절엔 많은 갈등과 번뇌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겪은 수많았던 고통과 회한, 공포의 세월들이 바로 전시에 연주했던 베토벤 교향곡의 그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 그대로 구현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예술가들에게선 어려움 없이 살았던 사람이 드물 정도이지만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어릴 때부터 재벌가문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도 전혀 모르고 살았으며 삶의 모든 에너지를 예술세계의 구현에 쏟아 부으며 처절하게 살았던 것과는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들을 맘껏 즐기던 사람도 있다. 바로 전형적인 영국신사 토마스 비첨(Thomas Beecham)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토마스 비첨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즐기며 살았던 인물이었고 그 공으로 기사의 작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멘델스존처럼 요절한 것도 아니었고 82세까지 오래오래 장수하며 천수를 누렸으니 그의 삶은 참으로 행복함, 그 자체이다.

비첨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부유하게 살았다. 그의 할아버지가 무슨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사를 하여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또한 재태크에 뛰어났는지 더욱 큰 부를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재벌가에서 어려움 없이 살았던 비첨은 성격도 매우 온화하고 여유가 있었고 유머가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또한 부잣집 도련님답게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에 심취할 수 있었는데 음악을 너무 좋아하여 그의 인생이 결국 음악인으로 빠지게 된다.

최고의 명문 옥스퍼드에 입학하였으나 음악이 너무 좋아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음악을 하기로 결심, 지휘자가 되기에 이른다.

지휘자가 된 후의 비첨의 삶이 다른 지휘자들과는 달리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휘자들은 악단의 지휘를 하다 계약이 종료되거나 혹은 모가지가 날아갈 경우 다른 곳을 전전하며 보따리장수처럼 살아야 하는 불안함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비첨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었다. 워낙 돈이 많아 자신의 돈으로 단원들을 공개모집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악단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비첨 교향악단을 만들었고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그 이름도 유명한 런던 필과 로얄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자비를 들여 만들었다. 자신이 교향악단 하나를 만들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하면서 즐기는 것. 정말 꿈만 같은 멋있는 일 아닌가?

토마스 비첨의 음악

비첨은 단원들을 지휘할 때 강압적이고 위엄을 부리는 카리스마로 군림하지 않았다. 자신의 돈으로 만든 거대 오케스트라 속에서 항상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단원들을 신사적으로 상대했다고 한다.

비첨은 큰 굴곡없이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살았던 인물이기에 그의 성격도 대단히 낙천적며 밝고 명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전형적인 영국신사답게 좋은 매너와 넘치는 유머로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와 같은 성격은 단원들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끝간데 없는 자존심과 고집,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하인, 짐승처럼 부리기 일쑤인데 비첨은 항상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단원들을 부드럽게 상대하며 긴장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혼을 낼 때에도 토스카니니나 므라빈스키처럼 신경질을 버럭버럭 내며 떠내려갈 듯한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유머러스한 분위기에서 가벼운 추궁만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여유롭고 즐거운 성격은 그가 만드는 음악에서도 그대로 투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음인데 우선 그가 주요 레퍼토리로 다루었던 음악들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다. 그런 대로 여러 작곡가들의 곡을 조금씩은 다루어보긴 했으나 전집으로 나와있는 것은 없다. 그만큼 창작에 대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들만을 골라서 할 수 있은 지휘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할 것이다.

베토벤, 브람스처럼 왠지 심각하고 처절함이 느껴지는 음악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진정한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바로미터와도 같은 작곡가의 음악들을 별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 상당히 이채롭다.
말러나 부르크너, 쇼스타코비치처럼 심각함의 대명사와도 같은 음악들은 아예 다루지 않았다.
그가 주로 즐겨했던 음악들은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등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인생이 이토록 아름답구나하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그 외에 그리그, 베를리오즈, 드보르작,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을 많이 연주하였다.

비첨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부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국의 최고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였다는 점과 함께 영국의 음악을 외국으로 알리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델리우스와 같은 영국작곡가의 곡의 예술성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그의 공로는 대단히 크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공로로 그는 영국황실에서 기사의 작위까지 받게 되었으니 한 평생 참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며 부자란 이유로 손가락질도 받지 않고 국가적인 존경까지 받았으니 비첨은 참으로 가장 좋은 팔자를 타고났던 사람인 것 같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 부수음악

오페라 페르 귄트의 한 장면.탐욕스런 한 인간이 지나치게 탐욕에 집착하다보면인생이 어떻게 쫑나는지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그가 작곡한 희대의 걸작 오페라 페르 귄트는 그리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노르웨이의 대문호 헨리 입센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였다.내용은 여타의 오페라처럼 아름답고 유익한 내용이 아니다. 상당히 충격적이다. 악마에게 혼을 팔아 넘기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한 여인을 내팽개친 채로 여기저기 싸돌아 댕기면서 방탕한 삶을 살았던 한 탐욕스러운 인간의 처참한 말로를 보여준다.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음악들이 너무 좋다고 해서 내용까지 좋은 것만은 결코 아닌지라 겉과 속이 다른 부조리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유명한 오페라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유려한 멜로디를 자랑하는 고금의 명곡들이다. 고로 그 음악들만 따로 떼어서 관현악곡과 성악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모음곡 1번 op. 46 & 2번 op. 55(관현악곡)과 부수 음악 op. 23이 되겠다. 양자간의 차이는 사람 목소리가 들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개인적으로 구슬피 우는 솔베이지의 목소리가 들어간 성악곡 버전이 더 심금을 울리는 맛이 있어서 듣기 좋다.

페르 귄트 모음곡 중 'Morning'을 연주하고 있다. 이 곡은 아침의 상쾌한 기분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느낌을 주며 그런 이유로 각종 CF에서 BGM으로 많이 쓰인다.

토마스 비첨과 그의 조직 로얄 필 하모닉이 만든 페르 귄트 부수음악 모음집. 현재까지 알려진 음반 중 가장 먼저 녹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답고 신선한 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이 모음곡들 중엔 귀에 친숙한 곡들이 꽤 있다. Morning은 각종 CF의 BGM으로 많이 쓰이는 아름답고 유려한 분위기의 아침을 알리는 곡이고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은 형사 가제트의 BGM으로 쓰이기도 했다. Solveig's Song 또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 유명하다.

계속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참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고 비극적인데 여기에 나오는 곡들은 이토록 아름답다. 쉽게 설명하기 곤란한 이 부조리. 그 부조리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한 번 느껴보시기 바란다.

Ilse Hollweg (Soprano)
Thomas Beecham (conductor)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Beecham Choral Society
녹음: 1956/11/05,18,21,29 Stereo, Analog
장소: No.1 Studio, Abbey Road, London
전곡이 아닌 부분녹음

전곡 연속재생


1. Wedding March

2. Ingrid's Lament

3.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4. Morning

5. Aase's Death


6. Arabian Dance

7. Solveig's Song

8. Anitra's Dance

9. Return of Peer Gynt, Storm Scene

10. Solveig's Lullaby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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