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DELSSOHN: Die Hebriden - Overture `Fingal`s Cave` op. 26
관현악곡 2009. 7. 19. 22:45 |스코틀랜드스테파섬이란 곳에 있다는 핑갈의 동굴. 요즘 같은 여름철엔 바로 이런 곳을 가야 하는 것이다. 선풍기 틀어놓고 이너넷 뒤져가면서 야동이나 보는 짓은 어지간히 하고 말이지.
MENDELSSOHN: Die Hebriden - Overture "Fingal's Cave" op. 26
여행을 좋아했던 멘델스존은 그의 나이 20세에 처음으로 영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스코틀랜드에 가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는데 바로 이 곳에서 그 유명한 핑갈의 동굴이란 곳을 직접 보고 그 절경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적 동지였던 그의 누나에게 그 때의 감동을 적은 편지까지 보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이 천하의 절경은 헤브리디스제도의 스테파섬이란 곳에 있다는데 그 지방을 오랫동안 다스렸던 국왕의 이름을 따서 핑갈의 동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 곳을 못 가봤는 것. 나도 언젠가 저 곳에 가봐야 할텐데. 멘델스존만큼 훌륭한 작품을 쓰진 못하겠지만 그 곳에 가게 된다면 난들 느낌이 없겠고 난들 그 느낌을 한 줄 글이라도 못쓰겠어?
바다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동굴의 위용을 보라. 과연 20세 청년 멘델스존이 이 동굴을 보고 뻑이 갈 정도로 대단한지는 직접 가봐야 알겠다.
멘델스존은 이 동굴을 본 후의 감상을 3년 후에 곡으로 발표하게 된다. 초연장소는 런던이었다. 발표 후의 반응이야 물론 열광적이었다. 곡을 들어보면 멘델스존이 남긴 다른 곡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특징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율. 그리고 적당히 극적인 전개와 함께 이어지는 여러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어우러짐. 그 안에서 느껴지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정경. 이 곡을 두고 일찍이 바그너는 ‘멘델스존은 일류 풍경화가’라고 극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그너가? 유태인이라면 학을 뗐던 그 바그너가?
조용히 눈을 감고 이 곡을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배를 타고 동굴의 처음을 들어갈 때의 느낌.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찰싹거리는 물소리. 그 깜깜한 동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드라마들. 그렇게 일부러라도 느껴보시기 바란다. 지금 이 시간에 이너넷을 통해 내 블로그에 오셨다면 일찌감치 피서, 휴가랑은 거리가 먼 분들 아닌가? 그러니까 일부러라도 나는 이 핑갈의 동굴 안에 보트타고 왔노라고 일부러라도 느껴보시기 바란다. 쩝~
불후의 명작인 핑갈의 동굴 서곡을 작곡한 엄친아 작곡가 멘델스존에 대해 짤막한 이야기를 덧붙이겠다. 멘델스존의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셨던 분이라면 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어가시길 바란다.
펠릭스 멘델스존-클래식 음악계의 엄친아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라는 식의 퀴즈들이 있다. 나도 흉내한 번 내보겠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의 아버지는 엄청난 재력가였다. 명망이 높은 은행가였고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유태교의 랍비(율법교사)였다. 그의 집안은 유태인 출신이며 유태교였으나 독일 사회에서 정착하기 위해 신교로 개종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역시 아마추어 음악가임과 동시에 여러 나라의 문학을 전공한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여성이었다.중요한 것은 그의 집안이 겁나 부유한 집안이었다는 것. 그의 집안에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어릴 적부터 돈 걱정 없이 산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의 사랑도 듬뿍 받으며 살았다. 천재적 재능에 대한 반대급부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수많은 작곡가들-모차르트, 베토벤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지-과는 정반대로 여유롭다 못해 넘치는 재력가의 집 아들로 태어났고 화목한 집안에서 화목하게 살았다.
어린 시절 그의 모습. 미소년의 끝장을 달리는 얼굴이다. 엄친아인 건 잘 알고 있지만서도 이건 해도 너무하는 거 아냐?
-돈이 많으니까 여행도 많이 다녔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의 각지를 싸돌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고 여기에서 느꼈던 무한감동을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통해 표출해냈다.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괴테의 권유로 작곡하게 된 곡이 그 이름도 유명한 4번 교향곡인 '이탈리아'였다.
-음악적 재능 또한 군계일학이었다. 그는 어떤 작품이든 고뇌하고 수정하며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법이 거의 없었다. 중요한 예외라면 그의 대표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E minor 정도? 이 작품은 6년 걸려 작곡했다. 이런 재능을 가진 그를 두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 중의 하나였던 슈만은 모차르트의 환생이라고 극찬하였다.
-모차르트, 베토벤도 그랬듯이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될 성 부를 떡잎이었다. 소년의 천재적 재능은 17세에 그가 발표한 ‘한 여름 밤의 꿈’이 대 히트를 기록하며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는 시적영감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문학작품을 탐독하길 좋아했고 특히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발표한 작품이 바로 ‘한 여름 밤의 꿈’이 되겠다.
-그는 12살의 나이에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과 문학에 대한 토론을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최고의 지성은 누구? 바로 괴테였다. 72세의 괴테는 이 열 두 살 소년과 문학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나누는 것을 즐겼다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여행을 무척 즐겼는데(돈이 억수로 많았으니) 여행에서 느꼈던 바를 즉시 음악작품을 통해 드러낼 수 있었고 그 작품의 성격이 너무도 서정적이고 한 폭의 풍경화, 혹은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음악가였지만 그림도 잘 그렸다. 미술에 대한 재능 또한 무척 뛰어났다는 것.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아무리 엄친아라고 하지만 화가 나려고 한다. -_-+
그는 이렇게 그림을 그릴 정도로 재주도 많았다네. Hebrides와 Dunnollie Castle을 직접 스케치한 그림. 이보다 더 잘 그린, 뛰어난 그림들도 많이 있다.
-그의 부인은 당대 최고의 미인이며(음...-_-+) 집안도 겁나게 좋은 여자였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가정생활이 행복하지 못하였던 것에 반해 그는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슬하에 5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의 부인이었던 Cécile Jeanrenaud. 프랑스 여자이다.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여류 화가였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루터교 목사였다. 그는 이 여자와의 사이에서 5명의 자식을 두고 매우 행복하게 살았다.
-그는 영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영국 여왕의 남편은 그의 음악이라면 뻑이 갈 정도였고 여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영국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장을 했다.
-그는 당대를 주름잡는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지휘자로서의 명성 또한 대단했다. 아니, 음악사에 끼친 공로로는 지휘자로서의 그가 더 위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흐 서거 100년이 넘은 후 그 이름도 유명한 ‘마태 수난곡’을 발굴, 공연하여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그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클래식 음악이란 장르는 옛날 작곡가의 곡을 발굴하여 새롭게 해석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클래식 음악이란 당대의 작곡가들이 발표한 곡들만을 연주하고 인기를 얻는 식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클래식(classic)'이란 사전적 의미, 즉, 옛 것을 발굴하여 새롭게 해석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감동을 주는 예술장르는 이 사람에서부터 정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더 쓸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물론 답은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저 위에 타이틀에도 멘델스존이라고 써놓고 누구일까요? 라고 묻는 나도 참 엄한 놈인 것 같다.
서양 중세 음악사에서 가장 아까운 요절을 한 사람으로 두 사람을 꼽는다. 바로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중 멘델스존의 요절이 더 아깝다고 해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볼까?
모차르트는 수많은 다작을 하였고 그가 살았던 36년만큼만 더 살았더라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다작을 하였을 것이다. 오페라,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악, 그리고 피아노 독주곡과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악기에 대한 협주곡과 소나타까지. 모차르트의 요절이 아까운 이유는 더 많은 다작을 할 수 있을 가능성, 그 이룰 수 없는 가정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가 더 많은 다작을 하였더라면 서양 중세 음악에 끼친 영향력이야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멘델스존의 요절에 대한 아쉬움은 모차르트의 것과 성질이 다르다. 모차르트는 그 자신, 한 사람의 천재적 능력에 대한 아쉬움으로 그치지만 멘델스존은 당시 독일음악계 전체에 끼친 영향력이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멘델스존의 집은 엄청난 부잣집이었다. 멘델스존은 그 많은 돈을 풀어 어렵게 생활하는 음악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라이프치히 음악원(Leipzig Conservatory)를 슈만과 함께 설립하였고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의 지휘자로 활동하며 전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발돋움 하게 한 것은 단연 멘델스존의 업적이 크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에만 국한되었을 뿐이지만 멘델스존은 지휘자로서의 업적이 어쩌면 작곡가로서의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정도로 옛날 작곡가들의 곡을 발굴하여 발표한 크나큰 업적을 남겼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태수난곡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멘델스존이 20세 때 어느 푸줏간에서 누렇게 변색이 된 종이를 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마태 수난곡의 악보였던 것. 청년 멘델스존의 각고의 노력 끝에 그 푸줏간 종이를 세상에 내놓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인류역사상 최고의 종교음악이라 칭송받는 그 음악은 고기와 피를 포장하는데 한 번 쓰이고 영원히 땅속에 묻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만큼, 이~만큼 멘델스존이 독일 음악사에, 아니 중세 서양의 음악사에 끼친 영향과 공로는 너무도 크고 넓다. 이 멘델스존이 태어난 지 올해로 2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곤 있지만 그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선 잘 모를 수 있는 작곡가 멘델스존. 그가 더 살았더라면 정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대한 업적을 세웠을 것이다.
펠릭스 멘델스존과 그의 누나인 페니 멘델스존. 네 살 차이의 이 남매는 사이도 퍽 좋았다. 누나의 피아노 실력은 동생 펠릭스도 인정할 정도. 누나는 동생에게 가장 훌륭한 음악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근데 얘들. 남매라는 설명이 없으면 연인으로 봐도 좋을 것 같지 않아?
하지만 평생을 좋은 사람으로 살았던 그에게도 평생을 두고 괴롭혔던 골칫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건강문제였다. 엄친아라고 불릴 정도로 어린 시절 부유한 집안에서 화목하게 살면서 자신이 꿈꾸었던 예술의 세계를 맘껏 펼치며 수많은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멘델스존에게도 단 하나의 치명적인 결점이 바로 건강이었다. 과로에 의한 피로 누적으로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멘델스존은 어릴 적부터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누나가 갑작스레 세상을 뜨게 되자 그 역시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6개월 후에 사망하고 만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38세. 하늘은 좋은 사람을 일찍 데려간다는 원망스런 절규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칼 슈리히트가 지휘하는 멘델스존
슈리히트는 이 곡을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여러 차례에 걸쳐 녹음했다. 그의 주특기는 다른 작곡가의 것보다도 브루크너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전에 소개했던 이탈리아 기상곡에서 슈리히트라는 대 지휘자에 대한 설명을 짤막하게나마 소개했지만 더 길고 자세한 설명은 또 다음 기회에 할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곡에 대한 음반이 생각보다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가벼운 관현악곡이기도 하고 멘델스존의 작품 중 유명한 듯 하지만 또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에 있는 곡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가 갖고 있는 음반 중 딱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음반이었으니 이 음반에 수록된 핑갈의 동굴을 감상하며 잠깐이나마 동굴 속에 있다는 환각, 그 환각에서 잠깐이나마 피서의 기분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Carl Schuricht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녹음: 1954/04/26-27 Mono
장소: Musikverein, W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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