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4 Impromptus D. 935 op. 142-2
독주곡 2009. 12. 31. 16:24 |1967년 4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녹음을 위해 콘서트 홀로 들어서는 박하우스. 그의 생애 마지막 협주곡 녹음이었고 최고의 명반으로 기억된다. 내 블로그에 이미 예전에 올렸으니 찾아서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SCHUBERT: 4 Impromptus D. 935 op. 142
이전의 포스트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독주곡이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 그다지 큰 인지도를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길 했는데 그가 남긴 피아노 독주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즉흥곡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예전에도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연주로 즉흥곡을 하나 올렸던 적이 있다.
슈베르트는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뛰어난 피아니스트까진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피아노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었고 너무 가난해서 자신의 피아노를 갖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가 작곡한 수많은 곡들 중 관현악곡을 제외하곤 피아노 연주가 들어가지 않는 곡이 없으니 그가 얼마나 천재였는지는 미루어 짐작하기조차 어렵다고 할 것이다. 또한 슈베르트가 남긴 피아노를 위한 독주곡들은 그가 남긴 가곡들처럼 노래를 하는 것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깔려있다. 노래를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감미롭게, 딱딱하지 않게, 악기로 하는 연주가 아니라 악기로 부르는 사람의 자유로운 노래. 이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 슈베르트의 작품이 바로 즉흥곡이다.
슈베르트가 남긴 즉흥곡은 모두 8곡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즉흥곡집 ‘작품 90’, ‘작품 142’로 나뉘어지고 이들 두 권의 즉흥곡집에 각각 4곡씩이 들어있다. 이들 모두 슈베르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827년 겨울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그리고 즉흥곡(Impromptus)이란 곡명은 작곡가 자신이 아니라 이를 출판한 하슬링거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슈베르트가 사망한지 11년이 지난 1838년에 출판되었다.
이 곡의 멜로디는 매우 친숙하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곡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아니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피아노 콩쿨곡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고 또 영화에서도 이 곡이 삽입된 적이 있다. 다른 영화는 모르겠고 독일영화인 ‘vier minuten’, 한국에선 포미닛이란 이름으로 나온 영화이다.
크게 히트한 것은 아니어서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클래식 음악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쯤 보면 좋을 영화이다. 반가운 곡들과 반가운 이름들이 나온다. 이 영화에 보면 슈베르트의 즉흥곡 작품번호 142의 2번,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의 1악장,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의 1악장이 계속 반복된다. 꽤 재밌는 영화이니 신정연휴때라도 놓치지 말고 한 번쯤 감상해보시길 바란다.
이 영화에도 배경음악으로 잔잔히 깔려있기에 더욱 친숙한 즉흥곡을 감상하시겠다. 많은 연주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아주 상징적인 음반의 상징적인 연주를 풀어놓겠다. 세기의 거장, 잊을 수 없는 거장인 빌헬름 박하우스의 생애 마지막 피아노 연주로 들어보시겠다.
잠시 쉬고 싶습니다
빌헬름 박하우스는 1969년 6월 26일, 그리고 28일에 남부 오스트리아의 알프스가 올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아씨아하(Ossiach)라는 곳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주회를 갖게 된다. 평생을 피아노 속에서만 파묻혀 살았던 장인다운 마지막 연주회였다. 28일의 연주회에서 그는 2분 30여 초 동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8번의 3악장을 연주하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을 느끼게 된다. 이제, 여기에서 끝나는 것인가. 박하우스는 이대로 연주를 하다간 더 큰 무리가 있겠다고 생각한 나머지그만 연주를 중단하고 만다. 그리고 많은 청중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Ich bitte um eine kleine Pause”
잠시 쉬고 싶습니다. 수많은 청중들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거장 마지막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후 4악장은 너무 힘이 들어 차마 연주하지 못했고 그대신 슈만의 환상 소품집 중 ‘Des Abends.Sehr innig zu spielen(저녁에)와 Warum Langsam und zart(어째서)의 두 곡을 잇따라 연주하며 제1부를 간신히 마치게 된다. 제2부 무대에 올라서는 것을 담당 의사는 적극 만류했으나 박하우스는 기어코 피아노 앞에 앉고야 만다. 나를 보러 온 청중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아마도 박하우스는 그 자리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온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의 마지막 순간을 바로 ‘빌헬름 박하우스’라는 이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피아노 앞에서, 그리고 나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만큼 피아니스트에게 극적이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제2부의 첫 곡은 26일에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곡인 슈베르트의 즉흥곡. 이 곡을 연주한 박하우스는 이제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었다. 죽을 힘을 다해 이 곡을 연주한 박하우스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병원에 후송되었고 7일 후 빛나는 생을 마감하였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공연실황 음반에 수록된 거장의 생애 마지막 연주. 비록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음반의 이 연주를 함께 감상한다는 것은 떠나는 거장의 마지막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는, 그래서 역사의 증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벅찬 기분까지 느끼게 해준다.
에…~ 그리고 내가 2년 전에 어떤 이너넷 매체에 기고라는 걸 하면서 몇 번 써댔던 글들이 있다고 했었는데 박하우스의 글도 있었다. 혹시 빌헬름 박하우스란 이름이 생소한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2009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2000년대의 마지막 날은 대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느끼면서 마무리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빌헬름 박하우스-피아노로 포효한 독일의 사자
일본 순정만화의 대표주자인 이케다 리요코(池田 理代子)의 걸작 올훼이스의 창. 아마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이 작가의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함께 올훼이스의 창을 읽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이케다 리요코의 대표작 올훼이스의 창. 수많은 순정만화 팬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국내 순정만화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감을 주며 순정만화 작가로서의 꿈을 꾸게 하였던 작품이니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 만화엔 20세기 초반 전 유럽에 화려한 명성을 떨쳤던 실존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 만화에서의 캐릭터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설정이 되어있다. 이처럼 만화에까지 등장할 정도면 과연 빌헬름 박하우스란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카리스마로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 건반의 사자왕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독일산 사자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독일 피아니즘의 자존심
20세기를 살았던 수많은 피아노의 명인들 중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그들을 국적별로 한 번 구분해 본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고 이 글을 쓰는 나의 의견만 반영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러시아: 호로비츠, 리히터, 길렐스, 아쉬케나지, 유디나, 니콜라예바, 가브릴로프, 포고렐리치, 부닌, 키신, 베레초프스키
폴란드: 슈나벨, 루빈스타인, 고도브스키, 치머만
프랑스: 코르토, 프랑소와, 기제킹
이탈리아: 베네딧트 미켈란젤리, 폴리니
독일: 박하우스, 켐프, 피셔
대략 이 정도이다. 여기에 더 많은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추가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만을 놓고 보았을 때 20세기 피아니스트의 주도권은 러시아가 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의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활개치고 다녔던 그 시절. 음악예술의 본령인 독일에선 과연 어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있어 독일의 자존심을 지켰는지 의문이 생길법하다.
다른 나라도 아닌 바흐, 베토벤, 바그너, 슈만, 브람스, 스트라우스를 배출한 음악예술의 최고봉인 독일. 만일 독일 출신이 아닌 다른 나라의 피아니스트가 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연주하여 세계적 호평을 받았을 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중국인이 판소리 춘향가를 너무 잘 불러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세계공연을 다닌다면? 우리 문화가 널리 알려진다는 사실에 그저 넋 놓고 웃으며 좋아할 일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자국출신 작곡가의 연주를 잘 연주하는 연주자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야말로 다른 작곡가들의 곡보다 베토벤과 브람스를 주로 연주하며 독일 음악의 위대함을 널리 알렸고 20세기 독일 피아니즘의 자존심을 세운 몇 안 되는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이었다.
건반의 사자왕의 등장
젊은 시절의 박하우스. 20대 초반의 모습이다. 사자의 갈기처럼 길다랗게 기른 머리가 인상적이다.
박하우스는 정통 독일인의 혈통을 물려받았고 정통 독일식의 교육을 받았다. 무려 85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노익장의 대명사였고 사망하기 일주일 전까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가졌던 참으로 멋있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다.
박하우스는 1884년 라이프치히 태생이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리스트의 제자로 유명한 달베르를 사사하였다. 박하우스는 그의 스승인 달베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기교를 중시하는 것 보다는 예술적인 통찰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스케일이 큰 연주를 구사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에 런던에서 데뷔한 그는 이때부터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1905년엔 루빈스타인 콩쿨에서 우승하였고 유럽을 넘어 아시아, 남미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연주여행을 다니며 그 명성을 확고히 하였다. 참고로 1905년 루빈스타인 콩쿨에선 우승자인 박하우스 외에 또 하나의 유명한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작곡가인 벨라 바르톡이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20세기 최고의 천재 작곡가 중의 하나인 바르톡이 바로 박하우스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바르톡 역시 박하우스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첫 데뷔는 1912년 뉴욕에서였다. 이때의 레퍼토리는 그가 평생동안 가장 많이 연주한 곡 중의 하나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였다. 뉴욕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후 그의 명성은 다시금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동구권 출신의 피아니스트들이 살인적인 기교를 중심으로 연주를 한 반면 박하우스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기교에 더해 예술적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거장다운 연주를 구사하였다.
그 나이에 참 대단한 사람
노년의 박하우스 부부. 많은 음악가들이 그렇지만 박하우스 역시 노익장의 대명사였다. 칠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하였고 팔순이 훌쩍 넘어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녹음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던 인물이었다.
박하우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생동안 끊임없는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노익장의 대명사였다. 수많은 음반을 발매한 레코딩 양도 그렇고 사망하기 일주일 전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려 4000회에 걸친 연주회를 열었다.
박하우스 본인이 했던 이야기가 있다. 80세가 훨씬 넘은 나이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고 빈 필과의 공연이 끝나고 청중과 악단 모두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을 때 했던 말이다.
“난 지금 내 인생의 출발점에 다시 돌아왔다. 12세 때 난 처음으로 연주회를 가졌다. 그때 사람들은 내게 그 나이에 참 대단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가 이처럼 끊이지 않은 정력을 발산하며 죽기 직전까지도 연주회를 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물론 음악에 대한 사랑, 자신의 음악 세계에 대한 끝없는 자기 성찰과 연습이었다. 그는 연주 외엔 달리 관심을 두는 일도 없었고 오로지 피아노에만 정열을 쏟아 부었다. 교육자로도 잠깐 활동하긴 하였지만 그가 키워낸 제자도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연주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1차대전 때엔 군복무를 하였고 2차 대전 이후엔 스위스로 망명하여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 외엔 그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굴곡 많았던 그 시절을 살았던 예술가,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고 있던 독일의 상징적인 예술가로선 참 이례적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 수 있다면 낙천적인 사고방식과 유머 감각을 들 수 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그의 나이 83세에 빈 필을 이끌던 칼 뵘과 함께 생애 마지막 협주곡 녹음을 하게 된다. 데카(Decca)에서 나온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의 커플링 음반인데 이 곡을 녹음하면서 박하우스는 뵘을 가리키며 이런 이야길 했다고 한다.
“이 친구는 젊은 친구가 브람스를 꽤 잘 연주한다.”
젊은 친구. 그때 뵘의 나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려 73이었다. 이 말을 듣고 당시 녹음에 참가했던 빈 필의 단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박하우스는 그 나이에 대단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무려 85세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던 그는 그의 마지막까지도 그답게 마무리하게 된다.
마지막 연주회
12세에 데뷔하여 85세까지 무려 4000여 회가 넘는 연주여행을 다녔고 정통 독일인으로 베토벤, 브람스를 가장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던 박하우스. 젊은 시절엔 엄청난 힘과 기교를 바탕으로 건반의 사자왕이란 별명으로 세상을 경악케 하였으나 음악적 완숙미가 더해진 말년엔 서정적이고 빈틈없는 연주로 탈바꿈하는데 훌륭히 성공하였다.
4000여 회라는 셀 수 없이 많은 연주회의 마지막 종점은 그의 나이 85세 때였다. 알프스의 Ossiach에서 열린 이 연주회에서 박하우스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환상곡, 슈만의 환상 소품집을 프로그램으로 준비하여 청중들 앞에서 연주하게 된다.
아무리 젊은 시절엔 건반의 사자왕으로 군림했고 평생토록 노익장을 과시했던 거장인 그였지만 결국 마지막은 찾아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8번을 연주하던 중 갑작스런 심장발작을 일으켜 연주를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고 그 대신 슈만의 환상 소품집과 슈베르트의 환상곡을 치던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급히 후송된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오스트리아 빌라흐의 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게 된다.
위에 소개한 음반에선 박하우스가 공연 도중 청중들을 향해 힘들다며 잠깐 쉬었다가 하겠다는 멘트와 청중들이 격려의 박수를 치는 소리까지 모두 녹음이 되어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의 멘트도 모두 녹음되어 있으니 박하우스의 팬이라면 꼭 하나 소장할 가치가 있다.
평생동안 피아노를 사랑하며 피아노에 파묻혀 살았던 사람. 그렇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85세의 나이까지도, 그것도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도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던 그는 틀림없이 복 받은 사람이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삶의 전형, 지표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가 박하우스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그는 모두에게 존경 받는 삶을 살았던 진정한 예술인,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다.
박하우스가 남긴 음악
노익장의 대명사인 83세의 피아니스트와 73세의 젊은 지휘자가 만났다. 이들이 남긴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이 곡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반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박하우스는 주로 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했다. 더 정확히 말해서 베토벤과 브람스의 음악만을 주로 다루었다. 그 외에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쇼팽의 곡도 연주하긴 하였으나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연주자치곤 대단히 협소한 레퍼토리라고 볼 수 있겠으나 역으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베토벤과 브람스가 거장으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가 남긴 명반들을 들어보면 정말 이 사람이 건반의 사자왕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힘과 테크닉을 자랑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차분하면서 서정적이다. 에밀 길렐스처럼 힘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또 폴리니처럼 자로 잰 듯한 정확하고 차가운 터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남긴 음반들의 대부분이 40대 중반, 50대를 훨씬 넘어 녹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은 그의 나이 무려 74세부터 그가 사망한 85세까지 11년간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70을 훨씬 넘기고 80이 넘은 나이의 노인네에게 건반의 사자왕의 힘을 느끼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가 비교적 젊은 시절(50대 중반부터 60줄까지이다)에 남겼던 음반들 중 남겼던 음반 중엔 그의 최말년에 녹음한 음반들과 비교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의 나이 69세에 클레멘스 크라우스와 함께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있다. 구하긴 쉽지 않지만 이 당시의 음반을 들어보면 훗날 그가 녹음한 다른 황제들에 비해 건반이 부서질 듯이 내리찍는 엄청난 박력과 기교를 느낄 수 있다.
박하우스는 주로 피아노 소리가 두드러지는 독주곡과 협주곡만을 연주하였다. 실내악은 즐겨 하지 않았고 알려진 음반도 거의 없다. 프랑스의 첼리스트 피에르 푸르니에와 함께 녹음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정도이다. 젊은 시절엔 주로 독주곡과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음악적 완성도가 더해지는 노년엔 반주자로 활동하며 실내악 연주에 중점을 두는 일반적인 패턴과는 다른 경우이다.
박하우스가 남긴 명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듣는 애호가들이라면 한가지 음반만을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적게는 2~3가지 이상, 많게는 10가지 이상의 음반을 비교하면서 듣는 것이 보통인데 그만큼 다양한 연주자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또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가 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에겐 필생의 역작으로 불리는 32곡 전곡의 녹음은 그 방대한 양도 물론이거니와 피아니스트 자신의 예술혼을 모두 쏟아 부어 최상의 연주를 해야 하는 강박관념으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독일이 낳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인 빌헬름 박하우스는 70이 다된 나이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에 도전하여 그가 사망하던 85세까지 두 번의 전곡 녹음을 완성해 냈다. 그리고 박하우스가 남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은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애호가들이 찾고 있는 이 곡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너무 좋은 음반들이 많아 선뜻 어느 것 하나만을 고르기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애호가들이 찾는 음반 베스트 3을 꼽는다면 에밀 길렐스의 것과 박하우스, 그리고 알프레드 브렌델의 것을 들 수 있다.
박하우스의 경우엔 두 가지 전집이 있는데 모두 영국의 음반사 데카에서 발매되었다. 음질이나 여러 요소를 고려할 때 두 번째 전집이 그를 대표하는 첫 번째 명반으로 들 수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과 함께 또 하나의 명반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이다. 베토벤에 천착했던 그답게 협주곡 음반도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5번 황제와 4번의 경우는 네 종류의 음반이 있을 정도로 이들 곡에 많은 애착을 가졌다.
5번 황제는 한스 크나퍼츠부시와 함께 한 음반도 있고 클레멘스와 함께 한 음반도 있지만 역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음반이라면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와 함께 한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중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4번이다. 3번과 5번 협주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연주하는 이 곡을 박하우스는 네 번이나 레코딩함으로써 이 곡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4번 협주곡은 칼 뵘과 협연한 영상이 DVD로도 발매되고 있고 한스 크나퍼츠부시와 협연하는 라이브 동영상도 있다. 박하우스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라면 하나쯤 소장해도 좋을 법하다. 개인적으로 4번 협주곡의 2악장을 가끔 즐겨 듣곤 하는데 그 어떤 연주자의 음반에서도 박하우스가 표현하는 처절하면서 웅장한 느낌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을 정도의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베토벤과 함께 박하우스가 가장 자신있게 평생을 두고 연주한 레퍼토리는 브람스이다. 특히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박하우스와 뵘이 함께 호흡을 맞춘 음반이야말로 이 곡을 대표하는 전설의 위치에 놓여 있다.
울리며 80줄을 훌쩍 넘긴 박하우스의 중후하면서도 서정적인 연주와 기막히게 어우러진 빈 필의 반주는 서로가 서로를 서포트하며 곡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상승시키고 있다. 나 역시 이 곡을 무척 좋아하여 10가지가 넘는 음반으로 모조리 들어보았는데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박하우스의 음반을 넘버원으로 놓기엔 조금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두 번째 자리에 놓고 싶다. 넘버원은 길렐스와 오이겐 요훔의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자~! 여기까지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무척 감사드린다. 위의 글에 소개된 박하우스의 베토벤 소나타, 협주곡은 이미 내 블로그에 여러차례에 걸쳐 올려 놨으니 찾아서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새롭게 맞이할 2010년대에도 내 블로그는계속 될 것이며 변함없는, 하지만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맞이할 것을 약속드린다.
Wilhelm Backhaus(Piano)
녹음: 1969/06/28 Stereo, Analog
장소: Ossiach Stiftskirche, Carinthia, Aust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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