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매우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바로 공감각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색깔과 형상을 음표로 표현할 수 있었고 그의 독특한 능력은그의 작품에서 뛰어난 색채감, 상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음으로 고스란히 전사되었다.

RIMSKY-KORSAKOV: The Flight of the Bumble-Bee - from The Tale of Tsar Saltan

하차투리안의 가야네(Gayne) 모음곡 중 ‘칼의 춤(Sabre Dance)’에 이어 또 하나의 정신 없는 곡, 그리고 ‘칼의 춤’만큼이나 의외의 클래식인 곡을 또 하나 올린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근대 관현악을 정립한 작곡가로 기억되는 한편 다수의 오페라도 남겼다. 하지만 그다지 유명한 오페라는 없는데 살탄 황제의 이야기(The Tale of Tsar Saltan)가 그 중 유명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오페라의 모음곡,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하는 왕벌의 비행이라는 곡이 가장 유명하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곡을 썼지만 원작은 비운의 작가 푸시킨의 작품이며 프롤로그 4막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1900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

간략한 내용을 살펴보자면 전형적인 아이들 동화 같은 스토리이다. 살탄 황제가 어느 부잣집 세 딸 중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를 황후로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황후는 아들 Gvidon(이거 한국말로 어찌 읽는지?)을 낳게 된다. 그런데 당연히 황후의 두 언니들이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황후인 동생을 중상 모략하게 되고 황제는 여기에 현혹되어 황후와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들까지 싸잡아서 바닷가에 던져버린다.

천만다행히도 바다가 도와 이들 모자는 Buya라는 외딴 섬의 해안가까지 떠내려가서 목숨을 건지게 되고 아들 Gvidon은 건장한 청년으로 장성한다. 그러던 어느 날, Gvidon은 왕벌(원작에선 솔개)의 습격을 받은 우아한 백조 한 마리를 구해주게 되고 이 백조는 감사의 표시로 세 가지 선물을 주게 된다. 하나는 금과 에메랄드를 가져다 주는 다람쥐, 그리고 용맹한 무사 33인, 마지막으로 백조 자신이 우아한 여인으로 변신하여 Gvidon과 결혼까지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리고 살탄 황제가 다시 찾은 황후와 장성하여 결혼한 아들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권선까지는 맞는데 징악은 아닌 이야기인 것 같다. 백설공주도 알고 보면 근친상간, 집단섹스에 아주 가혹한 형벌로 왕비를 죽이는 결말이 있지 않았던가? 신데렐라 역시 자신을 구박한 계모와 언니들의 눈깔을 뽑아서 장님을 만들었다. 이에 비해 살탄 황제 이야기는 어떤 숨은 결말이 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화끈한 징악의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이 작품에서 하나 덧붙이자면 간혹 술탄(Sultan)이라고들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술탄이 아니라 살탄이 맞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빵점이에요~!

오늘 소개하는 왕벌의 비행은 백조를 공격하는 왕벌떼가 붕붕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정말이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천재성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만든다. 어찌 왕벌떼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어찌 이런 곡을 쓸 수 있었는지.

그냥 보기만 해도 어지럽긴 한데 이걸 연주하는 게 그렇게도 어렵긴 어렵나보다. 이 곡을 아는 사람들은 다들 학을 떼더라구.


수 십 명의 인간이 내는 왕벌의 소리. 합창으로도 이 곡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사실 왕벌의 소리 치곤 너무 우아하지 않나?

이 곡에 대해서 잘 알려진 또 한 가지는 세상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 중 하나로 서슴없이꼽힌다는 것. 피아노 연주용으로는 라흐마니노프가 편곡을 하였고 피아니스트가 연주회장에서 자신의 기교를 뽐내고 싶을 때 이 곡을 많이 연주한다. 그 외에 바이올린, 첼로로 연주하는 실내악곡도 있고 관현악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오늘 내 블로그에선 이왕 소개하는 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관현악 연주까지 1N1이 아닌 1N3 올 패키지로 아낌없이 소개하겠다. 행여라도 한 가지 버전만 올렸다가 나중에 이것도 올려 주세요~ 저것도 올려 주세요~ 신청 들어오면 그때그때 음반 파일 푸는 것도 귀찮기도 하고.

이거 하나 장담한다. 그 어떤 블로그에서도 이 곡을 4가지 연주로 모두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내 블로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꽤나 귀찮은 작업했다는 노고 정도는 알아주시길. 그럼 정신없는 곡, 정신 없이 하나씩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같은 벌 중에서 이 곡이 더 신나는지 아님 강진의 땡벌이 더 신나는지도 비교체험 해보시고.

1. Sergey Rachmaninov



1929년이면 벌써 80년이 넘은 시절의 음반이다.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이 곡을 편곡했고 본인만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고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수많은 후배 연주자들도 이 곡을 귀신처럼 연주하고 있는 걸. 이 음반은 RCA에서 나온 10CD 음반인데 라흐마니노프의 아주 옛날 귀한 음원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기 때문에 소장할 만하다. 가격도 저렴하다.

Sergey Rachmaninov
녹음: 1929/4/16 Mono
장소: USA


2. Jascha Heifetz


정신 없는 곡이라면 당연히 정신 없는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야지. 장담하건대 이 곡을 바이올린으로 하이페츠만큼 빠르게,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Jascha Heifetz: violin
Emanuel Bay: piano
녹음: 1946/10/18 Mono


3. Ernest Ansermet


라흐마니노프의 관현악곡 ‘죽음의 섬’을 소개할 때 함께 소개했던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의 음반이다. 앙세르메는 다른 건 몰라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만큼은 세계 최고의 권위자였다. 물론 시대가 많이 변하면서 그 옛날의 명반으로 평가받던 앙세르메의 음반이 이젠 명반의 대열에서 많이 밀려난 것도 사실이지만. 세헤라자데를 감상하고 싶은 애호가라면 꼭 들어봐야 할 음반이 바로 이 음반이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여러 관현악곡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음반이다.

Ernest Ansermet (conductor)
L'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
녹음: 1958 Stereo, Analog
장소: GENEVA


4. Pierre Fournier


바이올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이 곡을 첼로로 연주하는 건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첼로로 연주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피에르 푸르니에, 모리스 장드롱 등이 이 곡을 연주했는데 여러 차례 울궈먹었던 푸르니에의 음반으로 또 올린다.

Pierre Fournier (Cello)
Lamar Crowson (Piano)
녹음: 1969/01/08-10 Stereo, Analog
장소: Plenarsaal d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Residenz, Munich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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