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Elgar: Cello Concerto in e op.85
바이올린, 첼로 협주곡 2006. 6. 19. 17:18 |베토벤을 리허설중인 뒤 프레. 매우 천진하고 해맑은 웃음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 천진한 웃음뒤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불행이 숨어 있었다.
Edward Elgar: Cello Concerto in e op.85
간혹 이런 음악들이 있다. 어떤 작곡가가 작곡한 어떤 음악이라기보다 그 음악을 연주한 연주가의 이름이 더 유명해서 먼저 떠오르는 음악. 오늘 포스팅하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영국의 위대한 작곡가인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엔 그다지 연주되지 않고 유명하지 않았던 곡이었으나 영국이 낳은 세계최고의 여류 첼리스트인 재클린 뒤 프레에 의해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첼로 협주곡 중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대단히 무겁고 차분한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첼로의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힘찬 반주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는 이 곡을 세상에서 가장 잘 연주했던 비운의 천재 여인 재클린 뒤 프레의 눈물젖은 인생사를 함께 생각하면 깊은 센티멘탈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슬픈 운명을 간직한 영국의 장미-재클린 뒤 프레
내게 첼로란 악기를 처음으로 접하게 한 곡은 너무도 유명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이다. 그 외엔 첼로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었다.
재클린 뒤 프레가 연주한 드보르작과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듣게 되었다. 바이올린에서는 낼 수 없는 그 깊고 묵직한 소리에서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세기의 명연주자이며 불행한 삶을 살다간 요절한 천재, 재클린 뒤 프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클린 뒤 프레가 연주한 드보르작과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듣게 되었다. 바이올린에서는 낼 수 없는 그 깊고 묵직한 소리에서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세기의 명연주자이며 불행한 삶을 살다간 요절한 천재, 재클린 뒤 프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 20세기 최고의 여류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라 불리는 영국의 백장미. 많은 이들은 아직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잊지 못한다.
한 손엔 神이 선사하신 재능과 또 한 손엔 가혹한 운명을 받아야 했던 천재 첼리스트.
그녀는 뛰어난 재능으로 독보적 위치의 여류 첼리스트가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매우 처연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뒤 프레는 1945년생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좋은집안 환경뿐 아니라 대단히 뛰어난 감성과 음악적 재능까지 함께 타고 났으니 그녀의 인생출발점은 대단히 축복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4살 때부터 그녀는 첼로에 관심을 보였고 자기 키보다 더 큰 첼로를 들고 연주하는 것을 그리도 좋아했다고 한다.그리고 그토록 뛰어난 재능을 보이더니전설적인 첼리스트인 카잘스,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하였고 16세에 런던에서 데뷔하였고 20세엔 뉴욕에서 데뷔하여 화려한 그녀의 음악 인생의 서막을 열기 시작하였다.
짧았던 환희, 길었던 고통의 시간
최고의 엘리트 가문출신이라는 배경과 함께 뛰어난 재능까지 겸비한 그녀의 인생은 언제까지나 성공가도만을 달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렬한 햇빛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길이도 깊고 깊은 법. 그녀는 20세기를 빛낸 수많은 아티스트 중에서도대단히드라마틱하고 눈물나는삶을 살다간 여인이었다.
뒤 프레는 23세에 운명의 남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다. 원래 바렌보임은 유능한 지휘자이긴 하나 뒤 프레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이 너무도 깊었기에 결국 결혼을 하였고 재능있는 야심가인 바렌보임과 천재 여류 첼리스트로 각광받던 뒤 프레는 이후에도 계속 성공신화를 써내려간다. 바로 그녀가 28세가 되기 전까지의 일이다.
다니엘 바렌보인과 재클린 뒤 프레. 다니엘 바렌보임은 매우 재능있는 지휘자이지만 영국, 독일,미국 어디에서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영국에선 뒤 프레를 버린 비정한 배신자, 독일에선 유태인, 미국의 유태인들 사이에선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는 이중적인 출세지상주의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뒤 프레는 28세의 나이에 다중경화증이란 불치병에 걸리고 만다. 손가락도 굳어 버리고 눈도 침침해지고 방향감각도 없어지는 이이상한 병에 걸린 그녀는 모든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남편 바렌보임은 대단한 야심가였다.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기에 자신보다 훨씬 네임벨류가 높았고 많은 이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아내 뒤 프레의 연주가 꼭 필요했다. 그녀가 병에 걸린 줄은 두 사람 모두 몰랐던 사실이었기에 뒤 프레가 리허설 도중 음을 놓치는 실수라도 하면무척 화를 내며 다그쳤다고 한다.가끔 남편에게 증상을 털어놓기라도 하면 남편 바렌보임은신경도 쓰지 않고 정신력의 해이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서 다중경화증이란 희귀병 판정을 받은 후에 그녀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즉, 자신의 연주가 형편없어져 남편의 사랑을 잃고 있는 것이 정신이 이상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육체의 병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병 판정을 받기 전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으며 이는 남편 바렌보임이 얼마나 뒤 프레를 다그쳤는지, 또한 뒤 프레는 그런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고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다.
사랑과 열정, 욕망과 배신이 교차했던 삶
뒤 프레는 모든 연주활동을 28세에 중단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의 활동은 후진양성에 힘썼고 78년엔 솔프드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연주를 중단한 이후의 그녀의 삶은 너무도 비참했다. 야심가인 남편은 순회공연으로 바빠서 그녀에게 제대로 신경을 써줄 수도 없었다. 사실상의 이혼이나 다름없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못했다. 돌아누울 수도 없었고 눈물을 흘릴 수도 없는 이 희한한 병에 걸린 그녀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외로움에 떨며 전화를 걸어 사람들에게 와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자신이 연주한 엘가 첼로 협주곡의 그 장엄하고도 찢어질 듯이 슬픈 음악을 들으며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냐며 세상을 향해 물었던 그녀의 삶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42세의 나이에 그녀는 짧았지만 불꽃같았던 삶을 마치게 된다. 남편 바렌보임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조용히 운명하였고 많은 영국인들은 엘가 이후에 영국 음악계가 낳은 또 하나의 천재인 그녀의 죽음을 몹시도 슬퍼했다. 그리고 지금도 영국인들은 뒤 프레를 영국의 장미라 부르며 그녀를 애도하고 있다.
뒤 프레의 무덤. 수많은 이들이 그녀를 애도하며 이곳을 찾지만 정작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그리고 뒤 프레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 그는 자신의 음악인생에 커다란 성공을 안겨 주고 비참하게 떠난 아내 뒤 프레의 무덤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뒤 프레 역시 바렌보임이 있었기에 더욱 음악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겠지만 사실 바렌보임이 얻은 명성의 상당부분은 뒤 프레와 함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뒤 프레의 생전에는 아픈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성공만을 향해 달려갔던 남자, 죽은 사후에는 어머니의 무덤에도 가지 않는다며 단 한 차례도 아내의 무덤을 가지 않았던 남자. 하지만 그런 매정한 남편을 그토록 사랑했던 뒤 프레. 한 여자의 기구한 일생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드라마틱하고 슬프다.
뒤 프레가 남긴 음악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존 바비롤리가 이끄는 악단과 함께 연주중인 뒤 프레. 뒤 프레는 이 곡을 바비롤리와도 함께 협연하였고 그녀의 남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도 함께 협연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뒤 프레는 대단히 선이 굵고 힘있는 연주를 구사했다. 그녀의 연주는 맑고 투명하면서 매우 스케일이 크다. 첼로라는 악기가 주는 웅장함과 함께 매우 굵은 느낌의 음악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남긴 명반 중에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존 바비롤리와 함께 연주한 엘가 첼로 협주곡이다. 이 음반은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절대적인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세르쥬 첼리비다케와 함께 작업한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도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그 외에도 생상 첼로 협주곡, 슈만 첼로 협주곡 등 짧은 연주기간동안 그녀는 숱하게 많은 명반을 남겼다.
뒤 프레가 연주한 첼로 협주곡 모음. 엘가 첼로 협주곡과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뒤 프레를 사랑하는, 못잊는 팬이라면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가격은 좀 쎈 편이다. 오랜 세월동안 탑 프라이스로 책정되어 있어도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 엘가 역시 이 대작을 만든 이듬해에 그의 사랑하는 부인과 사별을 하였고 이 작품은 그의 작품인생의 마지막이 되어 버린 곡이다. 첼로라는 무겁고 우울한 소리의 악기에서 나오는 이 비장하면서 처절한 느낌의 협주곡을 작곡한 사람과 연주한 사람의 인생 역시 이 곡의 분위기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기막힌 운명과도 같은 우연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Jacqueline du Pre (Cello)
Sir John Barbirolli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녹음: 1965/08/19 Stereo, Analog
장소: Kingsway Hall, London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Adagio - Moderato
2악장-Lento - Allegro Molto
3악장-Adagio
4악장-Allegro - Moderato - Allegro ma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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