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브람스. 27세 당시의 모습이다. 길다란 수염에 텁텁하게 생긴 근엄한 아저씨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BRAHMS: Tragic Overture op. 81

브람스는 두 곡의 서곡(overture)을 작곡했다. 하나는 대학축전 서곡이고 또 하나는 '비극적'이란 이름이 붙은 서곡인데 두 곡의 느낌은 너무도 판이하다. 대학축전 서곡은 너무도 밝고 화려하고 힘찬 느낌이어서 이게 과연 브람스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의 통념을 깬 작품이라고 한다면 비극적 서곡은 애끓는 비장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작곡을 한 브람스가 하나는 웃는 서곡, 또 하나는 우는 서곡이라는 별칭까지 붙였다고 한다. 희한한 것은 브람스가 이 두 곡을 같은 시기에 연달아 작곡했다는 것인데 사람의 감정이 어찌 그리도 희로애락의 공간이동을 쉽게 할 수 있는지 놀랍다면 놀랍다고 할 것이다.

듣고 느껴보시기 바란다. 브람스다운 비장함이 무엇인지, 또한 브람스다운 비극적 세계는 무엇인지.


2007년 1월의 이슈가 된 키워드를 딱 하나만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 아마도 '喪'이 아닐까. 새해부터 사회, 연예, 스포츠할 것 없이 줄줄이 초상난 소식들이 넘쳐나고 있다.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개그우먼 김형은 양, 또 야구선수 이승엽 선수의 모친상에 탤런트 오지호의 연인이었던 모 여인의 자살에 이어 탤런트이자 가수였던 이혜련 양과 또 오늘 아침엔 웬 중국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토막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엽기적인 사건까지...

인명은 재천이라...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는 것이라 결코 인력으로 끊고 맺을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이 사회에 보다 더 많은 공헌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나눠줄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맥없이 죽는다는 것은 하늘도 원망스러운 일이다.

하루 앞의 일도 모르는 것이 인생사.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명대사처럼 인생이란 초콜릿 상자에 손을 집어 넣고 초콜릿을 고르는 것처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겁먹을 필요도 낙담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 인생의 벼랑끝에 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자살을 생각했던 그대들이여. 세상엔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슬퍼해주는 사람들이 좀 더 많다고, 나를 사랑해주고 감싸주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고 한 번만 더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비극적인 사건들로 넘쳐나고 있는 2007년의 정월이다.


비극적 서곡은 브람스의 대표적인 명곡답게 많은 음반들이 있다. 내 경우엔 토스카니니 할배와 발터 할배의 두 가지 음반으로 갖고 있다. 두 사람이 해석한 비극의 차이점이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토스카니니 할배는 비극을 느끼며 울분을 토하는 격렬한 적극적인 한 인간의 모습, 그리고 발터 할배는 그 비극을 마음속에서 한 번 순화하여 보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람스의 우는 서곡을듣고 비극을 느끼는 여러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비교우위를 가리기엔 우습기도 하지만 내 경우엔 발터처럼 후자의 모습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초상집 빈소에서 혼절할 정도로 엉엉 울어제끼는 모습도 과히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누구 보기 좋으라고 그렇게 우나? 슬픔도, 울음도 조용히 혼자 우는 것이 떠나가는 고인을 향한 마지막 태도가 아닐까?

1. Arturo Toscanini

Arturo Toscanini (conductor)
Philharmonia Orchestra
녹음: 1952/9/29&10/01 Mono
장소: Royal Festival Hall, London



2. Bruno Walter


Bruno Walter (conductor)
Columbia Symphony Orchestra
녹음: 1960/01 Stereo, Analog
장소: American Legion Hall, Hollywood, California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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