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의 베토벤이 그토록 사랑했다던 여인 테레제. 베토벤이 느꼈던 테레제의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BEETHOVEN: Bagatelle in A minor WoO 59 "Für Elise"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빌헬름 켐프의 피아노 곡을 딱 한 곡만 듣고 그냥 지나치자니 많이 아쉽다. 이런 전차로 세기의 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가벼운 소품곡도 하나 더 감상하겠다. 그 이름, 너무도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18세기를 살았던 한 독일 작곡가가 남겼던 작품 중 시공을 초월하여 가장 유명한 곡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다수의 의견이 나오겠지만 아마 그 이름도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이름의 피아노곡으로 수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로 봉고차 빠꾸할 때 유유히 흘러나오는 그 멜로디, 그 곡이다.


이 유명한 곡은 작곡한지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지지 않는 곳이 없으니 가깝게는 봉고차 빠꾸할 때, 전화벨, 초인종의 멜로디로도 너무나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피아노를 보게 되면 반사적으로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번갈아 가며 뚱땅거리는 첫 번째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그만큼 유명하기도 하지만 사실 베토벤이 남긴 수많은 작품 중 큰 예술성을 인정받는 곡은 아니다. 베토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인 피아노 소나타에 속하지도 않는, 가벼운 소품 형식의 바가텔 (bagatelle) 중 하나이다. 이 바가텔이라는 것은 피아노의 소품 형식곡에 붙이는 이름인데 쓸데없는 것, 가벼운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제목도 알고 있고 이 곡을 작곡한 베토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도 다 알겠지만 그래도 그냥 한 번 짚고 넘어가본다. 먼저 이 곡의 악보는 베토벤 사후 40년이 지난 뒤 뮌헨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곡의 제목 역시 ‘엘리제를 위하여’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수밖에 없지만 당시 베토벤이 마음을 두고 있던 테레제 폰 말파티 (Therese von Malfatti)라는 여성을 위하여 작곡한 것이다.

실제 테레제 폰 말파티의 초상화. 초상화로만 보면 별로 예쁜 것 같진 않다. 제시카가 훨씬 예뻐 보인다.

묘사에 정밀하지 못한 초상화와 수 백만 화소로 찍은 디카의 차이점을 감안하더라도 저 위의 테레제보다 제시카가 훨씬 아름다워 보이는 건 나뿐일까?

테레제라는 여인은 베토벤에게서 피아노를 배운 제자이기도 했고 또한 베토벤이 너무 사랑한 나머지 청혼까지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먼저 나이차이가 많았다. 당시 베토벤은 40세의 아저씨, 테레제는 아름다움이 절정을 맺을 나이인 18세의 꽃다운 처녀였다. 참 뻔뻔하다. 아무리 대단한 음악가라는 자신이 넘쳐 흐른다 한들, 사회적 통념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들 어찌 딸 같은 아름다운 처녀에게 청혼까지 했는지.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신분 차이였다. 테레제는 빈에서 이름을 날리던 대지주의 딸로 귀족출신이었다. 이에 반해 베토벤은 천한 신분의 음악가였을 뿐이다. 결국 테레제는 헝가리의 귀족가문에 시집을 가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뻔뻔한 사랑은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베토벤은 이 곡을 테레제에게서 청혼을 거절당하기 전에 작곡하였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베토벤은 테레제 이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열렬한 사랑을 갈구하였으나 신분차이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예술가의 신분이 미천했던 그 시기가 아닌 20세기에 태어났더라면 아마 베토벤은 세계 최고의 신랑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아보았기에 베토벤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펼치며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쏟아낼 수 있었다. 이걸 좋다고 해석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석해야 할까?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각자에게 맡기겠다.

빌헬름 켐프의 옛날 녹음으로 감상하겠다. 봉고차 빠꾸할 때조차 흘러나오는 유명한 곡이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많은 음반이 있진 않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이토록 아름답고 언제 들어도 반가운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사랑의 감정이 충만한 때였지만 그 사랑의 끝은 무척 좋지 않았고 슬펐다는 에피소드쯤은 알아두시길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앞으론 봉고차 빠꾸할 때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들을 때에도, 택배 아저씨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들을 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들을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다시금 상기해야 되겠다. 이처럼 위대한 예술이란 한 인간의 잔인한 삶을 먹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Wilhelm Kempff (piano)
녹음: 1955/05/23 Mono
장소: Decca Studios, West Hampstead, London

Posted by snip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