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 flat major op. 83(E. Fischer)
피아노 협주곡 2007. 9. 24. 02:19 |1933년 푸르트벵글러의 47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푸영감님의 친구들. 왼쪽에서 두 번째의 바가지 머리의 영감님이 에드빈 피셔. 그 옆의 키 큰 훌러덩 영감님은 바이올리니스트 Georg Kulenkampf, 맨 오른쪽의 키 작은 훌러덩 영감님은 너무도 유명한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이다.
BRAHMS: Piano Concerto No. 2 in B flat major op. 83(E. Fischer)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 하나 있다. 사실 이 음반은 이 곡을 이야기할 때 썩 잘된 명반으로 평가받지는 못하는 것 같고 때문에 유명하진 않지만 같이 연주를 한 두 사람의 이름 값 때문에라도 꼭 한 번은 들어봐야 할 음반이다. 20세기 전반 독일 음악을 대표하는 가장 빛나는 지휘자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에드빈 피셔-피아노의 신선
하얀 백발에 하얗고 길다란 눈썹. 피셔의 모습은 마치 신선처럼 느껴진다. 그의 인간성 또한 맑고 순수했으며 온화했다고 한다. 이처럼 피셔는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살았던 20세기 전반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다.
피셔는 20세기를 빛낸 기라성같은 피아니스트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가 남긴 많지 않은 음반과 그 음반들이 모노 레코딩의 열악한 음질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그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발터 기제킹에 비해 적은 양의 음반만을 녹음하였고 대중적 흡입력을 가질 만한 연주를 한 것도 아니다. 그의 연주는 자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따분하게 들리기도 하고 모노 사운드의 열악함때문에 감상하기 좋지 않은 점도 있다.
하지만 피셔를 피아니스트 연주자라는 1차원적인 관점에서 조금 달리 보면 그가 끼친 영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알프레드 브렌델, 다니엘 바렌보임, 파울 바두라스코다
적어도 피아니스트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이라면 이들의 이름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의 하나인 브렌델과 바렌보임, 그리고 바두라스코다를 키워낸 인물이 바로 피셔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를 단순히 20세기 전반의 '유명했던' 피아니스트 그 이상의, 훨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처럼 피셔는 그 자신도 대단히 훌륭한 연주자였지만 교육자로서의 명성 또한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지휘자로서의 명성 또한 대단했다. 뤼벡 음악 협회, 뮌헨 바흐 협회에서 지휘를 하였고 베를린에서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또한 루체른 음악제에서 지휘를 하여 많은 명성을 쌓았다.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업적 중 으뜸 가는 것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과 2권을 최초로 녹음한 것이다. 피아노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평균율을 음반사상 최초로 녹음하여 수많은 음악애호가와 피아니스트 지망생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점은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주저할 것 없이 손꼽을 수 있는 것이다. 피셔의 뒤를 이어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평균율을 녹음하였고 때문에 피셔가 남긴 평균율 음반은 그저 옛날 사람이 녹음한 음반, 역사적 의의만 남아 있는 음반이란 저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평균율을 즐겨듣는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피셔의 이름은 결코 지워질 수 없을 만큼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피셔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특징은 하나의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간다는 것에 있다. 원만하고 부드러운 그의 품성이 연주에도 투영되는 듯이 결코 지나친 힘을 주어가며 압도하는 식의 연주를 구사하지 않았다. 이런 연주스타일 때문에 그가 기교파 연주자로 구분되지 않고 또한 기교면에서 떨어진다는 감점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력과 그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기교 그 이상의 기교로 피아노에서 표현할 수 있는 세련된 곡선의 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주스타일은 그의 제자인 알프레드 브렌델에게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피셔는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한 대 피아니스트였고 지휘자였으며 훌륭한 제자들을 키워낸 더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리고 좋은 품성과 부드럽고 따스한 인간성으로 그의 주변에는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피아노의 선계(仙界)에 있는 듯한 인물이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명반
브람스가 남긴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1번에 비해 2번이 더 많은 음반이 있고 어떤 것이 최고의 명반인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고 애청하는 음반 베스트 5를 꼽는다면
박하우스-뵘-빈필의 데카 음반
길렐스-요훔-베를린 필의 DG 음반
호로비츠-토스카니니-NBC의 RCA 음반
리히터-라인스도르프-CSO의 RCA 음반
폴리니-아바도-빈필의 DG 음반
정도를 들 수 있다. 이 중 박하우스, 길렐스의 음반은 이미 소개한 적이 있다. 호로비츠-토스카니니의 음반은 호로비츠의 최전성기로 볼 수 있는 1940년대 초반의 것이란 점에서 구미를 당기게 한다. 그 당시에 함께 나왔던 음반이 그 무시무시한 괴력을 선보였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그렇다면 호로비츠의 피아노와 토스카니니의 반주가 어느 정도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브람스 음악답지 않게 대단히 빡빡하고 여유가 없다는 점, 그리고 녹음상태가 좋지 못하다. 많은 이들이 추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추천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리히터-라인스도르프의 음반이 또 유명하다. 리히터가 최초로 미국 땅을 밟은 후 남긴 협주곡 음반인데 리히터의 피아노는 대단히 정확하고 명징한 특징을 잘 살리고 있지만 라인스도르프가 이끄는 CSO의 반주가 썩 좋지 못하다. 유명하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만족할만한 음반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호로비츠도 그렇고 리히터도 그렇고 이들의 최전성기로 구분되는 이 시기에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아닌 1번을 녹음했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들었다.
폴리니와 아바도의 연주는 딱히 흠잡을 것이 없다. 하지만 그토록 완벽하고 빈틈없는 연주에서 그 이상의 임팩트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 또한 흠이라면 흠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깔끔하고 정확한 음악세계를 추구하는지라 달리 흠잡을 것은 없지만 다른 작곡가의 것도 아닌 브람스를 연주하는데 이렇게 밝고 깔끔하게만 해서야 어디 특별한 감흥이 오겠는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앞서 언급한 음반들 외에도 박하우스-슈리히트, 제르킨-셀 등의 음반도 명반 중의 명반으로 꼽힌다. 그리고 이 모든 음반들을 접해 본 결과 나의 추천 넘버1은 뭐니뭐니해도 길렐스-요훔의 것이다.
피셔-푸르트벵글러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피셔와 푸르트벵글러는 동시대에 활약한 지휘자와 연주자로 좋은 친분을 유지하며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이름으로 남겨진 피아노 협주곡의 수는 결코 많지 않은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 4, 5번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전부이다. 이 중 푸르트벵글러와 피셔는 베토벤 5번 황제, 그리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함께 작업했다. 참고로 피셔 외에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작업한 Conrad Hansen, Adrian Aeschbacher등의 피아니스트는 어지간한 음악 애호가들도 모르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이들이다.
어쨌든 피셔와 푸르트벵글러는 개인적인 친분도 꽤 있었고(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두 번씩이나 걸쳐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name value에서부터 이들이 남긴 음반을 처음 접하는 이들의 눈길을 확 잡아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푸영감의 전시녹음이란 점에서 더더욱 구미를 당기게 한다.
피셔와 푸영감이 함께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음반.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다. 나중에 이 음반도 한 번 풀어놓겠다.
푸영감은 이 곡을 두 번 녹음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전시에 녹음하였다. 한 번은 피셔, 그리고 또 한 번은 앞서 언급한 Adrian Aeschbacher와 협연하였다. 사실 푸영감의 지휘 스타일, 게다가 전시녹음이란 점을 감안하면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는 1번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만일 1번의 녹음을 남겼다면 정말 역사적인 명반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 점에서 좀 아쉽긴 하다.
어쨌든 두 명의 피아니스트와 각각 작업했는데 음반을 듣기도 전부터 생기는 선입견은 과연 푸영감의 베를린 필이 얼마만큼 광폭한 연주를 하여 피아니스트의 야코를 죽여놓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하였다. Adrian Aeschbacher와의 전시녹음을 들어보면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는 브람스 음악 특유의 진하고 부드러운 정서 따윈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게다가 푸영감도 푸영감이지만 Adrian Aeschbacher란 피아니스트도 만만치 않게 거세다.
하지만 피셔와의 녹음에선 푸영감의 배려가 많이 돋보였다(이 점은 훗날 피셔와 함께 녹음하게 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에서도 드러난다). 피셔의 부드럽고 원을 그리는 듯한 특유의 피아니즘을 최대한 배려해주는 듯이 사정없이 몰아치지 않고 최대한 하모니를 이루려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듯 했다. 그 덕분에 피셔의 피아노가 관현악에 파묻히지 않고 청량한 소리를 이끌어내며 마지막까지 질주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호기심에서라도 좋으니 Adrian Aeschbacher와의 협연도 한 번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가장 독특하고 개성이 살아있는 반주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듣는 재미는 피셔의 것보다 그 음반이 더 낫다.
Edwin Fischer (Piano)
Wilhelm Furtwangler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녹음: 1942/11/08 Mono
장소: Berlin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 Allegro non troppo
2악장 Allegro appassionato
3악장 Andante
4악장 Allegretto grazi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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