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op. 55 `Eroica`(R. Leibowitz)
르네 라이보비치(René Leibowitz). 대단히 학구적이면서 뚜렷한 개성을 가진 지휘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그가 남긴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베토벤 교향곡 매니아들 사이에선 뜨거운 화제거리이다.
BEETHOVEN: 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op. 55 "Eroica"(R. Leibowitz)
어제도 미친 듯이 눈이 내렸다. 젠장할. 세상이 미쳐가려니까 하늘도 미치고 있다. 2010년의 봄은 도대체 언제 오려는지. 진정한 봄이 오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오랜만에 베토벤 교향곡 3번, 이름하여 무려 '영웅'을 오랜만에 감상하겠다. 오랜만에 올리는 곡이니만큼 아주 화끈하고 정신 없이 푸닥거리하는 음반으로 한 번 골라봤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의 수가 턱없이 적은) 르네 레이보비치의 1961년 체스키 레이블 음반이다.
르네 레이보비치란 지휘자는 베토벤 교향곡을 좀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그가 남긴 음반이 많지 않고 폐반된 음반이 대다수이며 지휘자로서 큰 명성을 누리긴 했으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질만큼 활동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보비치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매니아들 사이에선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만큼 강한 개성을 들려주는 연주도 드물고 또 클래식 음악 듣는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희귀한 물건에 집착, 천착하는 오타쿠 기질이 다들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레이보비치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하자면 이 사람이 남긴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 어떤 음반인지에 대한 설명이 우선되어야 할 듯 하다.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하자면 일전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레이보비치로 첨 들었을 때 푸르트벵글러의 음반에만 꽂혀있던 시절이어서 너무 정신없이 빠르기만한 레이보비치의 연주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곡을 이렇게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하는 놀라운 경험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레이보비치는 1960년대 초반에 당시로선 파격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역대 음반 중 최초로 작곡가 베토벤이 지시한 메트로놈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정격연주로 녹음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또한 대단히 충격적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이 음반, 정말 장난 아니다. 질주하는 스피드는 물론이거니와 생동감 있는 리듬이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만든다.
레이보비치는 1913년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이고 어릴적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대다수의 음악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레이보비치도 신동소리를 들으며 음악활동을 했고 13살의 나이에 파리에 유학을 가서 모리스 라벨, 아놀드 쇤베르크를 만나서 지휘, 작곡을 배운다. 특히 쇤베르크에게서 크나큰 영향을 받았는데 훗날 음악활동뿐만 아니라 저술활동을 통해서 쇤베르크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젊은 시절의 르네 레이보비치. 젊은 시절엔 반나치활동도 적극적으로 했던 경력도 있다. 2차대전 중엔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적극적이었다고.
레이보비치와 관련하여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너무도 유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이다. 불레즈의 스승이 바로 레이보비치였다. 이처럼 레이보비치는 지휘자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작곡가, 지휘자임과 동시에 음악서적의 저자로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음악가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59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만일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좀 더 많은 음반을 남겼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개성을 자랑하는 베토벤 교향곡을 비롯한 여러 작곡가의 교향곡, 관현악곡을 감상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텐데. 참으로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레이보비치가 남긴 유일한, 그리고 그가 남긴 많지 않은 음반들 중 폐반되지 않고 남은 거의 유일한 음반이 바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다. 체스키 레이블로 총 4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1, 3번 커플링 음반은 한국돈으로 10만원쯤의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 워낙 희귀반이니까.
진정 질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의 기상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결코 보편화될 순 없지만 결코 외면할 수도 없는 연주. 바로 레이보비치의 베토벤 연주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카라얀, 뵘 등의 젊잖고 느긋한 연주와는 180도 차원이 다른 이런 연주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가끔 금관악이 뜬금없이 대포를 쏴대는 게 귀에 거슬리긴 해도 이만큼의 연주를 50년 전에 했다는 것은 정녕 놀라운 일이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그래도 가장 우선순위로 둘 수 있는 음반은 카라얀-베를린 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프랑스의 앙선생, 앙드레 클뤼탕스-베를린 필의 생동감있는 연주도 매우 훌륭하다. 앙선생을 소개했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카라얀보다 더 먼저 EMI와 계약을 맺고 베를린 필을 지휘해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남긴 사람이 바로 앙드레 클뤼탕스였다. 그만큼 잘된 음반이고 특히 3번이 가장 훌륭하다. 뵘 할배는 다른 홀수번호를 지휘할 땐 그렇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3번에선 좀 질러댄다. 뵘-빈 필의 연주도 좋다. 또한 다소 건조하지만 웅장한 사운드를 원한다면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의 음반도 빼놓을 수 없다.
레이보비치가 만드는 베토벤 교향곡의 특징을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비교를 하던데 내가 듣기엔 클라이버보다는 오히려 클뤼탕스와 좀 더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이 필요없다. 일단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요즘 어떤라됴 프로그램에서 일주일내내 레이보비치를 소개하면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틀어줬더니 거기 게시판에서 이 음반 어찌 구하냐고 다들 난리났다. 들어보시고 맘에 들면 10만원(95달러) 주고 사시던가. 다 듣고나면 한바탕 푸닥거리 끝나고 속이 후련해진다. 이것만큼은 100% 보장한다.
Rene Leibowitz (conductor)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녹음: 1961/04/10-12 Stereo, Analog
장소: London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Allegro con brio
3악장-Scherzo. Allegro vivace
4악장-No.3 - Finale. Allegro mol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