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K: Panis angelicus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뒤를 이은 세계최고의 팝페라 테너. 그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음악으로 소통하며 특유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빛내주고 있다.
FRANCK: Panis angelicus
세자르 프랑크는 작곡가이기 전에 당대 최고의 오르간연주자였고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했다. 그의 정식직업은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훗날 파리 음악원에서 오르간 교수가 되어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오히려 작곡가로서 인정받은 것은 생애 말년에 남긴 몇 안되는 작품들이 사후 재조명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그가 남긴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친숙한 작품을 꼽는다면 바이올린 소나타, 그리고 그가 남긴 유일한 교향곡인 D minor 교향곡 정도이다.
프랑크는 파리 성 클로틸드 교회의 합창장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당시 합창단이 매주 예배를 드릴 때마다 부를 노래를 작곡하였다. 그리고 미사곡도 작곡하였으나 그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대신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자신이 작곡하였던 미사곡에 붙일 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곡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파니스 안젤리쿠스(생명의 양식)’이 되겠다.
요즘 내가 사는 꼴이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정신세계는 많이 피폐해진 상태이다. 진정 차가운 현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진정 배고픔을 아는 사람은 한 끼의 끼니를 위해 몸을 파는 여인에게 정조를 팔았다고 욕하지 않고 구걸을 하는 걸인에게 자존심을 팔았다고 욕하지 않음을 내가 몸소 절절히 느끼고 있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빚쟁이들에게 쫓긴다거나 장기를 팔아서까지 돈을 갚아야 하는 식의 황당한 상황은 아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그만큼 사는 게 너무 바쁘고 시간에 쫓기면서 헉헉대다보니 메마른 현실세계에 살며 나 자신도 메말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메말라가고 있는 내게 얼마 전 세자르 프랑크가 작곡한 ‘생명의 양식’은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내게 하였다. 라틴어로 된 가사라 따라 부를 수는 없지만 이 곡을 참으로 오랜만에 우연히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메마른 감성의 땅에서 꿈틀거리는 새싹을 돋게 함에 충분했다.
근데 쪽팔리게 나만 질질 짤 순 없잖아? 내 블로그에 오신 분들도 안드레안 보첼리가 부르는 이 곡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없는 눈물이라도 짜내보시기 바란다. 잠깐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아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보첼리가 부르는 곡은 눈을 감고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보첼리가 눈을 감고 그의 영혼을 담아 부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이 곡을 듣는 몇 분간은 눈을 감고 가슴을 열고 들어보시기 바란다.
이 시대 최고의 팝페라 테너인 안드레아 보첼리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덧붙이겠다.
안드레아 보첼리-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는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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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보첼리가 부르는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 정명훈이 지휘하는 산타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고 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팝페라 테너이다. 일반적으로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테너를 꼽는다면 인지도와 상업적 매스컴의 영향력 등에서 보통 3대 테너라고 해서 파바로티, 도밍고, 그리고 카레라스를 꼽기 마련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들 3대 테너보다 한 수가 아닌 몇 수는 위에 있고 20세기 정통 이탈리아 성악을 빛낸 최고의 테너인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존재는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매스컴의 힘, 그리고 상업적 음반의 발매(이게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기 마련이다. 어찌 되었든 배불뚝이 아저씨 파바로티도 떠났고 그 보다 대선배이자 20세기 최고의 테너인 스테파노 역시 사망한 후 21세기를 이끌어갈 최고의 테너로 서슴없이 꼽히는 성악가가 바로 보첼리이다. 사실 보첼리는 너무도 유명한 성악가라서 내 블로그에까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홈페이지 뒤적거리는 걸 귀찮아하는 분들, 그리고 내 블로그에서 나의 현란한 글솜씨(-_-;)에 매료되신…(^^;) 분들을 위해 보첼리라는 성악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해보겠다.
보첼리는 어린 시절 부유하지 않은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투스카니라고 하는 이 곳에서 지금도 보첼리는 부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는데 특히 성악에 관심이 많았고 타고난 미성(美聲)덕분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보첼리를 아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실은 바로 그의 시각장애이다. 12살에 그는 시력을 상실했는데 동네 꼬마아이들과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쳤고 그때부터 차츰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테너가 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람으로 그를 떠올리지만 정작 보첼리 자신은 그와 같은 시선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시각장애가 그의 인생에서 큰 불편, 핸디캡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나도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고 있어서 다리가 편치 않은 친구가 한 명 있다. 하지만 그 친구와 내가 다른 점이라곤 학창시절 체육시간과 교련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조뺑이를 쳤는지 아닌지, 군대 면제를 받았는지 아닌지 외엔 딱히 떠올릴만한 것도 없다.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밤새도록 술을 마신 세월이 몇 년이요, 말끝마다 욕지거리하면서 음담패설을 씨부린 세월은 또 몇 년인가. 또 그 친구가 운전면허를 취득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친구의 새로 뽑은 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여름 휴가철에 좀 멀리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면허 취득한지 일주일도 채 안된 친구가 시속 120 킬로를 밟는 차의 뒷자리를 탄 경험이 있는 분은 그 기분을 알 것이다. 한 여름에 더워서 흘리는 진땀이 아니라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식은땀이 나지만 차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 기분. 하지만 그 차를 타고서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 십 년 감수했을 뿐. 감수를 했으니 다행이지만 만일 그 차에서 사고가 났다면 어땠을까? 장애인이 운전한 위험천만한 차에서 사고가 났다는 기사 한 줄이 신문지상에 추가되지 않았을까? 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다.
보첼리가 진학한 학교는 음악학교가 아니라 법률학교였다. 여기에서 법학박사까지 취득한 보첼리는 변호사로도 잠깐 활동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음악, 노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 팔자였다. 결국 프롱코 코렐리의 문하에 들어가 그에게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게 되는데 그가 당시 교습비를 마련하기 위해 레스토랑 등에서 피아노 연주로 알바를 했던 것, 그리고 여기에서 그의 훗날 그의 부인이 될 엔리카를 만난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여기서 잠깐. 앞이 보이지 않는 보첼리가 피아노 연주를 했다고? 혹시 이 부분이 의아하신 분들은 구글 같은 곳에서 헬무트 발햐(Helmut Walcha)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시길.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바흐의 챔발로와 오르간 작품 전곡을 달달달 외워서 연주, 녹음한 초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을 전혀 의아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성공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록가수 쥬케로가 팝페라 테너인 당대의 인기스타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 자신과 함께 작업할 곡의 데모 테잎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데모 테잎의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보첼리였다. 그러나 파바로티는 데모 테잎을 들었을 때 정작 자신보다는 보첼리 쪽이 곡에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쥬케로에게 보첼리와 함께 작업할 것을 적극 추천하였다. 결국 이 작업은 쥬케로의 당초 의지대로 파바로티와 함께 하였지만 그 이후 보첼리는 파바로티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수많은 무대에 서게 되었고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로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2007년 가을, 오늘날 보첼리의 성공이 있기까지 지대한 역할을 했던 파바로티가 사망하였을 때 그의 장례식장에서 보첼리는 ‘Ave Verum Corpus’를 부르며 생전에 그에게 받았던 감사와 존경의 표시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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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첼리에게 있어서 음악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 도구였다. 보첼리의 음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병든 사람, 삶이 힘든 사람 등-다 함께 사랑하고 감싸안아주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정통 이탈리아 성악부터 현대 음악, 그리고 클래식으로 분류되지 않는 팝음악까지 그의 음악엔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는 것이 없다.
안드레아 보첼리. 신은 운명을 예정하고 인간을 시험하지만 인간의 그 운명마저도 바꿀 의지가 있음을 그가 보여주고 있다. 운명은 그의 눈을 멀게 하여 한치 앞도 보지 못하게 하였지만 그는 세계 최고의 팝페라 테너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감동의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지루하고도 답답한, 어두운 세상의 저 너머엔 너무도 밝고 영롱하게 빛나는 음악의 세계가 있었음을 꿈꾸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 최고의 팝페라 테너인 보첼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첼리는 그 존재만으로 박수를 받을만한 훌륭한 인격체임이 틀림없다.
Andrea Bocelli (Tenor)
Vladimir Fedoseyev(Conductor)
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 Moscow Choral Academy
녹음: 1995 Stereo, Digital
장소: Mosfilm Studios, Moscow, Rus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