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ET: Symphony in C major
1933년 런던에서 만난 비첨과 푸르트벵글러. 영국과 독일을 대표하는 당대의 지휘자들이 만난 역사적인 자리였다. 이땐이렇게 웃으며 만났으나 2차대전이 발발한 이후 영국과 독일은 수많은 피를 흘리며 싸워야했다.비첨은 푸르트벵글러보다 7년 먼저 태어났고 7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BIZET: Symphony in C major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다. 청량감을 주는 멜로디로 꾸며진 교향곡 하나 소개한다. 17세의 젊은 천재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교향곡 1번, C major이다. 언젠가 여름이 되면 이 곡을 꼭 한 번 올리고 싶었다. 그만큼 여름에 잘 어울리는 활기차고 청량감있는 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로 일세를 풍미했던 조르주 비제의 대표작은 오페라 ‘카르멘(Carmen)’과 그 모음곡, 그리고 ‘아를르의 여인(L'Arlesienne) 모음곡’ 정도만 알려져 있으나 알고 보면 비제도 꽤 많은 곡을 쓴 작곡가였다. 그러나 꽤 많은 다작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이 알려지지 아니한 이유는 그가 37세에 죽음을 앞두고 생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사후에 남겨질 작품과 그렇지 아니한 작품을 과감하게 정리하면서 악보를 죄다 불살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세 곡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1번 교향곡이자 C major 교향곡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다행히도 비제의 정리대상에서 살아남은 작품 중 하나였다.
비제에 대한 짤막한 설명은 일전에 ‘아를르의 여인(L'Arlesienne) 모음곡’을 올리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만일 이 작곡가가 그가 살았던 37년만큼만 더 살았더라면 프랑스 오페라를 한층 발전시키며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과 좋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프랑스의 대표작곡가가 될 수 있었음은 자명하다. 비제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 바로 오페라 카르멘이었고 그 천재성이 세상에 묻혀 오랜 세월 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겨우 세상에 알려진 곡이 바로 그가 작곡한 교향곡 중 유일하게 생명을 부여 받은 C major 교향곡이 되겠다.
교향곡이란 장르,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많은 작곡가들에게 로망이자 사명감이면서 또한 강박관념처럼 작용했다. 수많은 악기가 일사불란하게 앙상블을 이루는 대규모의 교향곡이야말로 서양 중세음악의 꽃이겠지만 그 꽃을 만드는 과정은 천재로 불리는 작곡가들에게도 엄청난 중압감을 주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브람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1번 교향곡을 구상한 뒤로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나서야 겨우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고 라흐마니노프는 1번 교향곡의 참담한 실패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바그너는 일찌감치 교향곡 작곡에 대한 꿈을 접고 가극에만 평생을 매달렸다. 그 이유는 일단 그만큼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하나는 베토벤의 존재 때문이었다. 베토벤만큼, 베토벤을 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 시대를 살았던 작곡가들이라면 그 누구도 베토벤이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등뒤에서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공포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선뜻 교향곡이란 타이틀로 작곡하기가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첫번째 교향곡은 보통 습작처럼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브루크너의 교향곡 중에는 아예 ‘습작 교향곡(Study Symphony)’이라고 명명한 것도 있다). 선뜻 내놓기가 쪽팔리거나 혹은 멋모르고 젊은 치기에 내놓는 경우들이다. 비제, 브루크너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고 라흐마니노프는 좀 뻔뻔한 성격이었는지 과감하게 내놓았다가 개피를 본 경우에 해당한다. 또한 교향곡 1번이 작곡가의 대표곡으로 많이 연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브람스 정도가 유일한 예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슈만의 교향곡 1번도 물론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4번이 더 많이 연주되고 더 평가해준다.
비제는 이 곡을 17세 생일 후 1개월만에 작곡하였다. 첫 번째로 작곡한 교향곡이고 어린 청년이 작곡한 곡이기에 음악적으로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선대의 작곡가들에게서 받은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특히 그의 스승이었던 구노의 교향곡과 거의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어서 필요이상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비제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편하고 신나는, 그래서 지친 영혼에 큰 힘을 불어주는 특징이 잘 드러나있는 곡이다. 꼭 평가절하할만한 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도 비제는 두 곡의 교향곡을 더 작곡했으나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세상에 내놓기가 부끄러웠던지 두 곡은 불살라버렸고 처음 작곡한 곡만이 세상에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 곡마저도 비제 사후 60여년이 흐른 후인 1935년에서야 지휘자 바인가르트너에 의해 스위스 바젤에서 초연되었다.
뻔뻔하지 못했던 비제가 이 곡을 남겼던 당시의 심정이야 어떻든, 또한 음악적으로 성숙한지의 여부는 또 어떻든 이 곡을 들으면서 신나고 기분이 좋아지면 되는 것 아닌가? 들어보면 알겠지만 1악장의 분위기는 남국의 정경을 스케치한 멘델스존의 ‘이탈리안’과 비슷한 느낌도 받는다.
전통의 명반으로 토마스 비첨 할배-프랑스 국립교향악단의 음반을 들 수 있다. 이 할배에 대해선 그리그의 ‘페르 귄트 부수음악’을 올릴 때 짤막하게 언급한 적 있다. 이 할배가 다루는 음악의 특징이 베토벤, 브람스류의 심각한 음악은 거의 다루지 않았고 말러, 쇼스타코비치처럼 심각하면서도 해괴한 음악은 더더욱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 헨델, 모차르트, 구노, 비제처럼 듣기 쉽고 편안한 음악을 다루는데 있어선 나름 도가 튼 양반이었다. 또한 프랑스 지휘자의 양대 거두였던 샤를 뮌쉬, 앙선생 앙드레 클뤼탕스의 음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클뤼탕스보다는 뮌쉬가, 뮌쉬보다는 비첨-프랑스 국립교향악단의 연주가 비제 음악 특유의 상쾌함, 위트를 잘 살리고 있는 느낌이다.
교향곡치곤 그다지 긴 곡도 아니고 듣는내내 지루함은 느낄 수없는 상쾌하고 발랄한 느낌의 곡이다. 비제가 남긴 곡 중 현재까지 알려진 곡이 많지 않음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이 곡을 들으면서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내 오랜 이웃이신 현성님이 구노, 비제의 음악을 좋아하시는데 언제 들어도 부담없는 자연스러움때문이다. 이 곡 또한 그 자연스러운 느낌을 잘 살리고 있는, 그래서 카르멘의 작곡가로만 유명한 비제가 남긴 그저 그런 음악 중의 하나로 썩기엔 아까운 곡이다.
Sir Thomas Beecham (conductor)
Orchestre National de la Radiodiffusion Francaise
녹음: 1959/10/28 & 11/01, 02 Stereo, Analog
장소: Salle Wagram, Paris
전악장 연속재생
I. Allegro vi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