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MAROSA, Domenico: Oboe concerto in C minor
작곡가 윤이상 선생과 하인츠 홀리거.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작곡가-연주자의 사이를 뛰어넘는 진정한 소울메이트의 관계였다.
CIMAROSA, Domenico: Oboe concerto in C minor
도메니코 치마로사가 남긴 오보에 협주곡을 소개한다. 오늘 소개하는 하인츠 홀리거-이무지치의 협연 음반으로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하나만을 소개하려니 너무 아깝기도 하고 또한 이 시대 최고의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의 설명을 전혀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어서 치마로서의 오보에 협주곡까지 소개하게 되었다.
치마로사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다. 주로 작곡한 분야는 오페라, 그 중 코믹 오페라에 있어선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고 그 전통을 훗날 로시니가 물려받게 된다. 나폴리 음악파의 대표격인 인물로 오페라의 인기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 받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곡은 거의 없다. 몇몇 관현악곡, 그리고 오페라, 레퀴엠 등이 전해질 뿐이다.
오늘 소개하는 오보에 협주곡 역시 널리 알려진 곡은 아니다. 또한 치마로사가 처음부터 오보에 협주곡으로 작곡한 것도 아니다. 원래 건반음악으로 작곡하였으나 훗날 아르투르 벤자민이라는 사람이 편곡한 것이다. 그닥 유명하다고 볼 순 없는 곡이겠지만 오보에 협주곡이란 장르에서는 일전에 소개한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그리고 알비노니의 오보에 협주곡 등과 함께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이 웅장하면서도 한편으로 서정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키고 있다면 치마로사의 곡은 좀 청승맞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청승맞아서 한 겨울 밤에 틀어놓으면 여기저기 숨어있는 귀신들이 쓱쓱 나타나는 느낌이랄까?
글쎄…내가 좀 감성 사이클이 독특한 건지,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난 이거 들으면 왠지 지극히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악기, 그것도 오보에 같은 목관악기로 이런 음악을 연주하면 왠지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도 좀 든다. 행여라도 이 곡 틀어놓고 잠들지 마시길. 침대 맡에서, 그리고 발 밑에서 배꼼이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르니. 주온의 그 유명한 장면에서처럼 말이다.
하인츠 홀리거-20세기 오보에의 神
오보에란 악기가 낯선 사람은 있어도 오보이스트의 이름을 한 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이 사람의 이름을 맨 앞에 놓을 것이다. 바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오보이스트인 하인츠 홀리거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20세기 오보이스트의 신적 존재이며 바이올린의 파가니니, 피아노의 리스트에 비유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더구나 한국사람들에겐 더더욱 친숙해질 수 밖에 없는데 홀리거 자신이 한국을 좋아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무척 좋아해서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통영에서 열린 국제음악제에 초청되기도 했고 2007년에 개최된 윤이상 페스티벌에도 물론 참석하였다. 그리고 윤이상 선생의 오보에 협주곡은 홀리거에게 헌정되었다. 20세기 오보에의 혁명이자 신, 하인츠 홀리거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홀리거는 1939년 스위스의 랑겐탈(Langenthal) 태생이다. 어릴적부터 오보에를 배웠고 산도르 베레즈(Sándor Veress),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등의 스승을 사사하며 작곡도 배웠다. 이러한 다양한 교육과정이 훗날 모아 모아져서 현재 홀리거는 세계 최고의 오보이스트로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지휘자와 뛰어난 작곡가로도, 음악이론가이자 교육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홀리거는 20세가 되던 때부터 수많은 콩쿨을 누비며 화려한 성공시대를 열었다. 1959년부터 스위스 바젤 심포니의 수석 오보이스트로 활동하던 중 1959년에 제네바 국제 콩쿨, 1961년의 뮌헨 국제 콩쿨에서 우승하였다. 그리고 1963년부터 그는 솔리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오보이스트로서 홀리거의 가장 큰 업적을 꼽는다면 오보에를 위한 곡의 레퍼토리를 아주 많이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연주자로서 한 평생을 살며 가장 영광된 일이라면 바로 이 레퍼토리의 확장일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20세기를 살았던 대가 중의 대가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바이올린의 야사 하이페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그랬고 첼로의 파블로 카잘스, 로스트로포비치 등도 그랬다. 이들은 옛날 작곡가가 남겼던 숨은 명곡들을 발굴해낸 업적과 동시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작곡가들이 그들에게 곡을 헌정, 초연을 하여 처음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크나큰 업적이 있다. 그 크나큰 업적에 홀리거 또한 이름을우뚝세웠다. Luciano Berio, Elliot Carter, Frank Martin, Hans-Werner Henze, Witold Lutoslawski, Karlheinz Stockhausen 등이 그에게 오보에를 위한 곡을 헌정한 작곡가들이었다. 또한 윤이상 선생의 작품들이 홀리거에게 헌정되어 그 생명을 처음으로 부여 받을 수 있었다.
홀리거와 윤이상 선생의 관계는 통상적인 연주자-작곡가의 관계를 넘어선다. 윤이상 선생이 동백림 사건으로 옥살이를 할 때 전 세계의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를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였는데 당연히 홀리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덧붙이자면 윤이상 선생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한 음악가들의 면면을 보면 어마어마한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다. 200여 명의 음악가들이 그를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였고 그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지휘자 카라얀이다. 특히 카라얀은 친필 서한까지 보냈다. 그 외에 오토 클렘페러, 칼하인츠 스톡하우젠 등의 이름이 있다.
동백림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이상 선생. 자살기도까지 하였고 그 후로도 숱한 고초를 겪었다.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그의 동지들, 그리고 국내의 많은 지식인들의 도움으로 그는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윤이상이란 분.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그를 좌파 빨갱이로 어설프게 치부하고 말 것이고잘 몰랐던사람은 아마도 그에 대해관심이 없었거나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윤이상이란 이름을 거명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시절을 우리가 살아왔기 때문이다. 혹은 한국인 특유의 낮은 공적 신뢰에 의한 과대선전 불신증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이 시대상황에 의했건 아니면 잘못된 정치논리에 의했건, 혹은 한국인들의 낮은 공적 신뢰도에 의했건 간에 전 세계에서 신적 존재로 추앙 받는 음악가들이 그를 위해 기꺼이 탄원서를 냈다는 사실, 그런 음악가를 한국에서 배출했다는 것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여신 제시카가 이끄는 소녀시대가 2010년 한류열풍의 주역인 것도 자랑스럽지만 그보다 앞서 40년 전엔 윤이상 선생이 전 세계 음악인들의 응원을 얻었다는 점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마땅하다.
홀리거가 윤이상 선생을 위해 탄원서를 낸 것만으로 그들의 관계를 설명할 순 없다. 윤이상 선생에게 심한 탄압을 했던 당시의 정권을 독일의 나치보다 더 심하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윤이상 선생이 석방된 후 198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가졌을 때 역시 홀리거는 초청연주자로 함께 있었고 2003년의 통영 음악제, 윤이상 탄생 90주년 기념 2007 윤이상 페스티벌에서도 초청연주자로 내한하였다. 그의 역할은 윤이상 선생이 남긴 음악의 위대함을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것. 이 대목에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들을 때에도, 그리고 홀리거의 아름다운 오보에 연주를 들을 때에도 이제껏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다면 이제부터라도 한 번쯤은 홀리거라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하인츠 홀리거의 부인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하피스트 우술라 홀리거이다. 우술라 역시 윤이상 선생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하프와 현악 합주를 위한 "공후"를 윤이상 선생이 헌정하였고 우술라는 남편 하인츠의 지휘로 이 곡을 녹음하였다. 그 외에도 오보에와 하프, 소편성 관현악을 위한 2중 협주곡은 하인츠-우술라 부부를 위해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것이다.
홀리거의 음악
하인츠 홀리거와 이무지치가 협연한 이 음반. 홀리거라는 이름으로 가장 구하기 쉽고 듣기 쉬운 좋은 음반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홀리거는 연주자, 지휘자, 그리고 현대음악 작곡가로서의 세 가지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만능 음악인이다. 우선 연주자로서의 역할부터 살펴보자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음악까지 오보에를 위해 작곡된 모든 곡을 다 섭렵하였다. 옛 시대를 살았던 작곡가의 곡을 발굴하는 과정부터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곡가들의 곡까지 모두 홀리거의 손을 거치며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이다. 작곡가가 뿌리, 연주자는 꽃의 관계로 보았을 때 흙 속에 파묻힌 뿌리로만 끝날 수 있는 수많은 곡들에 홀리거는 하나하나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그 곡들의 목록은 너무나 많으니 시간 나는 분들이 직접 찾아보시길.
홀리거 연주의 가장 큰 특징은 듣기 좋게, 듣기 쉽게 연주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곡을 들어봐도(사실 홀리거 외의 다른 연주자가 많지 않아 비교가 어렵긴 하다) 홀리거가 연주하는 곡은 밝고 청량한 목관악기의 극을 느끼게 해준다.
지휘자, 작곡가로서의 능력 또한 널리 인정받았다. 지휘자로서 많은 음반을 남기진 않고 있지만 현재는 오보이스트보다 지휘자로서의 활동에 더 힘쓰고 있다. 바흐의 곡을 해석하는 것부터 그의 스승인 산도르 베레즈, 윤이상 등이 남긴 곡, 그리고 자신이 작곡한 관현악과 오페라 ‘백설공주’등을 지휘한 음반을 남겼다. 그리고 그가 연주, 지휘한 모든 음반은 PHILIPS 레이블이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바이올리니스트 헨릭 쉐링처럼 그 역시 필립스를 먹여 살린 연주자 중 한 명인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치마로사의 오보에 협주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고전주의 작곡가의 오보에 협주곡들이 수록되어 편하게 듣기 좋은 음반이다. 하인츠 홀리거의 아름답고 청량한 오보에 소리가 지친 심신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느낌을 준다.
Heinz Holliger
I Musici
녹음: 1986/7 Stereo, Digital
장소: La Chaux-de-Fonds, Switzerland
전악장 연속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