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곡

BACH: Cantata BWV 147 `Jesu bleibet meine Freude`

sniper 2011. 1. 27. 17:20

디누 리파티의 우표. 리파티는 백혈병으로 33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떠났지만 많은 사람들은아직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BACH: Cantata BWV 147 "Jesu bleibet meine Freude"

바흐의 수많은 작품 중 BWV (Bach Werk Verzeichnis) 216번 까지는 종교, 세속 칸타타에 해당된다. 이 칸타타 (Cantata)는 바흐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음악 장르로 쉽게 말하면 노래, 그 중에서도 특히 중창, 합창의 노래이다. 칸타타의 어원이 이태리어 cantare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깡통 커피 이름을 칸타타라고 붙여놓고 그 배경음악으로 스트라우스의 왈츠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CF로 보여주던데 뭔 생각으로 그런 콘티를 짰는지는 모르겠다만 그걸 보면서 제대로 알고서나 콘티를 짰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흐의 216번까지의 칸타타 중에서 200번까지는 종교 칸타타, 그리고 201~216번까지는 세속 칸타타이다. 이 중 216번은 결혼 칸타타로 20세기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악보의 행방이 묘연했으나 2004년 일본에서 피아니스트 하라 지에코(原智惠子)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바흐는 이렇게 많은 칸타타를 남겼고 그 작품들 중 아주 유명한 걸 꼽는다면 211번 커피 칸타타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칵 주디 다물고 자빠져 있으라),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147번의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마음과 입과 행동과 생명으로)’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작품들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그리고 내 블로그에 자주 찾아오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성악, 칸타타 등은 내가 잘 듣는 음악이 아니라서 나도 모른다. 거의 들어본 적도 없고. 누가 그러던데 바흐의 종교음악과 부르크너의 교향곡은 높은 도덕심과 신앙심이 가득한 ‘holy man’만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이라던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인지 이쪽 음악들은 잘 못 듣는다. 그러므로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직접 찾아보시기 바란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내게 너무 의존하는 태도는 좀 버리고.

바흐는 1716년, 바이마르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칸타타 BWV 147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을 작곡하였다. 잘로모 프랑크 (Salomo Franck)가 가사를 썼고 바흐가 1716년에 작곡했지만 완성을 하진 못했고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 1723년에 완성, 같은 해 7월 2일에 초연하였다.


모두 10곡으로 구성된 대곡이다. 성악 4부, 독창, 중창, 마지막엔 합창까지 이어지며 말 그대로 ‘THE HOLY’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난 종교음악, 칸타타, 사람 목소리 들어가는 클래식을 잘 안 듣기 때문에 정작 BWV 147을 잘 모른다. 단, 이 곡에서 마지막 10번째 곡인 "Jesu bleibet meine Freude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라는 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즐겨 듣고 오늘 내 블로그에까지 올리는 것이다.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라는 곡은 클래식 음악의 문외한이라도 매우 친숙한 곡일 것이다. 여기저기 한 두 군데에서 흘러나오는 곡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1990년대 청소년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걸작 아니메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거 일본말로 읽으면 한국말과 똑같이 발음한다)’의 엔딩씬에서 유유히 흘러 나온다.

집중력이 산만해서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앉아서 못보던 내 친구마저도 빌려온 비디오 테잎을 밤새도록 보게 만들었던 걸작 신세기 에반게리온. 근데 난 이 작품을 책으로도, 아니메로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오늘 소개하는 이 곡은 바흐가 원래 피아노 곡으로 작곡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를 살다간 여류 피아니스트로 그야말로 HOLY의 삶을 살다 가신 마이라 헤스 (Myra Hess) 여사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1922년 뉴욕 연주에서 청중들의 앵콜 요청을 받고 즉석에서 자신이 편곡한 이 곡을 연주했는데 그 후 그야말로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한가지 예로 어떤 미국인이 이 곡을 너무 좋아해서 기차 안에서 이 곡을 휘파람으로 흥얼거리자 같이 탄 승객 한 명이 묻기를

'바흐 음악을 좋아하세요 ^^?’
'아뇨? -_-’
'방금 전에 바흐 곡을 흥얼거리셨잖아요? (이 새끼 뭐야?)'
'이거 마이라 헤스 곡인데요? (이런 무식한 새끼...)'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지적허세를 부리고 다니는 꼴같잖은 짓을 해선 안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사리분별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누군가 바흐의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이거 에반게리온 OST인데요?’ 라고 대답해선 안되겠고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의 4악장을 흥얼거릴 때 드보르작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이거 기아 타이거즈 이종범 선수 응원가인데요?’ 라는 식의 대답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미에서 하는 이야기다.

어쨌든 마이라 헤스 여사는 이 곡을 마치 자신의 곡으로 인식하게 할 만큼 많은 인기를 끌었고 살아생전 참 좋은 일을 많이 하다가 훗날 영국황실에서 기사작위까지 받게 되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대모로 불리며 한 세기를 호령했던 타티에나 니콜라예바, 디누 리파티, 그리고 바흐 피아노 곡의 신기수 안젤라 휴이트 등의 음반이 유명하다. 이 곡의 상징성 때문이라도 마이라 헤스 여사의 연주로 소개했으면 좋겠는데 찾으려니까 너무 귀찮다. 누군가 신청을 하면 그때 올려볼 수도 있겠다. 대신 헤스 여사만큼이나 매우 유명한 연주인 디누 리파티의 연주로 소개하겠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소개할 때 리파티의 가슴 아픈 삶을 자세히 써놓았지만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리파티는 1950년 12월에 백혈병으로 짧았던 삶을 마감했다. 오늘 듣는 이 연주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3년 전, 불치병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후 살아있는 시간이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것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던 그 시절에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던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의 악기가 되길 원했던, 그렇게 겸손했던 리파티의 숭고하고도 가슴 아픈 사연쯤은 알아두고 경청해보시길 바란다. 어쩌면 이 곡은 디누 리파티에게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하느님 옆에서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33년의 짧은 생을 마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게 한다.

Dinu Lipatti
녹음: 1947/09 Mono
장소: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