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Piano Concerto No. 27 in B flat major KV 595
빌헬름 박하우스의 옆모습. 딱딱 각이 진 얼굴에서 강인한 느낌이 묻어난다. 박하우스는 독일출신의 연주자로 독일 작곡가의 연주를 훌륭하게 해냈던 몇 안되는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MOZART: Piano Concerto No. 27 in B flat major KV 595
빌헬름 박하우스에 대한 단상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를 딱 세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약간은 망설이며 길렐스, 리히터, 아르헤리치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이들을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좋아하는 음악의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음인데 과도한 낭만, 감상적 요소를 배제한 직선적이고 명쾌한 스타일의 음악,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작곡가별로 따져봐도 그렇다.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를 주로 좋아하고 몇몇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는 정도이다. 好惡가 분명한 성격이라 음악에 있어서도 편식이 심하다.
길렐스의 강인한 터치, 금방이라도 불덩어리가 뿜어져 나올 듯한 리히터의 열정적이고도 아름다운 연주와 아르헤리치의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카리스마를 좋아한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하는 연주자를 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두가 길어졌다. 이렇게 긴 서두를 언급하는 것은 바로 빌헬름 박하우스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을 다섯 명으로 확대한다면 서슴없이 박하우스와 하스킬이 들어갈 것이다.
길렐스, 리히터, 아르헤리치, 박하우스, 하스킬.
20세기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전설의 피아니스트들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즐겨듣는 피아노 협주곡, 소나타의 연주자들이며 이들이 남긴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소나타는 하나같이 전설적인 명반으로 자리잡고 아직까지도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의 음반도 참 많이 갖고 있는데 이미 이들이 남긴 많은 연주들을 블로그에 포스팅하였다.
하지만 박하우스의 음반은 베토벤 소나타, 협주곡, 브람스 협주곡 등 꽤 많은 음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많이 소개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몇 회에 걸쳐 20세기의 전반기에 독일 피아니스트의 자존심으로 전세계 음악계에 군림했던 독일산 사자, 건반의 사자왕(Lion of the keyboard) 빌헬름 박하우스가 남겼던 주옥같은 연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소개할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모차르트는 27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사실 30개라고 알려져 있으나 작곡이 아닌 편곡 수준으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곡을 빼고 또 20번 이전의 협주곡은 알려지지 않아서 연주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20, 21, 23번은 예전 포스트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곡이 바로 27번 협주곡인데 이는 모차르트가 남겼던 마지막 기악곡이란 점과 그의 지난했던 삶의 정점에 있었던, 가장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머리가 아닌 슬픈 가슴으로 작곡했던 곡이란 점에서 많이 애착이 간다.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1791년 1월 5일에 작곡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11개월 후인 12월 5일에 모차르트는 숨을 거두게 된다.
가난과 병마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쫓기는 심정으로 썼던 이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곡을 들으면 난 그의 생애 마지막 대작인 레퀴엠보다 더 슬프고 감상적인 느낌이 든다. 바로 20, 21, 23번 협주곡에서 느꼈던 화사하고 밝은 느낌들과는 다르게 무척 가라앉아 있으면서 우울한 느낌이 전해지지만 또 한편으로 언제나 그의 음악들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순수하고 영롱한 느낌은 잃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쩌면, 어쩌면 그토록 어려웠던 삶을 살았던 그 사람은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곡을 쓸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이런 점에서 비상의 초월성이 느껴지는 슬픈 레퀴엠보다 슬픈 듯 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성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피아노 협주곡 27번이 내겐 훨씬 슬프게 느껴진다.
박하우스가 남긴 레전드 시리즈 음반. 데카(DECCA)에서 발매하는 이 음반은 박하우스의 협주곡 음반 중 첫 손가락으로 꼽는 최고의 완성도를 갖는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박하우스, 제르킨, 길렐스의 음반으로 27번 협주곡을 소장하고 있다. 세 명 모두 모차르트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선입견을 갖고 보기 쉽지만 이들의 모차르트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대가들이 달리 대가이겠는가? 그 어떤 장르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는 변신을 할 수 있으므로 대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톡 쏘는 느낌의 제르킨과 길렐스보다는 정적인 아름다움과 투명한 얼음같은 27번 협주곡 특유의 전체적인 느낌을 잘 살린 박하우스-뵘의 연주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 뵘의 모차르트 해석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Wilhelm Backhaus
Karl Bohm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녹음: 1955/5 Stereo, Analog
장소: Musikverein, Vienna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 Allegro
2악장 Largetto
3악장 Alleg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