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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minor op. 23(E. Kissin)

sniper 2006. 12. 23. 17:13

사회주의체제가 낳은천재소년과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 지휘자의 만남. 이들의 만남은 그 만남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송년. 이제 올해 2006년을 떠나보낼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난 뭘하면서 살았는지, 잘 살았는지에 대한 평가를 하기엔 지금으로선 곤란할 것이다. 훗날 타인이 평가를 해줄 수도 있고 혹은 자평할 수도 있겠지.

송년 시즌이 되면 유독 여기저기에서 음악회가 많이 열린다. 하지만 티켓 가격도 비싸고정작 실제로 보면 그다지 만족할만한 연주도 많지 않다. 차라리 집에서 빵빵한 오디오로 감상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싶을 정도의 형편없는 연주회들도 많다.

이처럼 연말, 송년 시즌을 맞아 가장 많이 연주되는 베토벤 교향곡 9번과 함께송년음악회의 음반과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릴 계획이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음악회에직접 갈 수 없는 분들은 내 블로그에 들려감상하는 것만으로라도 위안을 삼길 바란다.

유명한 송년음악회 공연들이 꽤 많으나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유명한 공연이 있어 하나 소개할까 한다. 바로 1988년베를린 필의 송년음악회 실황공연이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중요한 것은 베를린 필이 송년음악회를 했다는 것도 아니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는 것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구 소련의 떠오르는 신성, 천재소년으로 동구권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에브게니 키신이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 당대 최고의 지휘자인 카라얀과 그의 분신이 세계 최고의 악단인 베를린 필과 함께 연주를 했다는 것이다.

에브게니 키신의 이야기와 그의 출세작인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감상


키신은 이미 1984년, 13세의 어린 나이에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연주하며 러시아를 열광시킨 적이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렐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이후에 이렇다 할 천재 피아니스트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던 러시아로선 키신의 출연에 열광하였고 이에 그의 이름은 동구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방세계에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에 서방세계의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을 그저 소문으로만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바로 1988년 송년의 밤에 열린이 연주를 통해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그의 빛나는 예술성을 드러내며 더욱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 연주회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겠는데 하나는소련의 천재소년이 난곡 중의 난곡이라고 불리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며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 카라얀의 마지막 송년 연주회라는 것이다. 카라얀은 이듬해인 1989년에 빛나는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동구권의 떠오르는 신성, 천재소년과 서방세계의 살아있는 전설의 만남. 이 공연은 이 상징성만으로도 이미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하지만 이날 키신의 연주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수많은 명연들 중 절대로 명연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못된다. 18세의 소년이이런 난곡을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느냐며 미리 기대감을 접고 볼 수도 있지만두고두고 봐줄만한 그런 연주는아니다. 세계 최고의 베를린 필의 잘 다듬어진 매끈한 소리에 키신은 야코가 팍 죽어 건반위에서 쩔쩔 맨다. 3악장쯤 가면 이미 지구력이 떨어져 관현악의 소리를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다. 이 곡의 특유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불타오르는, 광폭한 피아노의 연주는 어디에도 없다.

내 블로그에최고 명연이라고 할 수 있는 호로비츠-토스카니니, 리히터-카라얀, 길렐스-마젤의 연주 음반을 올렸으니 잘 듣고 비교해보시길 바란다.아쉽게도 키신은 이 날의 연주 이후에 이 곡을 단 한 번도 레코딩하지 않고 있다.어릴 때의 연주만으로 그를 비교할 수 없기에 보다 장성한 후의 연주를 듣게 된다면 좋은 비교가 될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아주유명하고 유명한 공연이지만 그 완성도에 있어선 결코 유명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연주가 되겠다.

키신의 연주만으로 비교감상이 안되시는 분들을 위해 이번엔 보너스로 길렐스의 옛날 동영상을 함께 비교하면서 감상하시겠다. 길렐스는 달리설명할 필요도 없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최고봉이며 특히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최고 스페셜리스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공연은 1959년에 앙드레 클뤼탕스의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과 함께한 공연인데 당시의 길렐스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활발하게 서방세계에 연주여행을 다니며특유의 강철타건으로 서방세계인들을 경악케하였다. 바로 그 시절의 길렐스의 불타오르는 피아노 연주이다.위의 키신의 영상과 비교해보면이 곡은 바로 이렇게 연주해야 하는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연주회 도중 진땀을 뻘뻘 흘리는 거구의 길렐스. 이 장면을 보면서 묘한 전율마저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