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Variations and Fugue in E flat major op. 35 ``Eroica``
구 소련 시절 살아있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로 추앙받았던 위대한 음악인 마리아 유디나(Maria Yudina). 그녀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예술인 특유의 위엄이나 멋,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편하고 편한 동네 아줌마, 추운 겨울에 돕바입고 동네 어귀에서 호떡과 튀김을 파는 아주머니와 같은 인상이다. 그리고 그녀의 실제 삶 역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BEETHOVEN: Variations and Fugue in E flat major op. 35 "Eroica"
베토벤은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이렇게 저렇게 기법을 바꿔가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변주곡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많은 변주곡을 작곡하였다. 헨델의 주제에 의한 12의 변주곡, 모짜르트의 주제에 의한 12의 변주곡, 터어키 행진곡에 의한 6개의 변주곡 등 이름도 부르기 힘든 여러 곡의 변주곡들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언제나 그렇듯이 문명의 이기 이너넷을 잘 활용하시기 바란다. -_-
이렇게 많은 베토벤의 피아노 변주곡들 가운데 특히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C장조 op. 120(33 Variations on a Waltz by Anton Diabelli in C major op. 120), 그리고 변주곡과 푸가 E flat장조 op. 35 "에로이카 변주곡"(Variations and Fugue in E flat major op. 35 "Eroica")의 두 곡으로 압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나저나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도 참 곤란하다. 마치 '늑대와 춤을' 영화에서의 주인공들 이름 같지 아니한가? 그냥 비창, 월광, 템페스트 등등으로 짧게 지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판을 뚜들기면서도 계속 들게 만든다.
에로이카 변주곡(일일이 다 뚜들기기 귀찮아서 짧게 표현한다. 불만 없지? )의 주제는 '12의 콘트라탄즈"WoO 14의 제7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작품 43의 마지막 곡, 그리고 에로이카 변주곡과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마지막 악장에까지 모두 네 번에 걸쳐 활용되었다. 베토벤이 이 주제를 참 많이도 좋아했나 보다. 그래서 교향곡 에로이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변주곡을 딱 들었을 때 "어라?"하며 꽤 반가운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 유디나-사회주의 독재의 붉은 땅에서 핀 고결한 영혼의 꽃
젊은 시절의 유디나. 총명하게 보이는 인상이지만 매우 수수하게 생겼다. 젊은 시절엔 이 정도로 수수하게 생겼지만 더 나이가 들어선 완전히 푸욱 퍼진 할머니가 된다.
옛날 옛적, 전 세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로 양분되었던 그 시절엔 국경이 있을 수 없는 문화예술의 영역에도 엄연히 국경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높고 높은 철의 장막의 저쪽에 꼭꼭 숨겨져 있는 전설과도 같은 예술가들은 반은 호기심과 반은 신비로움으로 채색되어 부지불식간에 반대편 체제의 사람들에게도 소개가 되곤 했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동구와 자본주의 체제의 서구에서는 서로간의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특히 구 소련에서는 자국의 우수한 음악 예술가들을 서방세계에 연주여행을 시키며 세상을 경악시켰으니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뚱땡이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선생과 강철타건 에밀 길렐스, 독재적 카리스마 지휘자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에브게니 므라빈스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머리가 홀라당 다 벗겨진 조로(早老)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 20세기 피아니스트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등이 되겠다. 이들은 구 소련 정부의 정책에 따라 서방세계를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방세계의 연주자들과 협연도 많이 했고 서방세계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맘껏 과시하는 정책적 선전용으로 많이 쓰였다.
구 소련이 자랑했던 최고의 음악예술인들. 왼쪽 바이올린을 든 아저씨는 뚱땡이 바이올리니스트 오선생, 그리고 가운데 안경쓴 이는 최고의 빨갱이 음악 작곡가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오른쪽의 훌러덩 시원하게 벗겨진 아저씨는 20세기 피아니스트 중가장 우뚝 솟은 거목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오이스트라흐, 길렐스, 므라빈스키 등이 서방세계를 활개치고 다니면서 수많은 명연, 명반을 남겨 전설의 위치에 오를 때 철의 장막 저쪽의 건너편에는 이미 살아있는 전설로 등극하여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으나 철의 장막 넘어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조용한 전설의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너무도 유명한 클라라 하스킬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고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모(代母)라 불리우는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어머니뻘 되는 피아니스트이며 바흐와 베토벤의 스페셜리스트였으나 하스킬, 니콜라예바의 유명세엔 훨씬 못 미치는 마리아 유디나(Maria Yudina)가 그 주인공이다.
마리아 유디나는 1899년 러시아 네벨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여타 거장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신동, 천재로 불리우며 22세에 세인트 페테스부르크 음악원을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유디나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녀는 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예술적 성과를 과시하여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일반적인 행위와는 매우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볼셰비키 혁명 중엔 폭동으로 신음하는 많은 난민들과 부랑자, 병자들을 위해 음악회를 개최하여 외롭고 지친 영혼들을 달래주었으며 이로 인해 훗날 볼세비키 정권에서는 그녀에게 깊은 감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교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2차대전 중엔 독일군에게 포위된 공포의 도시 레닌그라드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였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모범이 되었다.
예술을 뛰어넘은 휴머니즘의 추구
스탈린이 좋아한 피아니스트. 그림 설명에도 나와있듯이 항상 유디나를 따라다니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유디나 본인은 그런 표현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의 어지러운 시대상황에서 러시아가 배출한 뛰어난 예술인들은 정치적 망명을 택하여 신변의 자유를 보장받고 자신의 예술을 맘껏 구현하여 부와 명성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유디나는 이런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평생동안 자신의 전용 피아노를 갖지도 못했고 항상 남루한 옷차림으로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예술인은 보장된 비단길을 마다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고난과 역경의 길을 밟게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한 가냘픈 여인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 위대함.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유디나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스탈린과의 관계이다. 유디나는 레닌 이후 정권을 잡은 피의 독재자 스탈린의 예술인들에 대한 억압정책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동료 예술인들을 변호하는데 앞장섰다. 이런 유디나의 태도를 독재자 스탈린이 가만 두고 있을 리가 없지만 유디나에겐 극히, 정말 극히 예외적으로 강제수용소에도 보내지 않고 그녀가 지속적인 예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 이유는 스탈린이 유디나의 연주를 환장하게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유디나가 연주하는 모차르트(확실히 모르겠지만 피아노 협주곡 23번일 것이다)의 방송실황을 듣고 있던 스탈린이 그녀의 연주에 너무도 감동하여 당장 녹음 테잎을 구해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만큼 스탈린이 유디나를 좋아했고 존경하였기에 유디나에 대해선 최대한 배려를 해주었다는 이야기다.
피의 독재자 요제프 스탈린. 인류역사에 두 번 다시 나와선 안될 사람 중의 하나이다. 참 희한한 것이 히틀러도 그랬고 스탈린도 그랬듯이 어디서 좋은 건 알아 가지고 문화예술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이다. 심미안과 훌륭한 인격이 동격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좋은 사례가 되겠다.
글쎄? 액면 그대로 믿기엔 지나치게 선정적인 면이 있다. 유디나가 남긴 음반 판매고를 높이기 위한 상술이라 보여지기도 하는 이 에피소드는 유디나가 평생동안 추구했던 숭고했던 예술의 혼을 오히려 훼손시키는 면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유디나는 스탈린에게 정면으로 개기면서 맞짱도 불사했던 몇 안 되는 용감했던 예술가 중의 하나였으며 이에 음악원 교수직도 짤렸던 적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가 남겼던 음반치곤 지나치게 적은 수만을 남기고 있던 것은 그녀에게 연주와 레코딩 활동에 정치적 압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유디나가 스탈린의 총애를 받았기에 스탈린이 특별히 봐줬다? 그보다는 볼세비키 혁명 당시부터 있었던 유디나의 훌륭한 업적들과 그녀의 대중적인 인기, 위치 등을 모두 고려해봤을 때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더 큰 반발이 있을 것이란 점을 인식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디나의 음악
노년의 유디나. 1968년에 모스크바에서열린 그녀의 마지막 연주회의 모습이다. 얼핏 보면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노파들 중 한 사람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가 살았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위대함이 빛나고 있다.
유디나가 남긴 연주들을 살펴보면 바흐와 베토벤을 가장 많이 연주하였던 바흐, 베토벤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꼭 바흐와 베토벤만을 연주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등의 현대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방대한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여 여성 연주자 중엔 이례적으로 연주세계의 variation이 매우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디나가 남긴 음반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가 적은 양의 레코딩을 하였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그녀의 음반을 구입해서 듣는 건 어려운 일인데 추천하고 싶은 사이트가 한 곳 있다.
마리아 유디나의 공식 웹사이트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등등 유디나가 남긴 여러 연주들의 음원을 들어볼 수 있는 유익한 공간이다. 이 곳에서 그녀의 청명한 피아노 소리를 직접 접해보시기 바란다. 이 곳의 관리자께서 친절하게도 음원의 다운을 허락하였으니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 유디나의 음반은 조금밖에없다. 대신 유디나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들어봤는데 상당히 이채롭고 독창적인 해석을 들려주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1악장의 카텐짜는 어느 누구의 연주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남루한 코트와 운동화, 그리고 보자기로 대충 싸맨 머리. 외모에 저~연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다. 그녀는 보여지는 외형의 세계보다 내면에 더 충실하는 것만이 진리를 향한 궁극의 삶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액면가만 보고 판단했을 때 누가 이 할머니를 당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녀가 남긴 업적 중 가장 위대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바로 바흐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러시아 피아니스트 중 바흐의 연주에 있어서 최고로 인정을 받았고 그녀가 남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반다 란도프스카, 글랜 굴드, 빌헬름 켐프의 음반과 함께 최고의 완성도를 지닌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녀가 추구했던 예술은 단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음악으로만 구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피아노와 음악은 그녀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작은 일부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녀의 예술은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을 밑바탕으로 하여 보다 높은 이상향에 닿기 위한 끝없는 자기성찰이었으며 이를 위해 철학, 건축학 등 매우 다양한 방면의 공부를 하였다.
필립스에서 나온 Great Pianist 시리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베토벤의 변주곡이 함께 실려있다. 여기에 수록된 골드베르트 협주곡은 명연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내가 바흐를 잘 듣지 않는 이유도 있고 이 곡을 리핑해서 블로그에 올리자면 엄청난 노가다를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올리지 않고 있는데 혹시라도 신청이 들어올 경우엔 올려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예술인을 비롯하여 사회운동가, 정치인, 스포츠 선수 등의 유명인사들 중엔 유명하긴 하지만 결코 인간적으로 정감이 가지 않고 존경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그들이 유명할 수있게 해준뛰어난 재능과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덕목인 인격과 교양이 결핍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 소련 시절의 전설적인 여류피아니스트인 마리아 유디나는 안빈낙도의 삶 속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내비추며 높고 높은 이상향을 추구했던 고귀한 삶을 살았으니 그녀야말로 진정 존경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마리아 유디나가 연주하는 변주곡과 푸가 E flat장조 op. 35 "에로이카 변주곡"
에로이카 변주곡은 슈나벨, 브렌델, 굴다, 켐프 등의 굵직굵직한 전설적인 명인들이 모두 레코딩하였고 러시아 피아니즘의 기둥인 리히터와 길렐스, 그리고 마리아 유디나 역시 음반을 남겼다.
이 곡의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것은 길렐스의 1980년 음반이다. 바로 그 유명한 길렐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5(-5의 의미는 길렐스가 전곡에서 5곡만을 녹음하지 못한 채 아쉽게 사망하였다는 것이다)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길렐스 특유의 망치로 때려부수는 듯한 처음 주제를 알리는 힘있는 연주에서부터 흥얼흥얼 리듬을 타는 듯한 유려함까지 모두 갖춘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마리아 유디나의 연주로 먼저 소개하고 이어지는 다음 포스트에서 길렐스의 명연을 또한 소개하겠다.
Maria Yudina
녹음: 1961/04 Stereo, Analog
장소: Moscow
전곡 연속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