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S: Ein Deutsches Requiem op. 45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20세기를 빛낸 거장 중의 거장. 그 어떤 고난과 병마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난 인간승리의 주인공. 악과 깡다구 빼면 시체인 사나이.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op. 45
브람스가 작곡한 독일 레퀴엠은 첫째,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가사를 썼다는 점과 둘째, 미사용 음악이 아닌 연주용이란 점에서 다른 작곡가들의 레퀴엠과 다르다. 브람스 성악곡의 백미인 이 엄청난 대작은 오랜 세월 병으로 고생하다 죽은 그의 스승 슈만을 기리기 위해 처음 작곡을 구상하였으나 지지부진하였고 슈만 사망 후 9년이 지난 훗날 브람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이에 다시금 작곡에 몰두하여 도합 10년에 걸쳐 완성된 브람스 성악곡의 결정판이며 브람스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이다.
총 7곡으로 구성된 이 곡이 1867년에 처음 발표되었을 땐 3곡뿐이었다. 초연은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고 이로부터 5개월 후인 1868년 4월 10일, 성금요일에 브레멘 교회에서 브람스 본인의 지휘로 3곡이 더 추가된 6곡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날의 공연엔 클라라 슈만을 비롯한 독일의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참석하였고 브람스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완벽한 앙상블까지 이루어내는 브람스의 능력에 독일 음악계 전체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69년에 또 한 곡을 추가하여 모두 7곡으로 완성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브람스 음악의 전체적인 특징이 모두 그렇지만 독일 레퀴엠 역시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에 비해 뭔가 화려함이랄지 타오르는 정열을 느끼며 처음부터 친숙해지긴 참 힘들다. 왠지 모르게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차분하게만 느껴지는 이 곡.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추억이 담긴 소중한 물건을 먼지 쌓인 골방에서 찾았을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먼지를 마시며 골방에서 하루종일 지냈던 그런 느낌이랄까?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에 비해 평소에 잘 즐겨듣진 않지만 한 번 들었다하면 하루종일, 아니 일주일 내내 이 곡만 들어야 하는 진하고 깊은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매력에 빠져들면서 브람스 중독증 환자가 된다. 바로 나처럼 -_-;
오토 클렘페러-악으로 깡으로 한 평생을 살다간 불굴의 지휘자
클렘페러는 뇌종양 수술 이후 반신불수가 되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안면근육도 마비되어 말도 동작도 대단히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허리도 몹시 아파서 앉아서 지휘했다.
마에스트로의 황금기를 살았던 수많은 지휘자들의 대부분은 '독재적 카리스마'라는 성격으로 규정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방식이 또 많은 에피소드를 갖는다. 토스카니니, 조지 셀, 에브게니 므라빈스키, 세르쥬 첼리비다케 등등. 이들이 자신의 카리스마를 고집하며 남긴 수많은 명연주와 명반들이 전해지며 지금도, 앞으로도 많은 이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릴 것이다.
이처럼 '독재적 카리스마'란 이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거장이 있다. 바로 불굴의 의지로 한 평생을 버티며 악과 깡으로 똘똘 뭉친 그 사람.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이다.
클렘페러의 인생을 쭉 살펴보면 정말 독하디 독한 오기와 깡으로 드럽게 끈질기게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뇌종양 수술을 받고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였고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다가 떨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친 이후로 휠체어 위에서 살아야 했고(-_-;) 게다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잠들었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기도 했으며(세상에~!)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끈질기게 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자존심을 지켜내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다. 만일 그에게 끝간데 없는 자존심이 없었더라면 88세까지 장수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진작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오기와 깡으로 빚어진 그의 자존심은 곧 타인에 대한 쌀쌀함과 괴팍함, 무뚝뚝한 성격으로 발현되었다. 단원들에게도 독재적 카리스마의 전형적인 인물로 비추어졌고 단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주를 하지 않으면 바로 쫓아내기도 하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다투는 일도 많아 지휘자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환상의 커플의 '조안나'식의 자존심. 이런 자존심이 또한 왜곡된 형식으로 발현이 되었을 땐 자신의 부도덕, 비윤리마저 지나치게 뻔뻔할 정도로 당당해서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젊은 시절 유부녀였던 엘리자베스 슈만과 염문에 빠지기도 했고 야반도주를 하다가 남편에게 붙잡혀 죽도록 맞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_-;
클렘페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브루노 발터를 가리키며 "그는 인격자이고 도덕적이지만 난 그렇지 않아. 절대로! (Absolutely! 를 무지 강조한다)
Take the bows I give you. 내가 하란 대로 활을 켜란 말야!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리허설 도중 한 단원이 보잉을 잘못하자 큰 소리로 윽박지르고 있다. 맨 앞의 짤막한 장면에선 발터의 인격을 칭찬하며 자신은 절대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사람이 아니라며 강조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할 때 "그게 자랑이냐?"며 비꼬거나 욕할 수도 있지만 클렘페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클렘페러라면 그 자신이 도덕적이 아니란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비도덕적이고 비인격적인, 자기 인생의 큰 마이너스 요인을 커버하고도 남을 훌륭한 음악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능력도 있고 사람도 좋은 브루노 발터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같은 사람만 있다면 물론 더할 나위 없겠지만 또 세상사는 게 그렇지 않잖아?
클렘페러의 음악
베토벤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지휘하는 클렘페러. 클렘페러는 푸르트벵글러를 제외한 지휘자 중 베토벤 교향곡을 가장 잘, 많이 하는 지휘자로 정평이 나있다. 동영상에서 들려주는 에로이카는 상당히 느린 템포이다. 푸르트벵글러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느려터진 음악의 대명사와도 같은 지휘자 두 사람이 있다. 클렘페러와 첼리비다케이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젊은 시절부터 느려터진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 상당히 과격하고 빠른 음악을 많이 만들었으나(그가 뇌종양에 걸렸던 이유도 젊은 시절 지휘하면서 난리굿을 쳐대다가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_-;) 다른 3~4 사람들이 경험할 인생의 갖가기 쓴맛을 다 알고 난 중년과 노년 이후엔 템포가 무척 느려졌다. 그리고 그 느리고 느린 템포 속에서 무척 진한 감동 또한 느껴질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느려터진 음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클렘페러 류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가끔은 레퀴엠과 같은 장엄한 분위기의 종교음악은 또 느린 맛이 제맛이라는 생각에 가끔 즐겨듣곤 한다.
클렘페러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고 그렇게 고생을 한 후에야 인생의 황금기를 맞았던 참으로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음반 중 역사적 명반으로 평가받는 것은 대부분이 75세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렇게 볼 때 왜 그가 그토록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끈질기게 벌떡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명이 된다. 맹자의 한 구절처럼 하늘은 크게 될 사람에게 크나큰 시련을 내린다는 말처럼 위대한 명반들을 만들어내라는 하늘의 소명을 받고 실천해야 했기에 88세까지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의 연주 레퍼토리는 무척 다양하다. 헨델의 메시아,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같은 대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함께 하는 대곡부터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루크너, 바그너, 브람스, 말러, 슈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 정통 독일음악의 원류에 해당하는 작곡가들의 곡은 거의 대부분 다루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엔 대단히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다루는 것을 즐겨하여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곡도 많이 다루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유태인 출신에 현대음악까지 다루었으니 그는 나치에 의해 활동이 금지되었고 망명을 하였던 것이다.
아주 느리고 장중하면서 화려함과 퇴폐적 낭만 따위는 찾을 수 없는 음악. 견고함과 경건함을 제1의 가치로 두고 끝없는 치열함이 돋보이는 음악. 바로 오토 클렘페러의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다.
클렘페러의 브람스 독일 레퀴엠
클렘페러와 슈바르츠코프, 디스카우가 함께 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이 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독일 레퀴엠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드시 필청, 소장해야 할 첫 번째 음반으로 꼽힌다.
클렘페러가 남긴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음반엔 세 사람의 거장이 눈에 띈다. 한 사람은 지휘자 클렘페러이고 또 한 사람은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이다. 지난 2006년 여름에 91세로 세상을 떠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 중의 한 명인 슈바르츠코프. 이 할머니에 대해서도 훗날 어떤 음반을 소개하면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갔다는 자체가 이 음반이 얼마나 대단한 음반인지 액면가로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바리톤인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이다. 클렘페러와 슈바르츠코프의 이름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인데 거기에 디스카우까지 합세했다면 이거 보통 음반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 충분히 들고도 남는다.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남편 잘 만나서 팔자 제대로 핀 여자란 비평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특유의 촉촉한 목소리로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든 위대한 소프라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 곡은 브람스가 작곡한 최대 규모의 성악곡이고 그 주제가 망자의 영혼을 달래고 신을 향해 애절하게 외치는 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고 보았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단히 경건하고 묵직해야 제맛이다. 그리고 그런 맛을 클렘페러 특유의 묵직한 오케스트라가 잘 살려내고 있다. 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 오이스트라흐와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에서도 그 특유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클렘페러의 오케스트라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클렘페러의 음악에선 카라얀처럼 잘 다듬은 매끈한 오케스트레이션은 없다. 또한 발터처럼 꿈틀거리는 생명력도 잘 느껴지지 않고 토스카니니처럼 강건하고 깔끔한 맛도 별로 없고 푸르트벵글러처럼 오싹한 공포가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힘도 없다. 하지만 대단히 견고하고 장중함이 절로 느껴지는 감동의 음악이 바로 클렘페러의 음악이다. 쉽게 친해지긴 힘들지만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든 그 끝없는 감동의 바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클렘페러의 음악과 100% 코드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Elisabeth Schwarzkopf (Soprano)
Dietrich Fischer-Dieskau (Baritone)
Ralph Downes (Organ)
Otto Klemperer (conductor)
Philharmonia Orchestra
Philharmonia Chorus
녹음: 1961/1/2-1961/4/26 Stereo, Analog
장소: Kingsway Hall, London
전곡 연속재생
1.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2. Denn alles Fleisch es ist wie Gras
3. Herr, lehre doch mich
4.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5. Ihr habt nun Traurigkeit
6. Denn wir haben hie keine bleibende Stadt
7. Selig sind die To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