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K. zimerman)
젊은 시절의 브람스는 흔히 알고 있는 텁텁하고 중후한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날카롭고 번뜩이는 눈매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을 향한 열정을 처절하게 웅변했던 열혈청년의 모습이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동영상으로 감상한다. 브람스가 남긴 몇 안되는 협주곡 중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관현악을 자랑하는 이 곡은 어찌보면 브람스 음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멋있고 뛰어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한 소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처음 들었을 때와 몇 번 들었을 때, 그리고 이 곡에 푹 빠져 여러 차례 들었을 때의 느낌은 언제나 달라진다. 처음 들었을 때는 웅장한 스케일에 반하게 되고 두 가지 어색함에서 당황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된다. 하나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처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어색함이고 또 하나는 통념상 알고 있던 브람스 음악의 궤도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어색함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처음 이후 몇 번을 거듭해서 들었을 때는 점점 이 곡에 빠져 들게 된다. 관현악의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과 그에 못지 않게 신경질적이다 할 정도로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는 언뜻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도 비슷한 분위기를 띄지만 브람스 특유의 두텁고 색채감 있는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과 그 궤를 달리 한다.
이 곡을 너무 좋아해서 푹 빠지는 마니아가 되었을 때 감상하는 느낌은 또 달라진다. 이 곡에 푹 빠져 사는 현재의 내 심정이라고 보면 될 것인데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브람스라는 작곡가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게 된다.
이 곡을 작곡할 때 브람스는 사랑과 분노, 슬픔이 교차하는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던 25세의 열혈 청년이었다. 가난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당대 최고의 실력가였던 슈만의 제자가 되었으나 이들이 만난지 겨우 5개월만에 슈만은 정신착란을 일으켜 라인강에 투신하는 자살소동을 일으켰고 브람스는 크나큰 충격을 받게 된다. 또한 스승을 극진히 간호하는 그 때 스승의 아내였던 클라라를 깊이 흠모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했다. 이 모든 복잡하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고스란히 브람스의 음악으로 전사한 곡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브람스의 스승인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 클라라의 부모가 그토록 반대하는 결혼을 했건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도 못했고 오래가지도 못했다.
청년 브람스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그 여인, 클라라 슈만. 무려 14년 연상이자 스승의 아내를 사랑한 브람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두 사람은 음악적 동지, 후원자로 평생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브람스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하기 전에는 몇몇 피아노 독주곡과 성악곡을 작곡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곡들은 음악사적 위치는 물론 브람스의 음악에서도 그다지 주목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브람스 음악의 실질적인 첫 출발선은 바로 피아노 협주곡 1번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브람스는 이 곡을 그의 첫 번째 교향곡으로 작곡하려 구상하고 있었다. 이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대규모의 관현악과 피아노가 서로 대립하며 으르렁거리는 곡은 브람스 이전과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리스트, 그리그 등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으나 그 규모, 웅장함, 화려함에서 비교가 안되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정도가 그에 필적할만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아쉬움이 드는 가정이 성립하게 된다. 만일 브람스가 이 곡을 교향곡으로 작곡하였다면 어땠을까? 브람스는 40세가 넘어서야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발표하게 된다. 교향곡의 작곡을 구상한 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 20여 년의 세월동안 브람스는 실내악과 피아노 독주곡들을 주로 작곡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브람스 본인의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는 베토벤,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넘어서야 한다는, 적어도 그들보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기에 신중과 신중을 기해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겨우 첫 번째 교향곡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첫 번째 교향곡도 그렇고 이후에 나오게 될 세 곡의 교향곡, 그리고 그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한 모든 협주곡과 관현악곡 역시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화려함과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토록 샤프하고 번뜩이는 천재성을 보이던 한 청년은 심한 인생 굴곡을 겪은 후 이처럼 텁텁하고 중후한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간직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웅변하였던 25세의 열혈청년 브람스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스승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브람스가 겪어야 했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통, 그리고 스승의 아내에 대한 애틋함과 그 애틋함에서 비롯된 뜨겁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 모든 인생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브람스는 자연스레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인생의 아픔과 여기에서 비롯된 소극적인 성격은 훗날 만년의 브람스에게서 작곡가로서의 열정마저 빼앗아 갔다. 브람스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규모의 관현악곡을 작곡하였고 만년에는 작곡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소품, 독주곡 등을 작곡한 점을 미루어봐도 알 수 있다. 인생의 만년에 이르러서야 음악인생의 모든 것을 바쳐 교향곡 작곡에 전념하는 다른 작곡가들과는 너무도 판이하다.
브람스의 데스 마스크. 평생을 두고 마음속으로 흠모했던 스승의 아내가 사망한 후 그 역시 몇 달을 못살고 사망하였다.
브람스 음악에 대한 통념은 내성적이고 우울하고 인생에 대한 짙은 회한이 담겨 있는 어두운 색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이런 통념을 충분히 파괴하고도 남는다. 1악장의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되는 신경질적인 현악기와 귀청이 찢어 질듯이 울려 퍼지는 금관, 그리고 으르렁거리는 팀파니. 그리고 이후 날카로운 금속성의 피아노까지 어우러진 이 곡은 어두움, 우울함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웅장함과 화려함, 그리고 열정이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만일 브람스가 좀 덜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그리고 덜 소심하고 덜 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바그너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뻔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아마 베토벤이 남겼던 그 이상의 교향곡을 남겼을 것이고 40세가 넘어서야 교향곡을 발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교향곡은 그가 그토록 뛰어넘고 싶었던 베토벤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음악사에서 그만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감상할 때마다 드는 진한 아쉬움이다.
25세의 열혈 청년 브람스. 그의 스승인 슈만이나 혹은 그 누군가가 무척 닦달을 했다면 어땠을까? 좀 더 뻔뻔해지고 좀 더 무대뽀로 밀고 나가라고 닦달을 했으면 어땠을까? 다른 건 다 제껴두고 관현악곡, 교향곡의 작곡에 열중하라고 사정없이 볶아댔으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교향곡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베토벤이 아니라 브람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K. zimerman)
현역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의 하나로 꼽히는 크리스티앙 치머만은 1983년에 레너드 번스타인의 빈 필과 함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하였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계획적으로 양성하고 있던 연주자 중 하나인 치머만은 훗날 다시 번스타인과 손잡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남긴 브람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동곡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치머만-번스타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듣기. 동영상 보기
참고로 번스타인이 키운 연주자들이 몇 있다. 번스타인은 이들과 협주곡을 연주하며 이들이 클래식 음악계에서 거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는데 바이올린의 기돈 크레머, 첼로의 미샤 마이스키, 피아노의 크리스티앙 치머만이 그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치머만-번스타인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은 폐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치머만의 반대로 폐반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2003년엔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과 다시 손잡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녹음하였다. 이 음반은 근래에 발매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음반 중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난 이음반을갖고 있진 않지만 라디오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의 높은 평가를 받기엔 이전에 나온 커즌-셀, 길렐스-요훔의 음반이 너무 뛰어나 역부족이 아닐까 생각했다.
음반은 폐반되었지만 다행히도 공연실황의 DVD는 지금도 존재하는데 이 동영상을 보면 번스타인의 공격적이면서 다소 오버한 듯한 오케스트라와 이에 맞서는 치머만의 팽팽한 맞대결이 압권이다. 커즌-셀만큼은 아니지만 번스타인 특유의 불타오르는 연주가 잘 드러나 이 곡의 개성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그리고 젊은 치머만의 피아노도 여기에 밀리지 않고 팽팽하게 치고 나가며 제 자리를 잘 찾아간다. 치머만은 20년 후에 발매된 래틀과의 협연보다 여기에서 더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은 원래 브람스가 교향곡으로구상했다는 사실처럼 피아노보다는 관현악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기 쉽다. 그런 이유로 자칫 피아노의 소리가 관현악에 파묻혀 버릴 수가 있어서 피아노 연주자는 이에 맞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대단히 강렬한 타건을 들려주어야 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치머만은 노련한 백전노장 번스타인에 맞서 자신의 피아노를 잘 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Krystian Zimerman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녹음: 1983/11/24 Stereo, Digital
장소: Musikverein, W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