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첼로 협주곡

BRUCH: Kol Nidrei op. 47

sniper 2008. 4. 3. 11:50

노년의 피에르 푸르니에. 그 옆에 손을 꼭 잡고 있는 할머니는 에밀 길렐스의 부인이다. 길렐스의 손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emilgilels.com)에 가면 길렐스가 다른 사람들과 찍은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BRUCH: Kol Nidrei op. 47

브루흐가 남긴 불후의 명곡인 콜 니드라이는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유대교에서 대속죄일 전야에 의식을 시작하며 부르는 기도문(Kol Nidre, 모든 서약이란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이 곡은 하나님께 한 서약, 맹세, 언약을 이행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자성(自省), 자정(自淨)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오랜 역사동안 일정한 영토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유대인들이 그래도 혈통을 보존하고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선민의식과 함께 종교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이들의 선민의식이 배타적으로 작용해 일어나고 있는 국제사회의 어지러운 사건들이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어쨌든 이 곡은 절대신 앞에서 참회와 반성,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아주 엄숙하고도 유려한 멜로디를 자랑하는데 이 곡을 처음으로 오선지에 음표로 전사하여 음악으로 정형화시킨 사람은 19세기의 독일 작곡가 막스 부르흐이다. 부르흐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히브리의 멜로디를 음악으로 만들 생각을 했고 종교적인 엄숙함과 애수, 선(禪)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걸작 중의 걸작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 때문일까? 브루흐는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유대인이었지만 신분을 속였다는 설도 있다) 훗날 나치정권에 의해 인종이 불명하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 대부분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브루흐가 남긴 작품은 50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남긴 작품 중 많이 연주되고 많은 음반이 나온 것은 기껏해야 바이올린 협주곡, 스코틀랜드 환상곡,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콜 니드라이 정도이다.

막스 부르흐(Max Bruch). 19세기 독일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단한 작곡가였으나 왜곡된 정치논리때문에 그의 사후에 많은 작품들이 사장된 불운을 맞게 되었다.

브루흐가 유대인이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가 유대인 아니라 외계인이었다 해도 예술의 영역을 인종차별의 왜곡된 사상에 의한 정치행정이 지나치게 개입하여 한 예술인이 생전에 남겼던 훌륭한 혼의 산물을 철저하게 짓밟은 것이며 이는 그 정당성과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래 이 곡은 연말연시에 차분함을 필요로 하는 시간에 한 번쯤 블로그에 올려 소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험악하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사전적 의미가 절절히 느껴지는데 연말이 아니라 세기말의 기분이 들어 비록 계절은 봄이지만 이 곡을 올리게 되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어디 봄처럼 느껴지던가? 하루가 멀다 하고 흉악한 범죄들이 판치는 꼴이 마치 세상 말세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이처럼 어지럽고 흉흉한 세상임을 느낄 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성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고 이에 가장 적합한 곡은 바로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 곡은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곡으로 쓰였고 훗날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실내악으로 편곡이 되었다. 둘 다 브루흐 본인이 썼다.

카잘스, 푸르니에, 스타커, 뒤 프레 등 20세기를 살았던 첼로의 명인들이 이 곡을 녹음했다. 장한나가 그의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한 음반도 유명하다.

뒤 프레는 특히 이 곡을 많이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인생의 1/3을 휠체어에 의지하여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잃어야 했던 비운의 여인 뒤 프레는 비극적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도 이 곡을 들으며 지나온 삶에 많은 회한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조지 셀과 협연하는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과 함께 수록된 음반이다.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은 이 음반이 가장 잘된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푸르니에가 남긴 수많은 음반 중에서 버릴 것이 없는 아주 잘된 음반이며 푸르니에의 팬이라면 반드시 소장해야 할 명반 중의 명반이다.

다른 연주자의 연주보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 곡을 연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라면 단연 피에르 푸르니에의 음반을 꼽고 싶다. 그의 삶 자체가 대단히 청렴하고 종교적이었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거장 중의 거장다운 삶을 살았기에 그의 연주에서도 이런 삶의 자세가 고스란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Pierre Fournier
Jean Martinon (conductor)
Orchestre Lamoureux Paris
녹음: 1960/05 Stereo, Analog
장소: Salle de la Mutualite,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