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협주곡

RAVEL: Piano Concerto for the Left Hand in D major

sniper 2009. 11. 30. 15:49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 오스트리아 출신의 촉망받는 젊은 피아니스트였으나 1차대전 참전 이후 이렇게 오른팔을 잃고 말았다. 라벨은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RAVEL: Piano Concerto for the Left Hand in D major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스스로에게 풀기 어려운 과제를 내고 결국 그 과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무척 즐겼던 사람이었다. 하나의 멜로디가 일관성 있게 반복되는 관현악을 만든 것이 그 유명한 볼레로가 되겠는데 이 음악의 특징은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지만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지루하지 않은 느낌을 받는 것을 보면 그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라벨의 음악에서 주목 받는 장르는 물론 관현악이 되겠다. 그가 남긴 많은 실험적인 관현악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두 곡뿐이다. 두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과 오늘 소개하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 되겠다. 편의상 D장조 협주곡, 그리고 G장조 협주곡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독주곡 분야에서 다시 한 번 라벨의 천재성과 난해함이 빛을 발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 곡을 쓰겠다고 작심하고 덤벼든 밤의 가스파르, 그리고 라발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물의 유희, 쿠프랭의 무덤 등이 있는데 라발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쿠프랭의 무덤 등은 같은 이름의 관현악곡도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블로그에 이들 곡을 소개하겠다.

왼손을 위한 협주곡 역시 라벨만의 실험정신이 빛나는 곡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곡은 라벨 자신이 스스로 어려운 과제를 내고 그 과제를 풀어내는 목적으로 작곡한 것이라기보다는 당대의 명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란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꽤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1차대전에 참전, 그만 오른팔을 잃고 마는 불상사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실의에 빠지지 않고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곡을 작곡해달라고 많은 작곡가들에게 의뢰하였고 여기에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즉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이 곡이 연주하기 너무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으나 결국 초연하였고 훗날 이 작품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상송 프랑소와가 연주하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동영상

이 곡하면 떠오르는 명 피아니스트가 또 한 명있다. 엘렌 그뤼모의 스승이기도 한 레온 플라이셔가 그 주인공이다. 플라이셔는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우승하며 승승장구하였고 최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인 34세에 그만 오른손 마비가 오고야 만 것이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을 여기에서 접어야 하는가 절망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극적으로 재기하였고 지금은 수많은 제자를 양성해내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녕 위대함이 느껴지는, 인간의 끝없는 의지의 한계를 다시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불굴의 의지로 기적을 만들어낸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 난 플라이셔가 젊은 시절에 연주한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너무 감동하고 말았다. 최고의 명연이었다.

요즘 내 친한 친구가 오른손을 크게 다쳐 기부스를 하고 다닌다. 몰랐는데...농담인줄 알았건만 진짜로 다쳤더라구. 왜 손모가지가 그 모냥이냐고 물으니 내기 도박판에서 데마이쓰다가 걸려서 오함마로 손이 찍혀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건 영화 타짜에 나오는 이야기가 되겠고 두 어깨 위에 올려진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 너무 힘들어 오른손으로 아무데나 퍽퍽 쳐대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미친넘.

극단적인 오른손잡인데 오른손은 전혀 못쓰니 뭐든 왼손으로 생활하는데 너무 불편하다고 한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 사회가 얼마나 오른손잡이 위주로 편중되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고. 변기의 물내리는 레버가 오른손잡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너무 불만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이젠 큰 불편함이 없고 뭐든 왼손으로 다 조금씩은 해낼 수 있다고 하길래 내가 물었다. 니가 왼손으로 할 수 있어서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게 무어냐고. 그랬더니 이렇게 답하더군.

"왼손으로 마우스 움직여서 왼손만으로 휴지 뜯고 왼손으로 DDR한다. 어때?"

사람은 내가 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과업을 기어코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무한한 존경심과 함께 숙연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비트겐슈타인만큼은 아닐지라도, 플라이셔만큼은 아니더라도 난 그 순간 진정 숙연해짐과 동시에 늘 보고 살았던 그놈이 그렇게 커보일 수 없었다.

이 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장 보편적인 음반. 상송 프랑소와가 남긴 라벨과 드뷔시의 피아노 곡이 죄다 수록된 6CD 음반이다.

프랑소와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차가운 터치, 그리고 묵직한 타건을 느낄 수 있는 명연주로 감상하시겠다. 이 곡 역시 라벨이 같은 시기에 작곡한 두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처럼 째즈의 요소를 많이 도입한, 약간은 컬트풍의 곡이라고 하겠다. 3악장까지 구성되어 있지만 1악장 처음부터 쉬지 않고 한 번에 연주한다. 어떡하면 왼손만으로도 이러한 연주가 가능한지 제대로 감탄사가 튀어나오게 된다.

Samson Francois
Andre Cluytens (conductor)
Orchestre de la Societe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녹음: 1959/08/01-03 Stereo, Analog
장소: Salle Wagram,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