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Evgeny Kissin)
거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키신은 덥수룩한 더벅머리에 앳된 표정이 매우 친근감을 준다.
길렐스의 연주에 이어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에브게니 키신(Evegeny Kissin)의 연주이다.
러시아 대륙을 열광시킨 소년
13세 소년이 있었다. 공산당원이 입는 하얀 인민복 셔츠에 빨간색 타이를 두른 이 소년은 자신의 키에 감당하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높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덥수룩한 더벅머리에 너무도 앳돼 보이는 이 소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웃었지만 곧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광적으로 연주하는 소년의 황홀한 마법에 걸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공연이 끝난 후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며 열광하였다.
바로 1984년 소련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열린 공연실황에서 보인 13세의 천재소년 에브게니 키신(Evgeny Kissin)의 데뷔무대였다. 키신은 그 어렵다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2곡을 완벽하게 연주하여 전 소련을 열광시켰고 이토록 화려한 데뷔무대를 치룬 이 천재소년의 명성은 전 세계를 향해 무섭게 퍼져나갔다.
지금도 회자되는 이 유명한 공연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렐스 이후 이렇다 할 천재 피아니스트가 등장하지 않았던 소련 피아노계에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정통 러시아 피아니즘을 계승할 적자(嫡子)로서 키신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명의 인재를 발굴하여 집중적으로 육성,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정책에 따라 키신은 소련 권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커나갈 수 있었다.
13세의 나이에 전 소련을 열광시킨 천재소년. 정말 앳된 모습이다. 빨간 타이는 공연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그의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튀어 보이라는 의미에서 급히 묶어 준 것이라고 한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서는 천재소년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으나 서방세계에서는 이 소년에 대한 소문만을 얼핏 들었을 뿐 정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만큼 그 시절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이념의 갈등에 의한 동서의 구분이 확실했고 쌍방교류가 철저히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한 이 천재소년을 서방세계에서도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1988 송년의 밤 행사에 황제 카라얀이 이끄는 세계최고의 베를린 필과 함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게 되었고 겨우 17세의 이 작은 소년이 세계 최고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모습을 보고 서방세계의 사람들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키신의 전설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소련의 천재소년. 카라얀 사망 1년 전에 이루어진 매우 유명한 공연이다.
황제 카라얀의 지휘로 서방세계 최고의 악단인 베를린 필과 함께 한 이 공연을 통해 난곡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하였고 17세 천재소년은 전 세계에 그의 명성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그 명성만큼 썩 잘된 연주는 아니다.
키신은 1971년 소련 태생이다. 두 살 때엔 피아노 음을 흥얼거리며 그대로 건반으로 옮겨 칠 수 있었고 여섯 살 땐 즉흥곡을 작곡하였다. 어릴 적부터 모차르트에 필적할 천재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여섯 살 때에 영재학교에 입학하여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해지기 시작하였고 13세에 뜨거운 데뷔 무대를 거쳐 전 소련을 대표하는 최고의 소년 피아니스트로 각광을 받았다.
스물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서방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여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지금까지도 거침없이 그만의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는 키신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일정, 세계 순회공연을 소화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16세의 키신. 무지 귀엽다. 하지만 이 귀여운 소년은 이미 세계최고의 피아니스트 자리를 예약해 놓은 무시무시한 소년이었다.
키신의 이력을 보면 여느 예술가들과는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그는 콩쿨 출신이 아니다. 음악은 경쟁과 양립할 수 없다며 콩쿨을 거부했다.
음악은 경쟁과 양립할 수 없다...크아~! 정말 너무도 멋진 말이다.
15세 소년의 정신연령이 보통이 아닌 듯 하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꼭 경쟁을 유발해서 한 사람을 찐따를 만들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에게 되새겨 볼만한 말이 아닌가?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고 약속이지 그놈이 그놈인 엇비슷한 놈들 백날 이겨봐야 큰 발전도 없다.
또한 그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보통 예술가들을 보면 한 스승에게서 사사한 후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러시아파, 독일파, 프랑스파 등등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매우 뿌리깊은 유파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리히터, 길렐스도 그 유명한 러시아 네이가우스 문파였다. 하지만 키신은 그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안나 파블로바 칸토르란 여선생에게 배운 것이 유일하다. 그 자신이 키신파의 시조인 셈이다. 짜식~ 알면 알수록 정말 멋있는 놈이다.
Kissin in Korea-10번의 앙코르 30번의 커튼콜
키신이 연주하는 베토벤 터키 행진곡. 손가락 무지 빨리 움직인다.
2006년 4월.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키신이 한국에 왔다. 구소련 시절부터 천재소년이란 명성만 들었을 뿐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쉬워하던 수많은 한국팬들앞에 그는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느덧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을 원망하듯 뜨거운 공연이 끝난 후에도 무려 10번의 앵콜과 30번의 커튼콜을 부르며 환호했고 키신은 더욱 더 뜨겁게 관중을 열광시켰다.
팬 사인회.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도 사인회를 계속 하였고 주최측에서는 그만 피곤할테니 사인회를 그만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키신은 오랫동안 그를 기다렸던 열광적인 한국팬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고 일일이 사인해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호텔에 돌아간 그는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실신했다.
팬들의 사랑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 키신은 팬들의 사인부탁에 결코 짜증내는 법이 없다. 겸손함까지 갖춘 이 매력적인 청년을 어느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키신은 한국팬들에게 홀딱 반했다고 한다. 그토록 나를 성원해 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내겐 팬들이 가장 소중한 존재인데 왜 팬들의 사인을 무시해야 하냐며 열정적인 연주로 지칠대로 지친 후에 그 늦은 시간까지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었다고 한다.
보면 볼수록 정말 멋진 놈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소리 듣는 인간들 중엔 나르시시즘에 빠져 싸가지 없는 놈들이 많은데 이 아저씨는 실력과 매너, 친절함에 스타성까지 모두 갖춘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자격을 훌륭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키신의 음악
키신은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 한일자가 되도록 하는 독특한 운지법을 구사한다. 바로 그의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다.
13세의 천재소년의 명성을 전 소련연방과 전 세계에 알렸던 획기적인 공연실황 앨범. 13세 소년이 연주하는 불타오르는 쇼팽을 느낄 수 있다.
키신은 거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1. 예술적 완성도
2. 레퍼토리의 다양성
3. 대중적 흡입력
이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피아니스트이다. 아직 35세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앞으로 더 나아갈 35년 이상의 시간동안에는 얼마나 더 엄청난 업적을 쌓을 수 있을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바흐, 하이든에서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슈만...그리고 현대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완벽한 연주를 구사한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미 신동을 벗어나 거장의 길을 걷고 있고 이젠 거장에서 전설을 향해 그의 신화를 써 내려가는 키신. 세계에서 가장 개런티가 비싼 피아니스트이며 세계 순회공연마다 열광적인 팬들을 만드는 사나이. 그의 신화는 계속, 계속 될 것이다.
Dmitri Kitaenko (conductor)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녹음: 1984/03/27 Stereo, Analog
장소: Grand Hall of the Moscow Conservatory
전악장 연속재생
1악장-Allegro maestoso
2악장-Romance, larghetto
3악장-Rondo, vivace